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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이 바꿔놓은 일상, “최소 3개월은 아무 자리도 갖지 마라”

저녁이 있는 삶 가능할까

조해수 기자·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04(Tue) 18:00:35 | 14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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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7일 국내 주요 한식당·일식집은 그야말로 대만원을 이뤘다. 주중인 화요일이지만 고급 식당가는 넥타이 부대를 비롯한 각양각색의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차장에는 몰려든 고급 자동차로 2중·3중 주차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국내 한 대기업의 홍보실 임원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오늘은 허리띠를 풀어놓고 끝까지 가자”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 날인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앞두고 ‘최후의 만찬’이 벌어진 것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적용 대상인 공직자와 언론인·교직원 등 400여만 명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삶이 변화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한 대기업에서는 최근 사내 임원·그룹장 등을 모아놓고 “최소 3개월 동안은 점심이든 저녁이든 가급적 아무 자리도 갖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초기에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가 활개 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들에 대한 감시의 시선이 집중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최초 사례가 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최대한 강력한 방식으로 초기 대응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9월28일 점심시간에 국회 의원회관 구내식당에 보좌진 등 국회 직원들이 식사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있다. © 연합뉴스


대학, 학생들 불만·항의로 ‘몸살’

 

주말의 당연한 일상이었던 접대 골프 역시 잠정 중단됐다. 김영란법 시행 전주까지 쇄도했던 예약 전화는 김영란법 첫 주에 접어들면서 자취를 감췄다. 필드 대신 스크린골프가 호황을 맞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24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고위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해 골프를 쳐주면 좋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국 모든 대학들도 김영란법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학교에서는 교직원들에게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자 공무수행 관련 현황 조사 및 서약서 제출을 요청하고 있고, 학생 입장에서는 취업계 제출과 학점 인정 등이 부정청탁 유형으로 확정되면서 상당수 대학들은 학칙 변경 논의와 함께 학생들의 불만과 항의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수백만원이 넘는 강의료를 받고 외부 강의에 치중하던 일부 교수들 역시 9월28일 이후 공식적인 외부 일정을 모두 끊었다고 하니 가히 김영란법의 효과를 알 만하다.

 

지난해 국내법인 59만1694곳이 쓴 접대비는 무려 9조9685억원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국내 서비스업이 침체기에 접어들거나 성장 곡선이 당분간 하향세를 겪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이는 괜한 걱정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은 1558조원이었다. 1558조원의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 경제가 국내 법인이 쓴 10조원 정도의 접대비로 흔들린다면 이미 그 나라의 경제 및 의식 수준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법인카드 접대비용으로 쓴 금액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흥업소가 1조1418억원으로 8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룸살롱은 유흥업소 사용 금액의 5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접대비는 우리가 우려하는 한식당·일식집이 아닌 룸살롱 등의 유흥비로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김영란법으로 로비에 쓰이는 검은돈을 양지로 끌어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법인카드를 통한 접대비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로비, 그리고 청탁인지 부탁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사항까지 추가하면 잠재적으로 우리가 부정청탁, 대가성 로비 등을 통해 지불하는 금액은 20조~3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새해 예산이 400조원인데 그중 5% 이상을 전혀 비생산적인 부분에 쏟아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접대 및 로비를 통해 이루어낸 경제적 성과는 박근혜 정부에서 강조하는 창의성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창조적 성과와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낸 부가가치는 지하경제로 숨어들고 또 다른 기업들의 비자금으로 연결될 뿐 실제로 국내 경제를 굳건히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입은 폐해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부패지수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55점을 기록해 168개국 중 37위에 머물고 있다. 아시아만 놓고 보면 싱가포르·일본·홍콩·대만보다 청렴도에서 현저히 낮은 상태이며 우리보다 위상이 낮은 UAE보다도 청렴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9월30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권익위원회 건물 1층에 운영 중인 서울종합민원사무소 © 시사저널 고성준


백화점 지고, 편의점 뜨고

 

김영란법으로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도 나오고 있다. 고가의 식사와 선물에 대한 부담감이 생기면서 백화점이나 고급 음식점은 지고 편의점과 가공식품 관련 업종이 뜰 것이라는 관측이다.

 

법조계 역시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자문이나 강연 신청은 물론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새롭게 시행된 법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과태료 부과에 대한 이의 제기나 징계·형사처벌 등 과정에서 변호인을 선임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식이나 접대 자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짐에 따라 영화관이나 미술관 등 문화행사를 찾는 수요도 늘 것으로 보인다. 피트니스센터나 어학원 등 자기계발에 관계된 업종도 반사이익이 기대되고 있다.

 

김영란법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한다.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선포했던 ‘범죄와의 전쟁’과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을 시행하며 김강자 경찰서장이 주도했던 ‘성매매와의 전쟁’도 초기에는 조직폭력 와해, 집창촌 철거 등 대대적인 효과를 거뒀으나, 지속적인 법 조항 및 실행 방안 등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와 논의가 부족해 이후 범죄 및 불법 성매매를 지하세계로 끌어들이는 부작용을 낳았다. 김영란법 역시 여전히 부정청탁에 대한 포괄적 금지라는 법 취지와 단기간에 완성된 허술한 법 조항이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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