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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추석을 계기로 본 북한의 명절

우상화 그늘에 눌린 민족 전통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9.14(Wed) 13:00:38 | 14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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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북한의 9월 달력에는 두 개의 빨간색 공휴일이 표시돼 있다. 9월9일 북한 정권수립 68주년 기념일과 15일 추석이다. 사흘 연휴인 데다 토·일요일을 포함해 닷새간 쉬는 우리와는 추석 명절 휴일이 크게 차이가 난다. 북한이 추석 당일만을 휴일로 한 데서도 민족 전래의 전통에 대한 남북한 인식 차이와 함께 김정은 체제의 우상화 그늘이 드러난다. 분단 70년 동안 정치나 이념뿐 아니라 사회문화가 남북 간에 이질화됐고 명절과 세시풍속(歲時風俗)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북한에선 추석이 1988년 부활됐다. 부활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북한에서 1948년 9월 김일성 정권이 수립된 후 추석을 말살시켰기 때문이다. “착취계급들이 통치권을 강화하는 데 악용하고 종교적 외피를 씌워 허례허식을 덧붙였다”는 이유로 규제해 오다가 1967년 5월에는 “봉건 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아예 공식 명절에서 제외시켜 버린 것이다.

이처럼 말살됐던 추석이 1988년 부활한 것은 정치적인 목적이 크다. 우선은 한국의 해외동포(조총련 동포)를 대상으로 한 추석 성묘사업에 대응키 위한 조치였다. 남북한 국력의 격차가 점차 커져 해외동포들, 특히 조총련 동포들 사이에서조차 북한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있던 점을 감안한 것이란 설명이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추석을 계기로 성묘를 하는 등 전통과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평양과 일부 대도시의 경우 추석 성묘를 위한 차량이 배치되기도 한다. 하지만 성묘객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적어 평양은 묘지가 많은 근교 중화군 등지를 걸어서 성묘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다. 아나운서 출신 탈북자인 송지영씨는 “화물트럭 등에 사람이 너무 많이 올라타 성묫길이 막힐 정도고, 일부는 트랙터를 이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보기 드물게도 일시적 교통체증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2012년 추석인 9월30일 북한 국가간부들이 평양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헌화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


1988년 추석 부활…성묘 등 명맥 유지

성묘 행렬에도 빈부차가 심해지고 있다는 전언도 있다. 탈북 피아니스트인 김철웅씨는 “먹고 사는 게 어렵다 보니 명절날 잘 차려 올리는 게 조상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다”고 말했다. 부유층의 경우 문어와 털게·순대 같은 북한에서 고급 음식에 속하는 걸 성묘 음식으로 준비한다는 것이다. 휴대용 오디오를 준비해 생전에 고인이 좋아하던 노래나 음성을 후손들이 한자리에서 함께 듣는 것으로 부(富)를 과시하는 일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에게 유일한 낙은 TV를 통해 방영되는 외국영화다. 주로 중국과 옛소련의 첩보물과 전쟁영화 등을 더빙해 편성하는데 인기가 높다고 한다. 최근에는 북·중 국경지역 등을 중심으로 남한의 TV드라마나 영화 등을 몰래 보는 풍조도 나타나 북한 당국이 단속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게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차례(茶禮)상을 차리는 전통이 사라지는 등 변화가 이뤄진 대목도 있다. 평양에서 발간된 조선말대사전(2007년판)은 ‘차례’에 대해 ‘명절이나 음력 초하루, 보름에 지내던 간단한 제사’라고 설명한다. 과거의 풍습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추석이나 설 명절보다 김일성 생일인 4월15일과 김정일이 출생한 2월16일을 더 큰 ‘명절’로 친다. 특히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이후 그의 생일은 ‘태양절’이라 불리며 우상화의 극치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민속명절에 한해 명절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과 달리 북한은 좀 더 포괄적이다. 국경일과 민속명절은 물론 국제적인 기념일과 각종 기념일 등을 총칭해 명절이라고 부른다. 국경일은 ‘나라와 민족의 융성발전에 매우 의의 깊고 경사스러운 날’로 설명되며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생일을 비롯해 국제노동자절(메이데이, 5·1), 해방기념일(8·15), 정권창건일(9·9), 노동당 창건일(10·10), 헌법절(12·27) 등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국경일은 모두 공휴일로 지정돼 있으며 통상 ‘사회주의 7대 명절’로 불린다. 북한은 이 가운데 김일성과 김정일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가장 성대히 기념하고 있다.

북한이 김일성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제정한 것은 1974년 2월이며, 김정일 생일은 1975년 임시 휴무일로 제정됨으로써 민족적 명절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76년부터는 김정일 생일을 정식휴무일로 삼았으며 82년부터는 공휴일로 제정했다. 특히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 생일을 여타 사회주의 7대 명절과 구별하기 위해 1986년부터 생일 다음 날을 휴식일로 정해 이틀간 휴무토록 하는 한편 김정일 생일인 2월16일부터 김일성 생일인 4월15일까지의 두 달여의 기간을 축제기간으로 설정해 갖가지 기념행사를 전개하고 있다.

북한 평양시 해외동포애국자묘에서 북한 주민들이 추석 성묘를 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일성·김정일 생일이 더 큰 ‘명절’

북한의 명절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가계 우상화를 위한 계기로 활용된다. 노동당과 내각의 간부, 북한군 장병, 노동자들이 이날 김일성의 조부모와 부모 등의 묘를 찾아 화환을 증정하는 풍경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당·정·군의 간부들을 모두 데리고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있는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찾는 것도 이채롭다.

김정은의 생일인 1월8일은 아직 명절로 선포되지 않았다. 하지만 통치기반을 다지고 우상화 선전을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의 출생일을 또 하나의 ‘민족 최대 명절’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불만이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핵과 미사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자초하고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마저 얼어붙게 한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해 회의적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집권 첫해인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던 김정은의 공약이 지켜지지 않은 데 따른 실망감도 커지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북한에 들이닥친 제10호 태풍 ‘라이언록’의 영향으로 두만강 유역에 사상 최대의 홍수가 발생했다는 게 북한 관영통신의 보도다. 타판 미슈라 주 유엔개발계획(UNDP) 북한 상주대표는 함경북도 회령시와 청진시 등지에서 1만여 가구가 피해를 봤으며, 주택 6700여 채가 파괴됐다고 전하고 있다. 김정은이 있어야 할 곳은 핵 실험장이나 미사일 발사시설이 아니라 주민들이 신음하는 재난현장이란 지적이 나오는 건 민생을 외면한 그의 통치노선에 대한 비판과 우려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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