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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 여름엔 80도 겨울엔 90도가 제격

[구대회의 커피유감] 물의 온도, 커피 맛 결정에 큰 영향 식혀서 마시면 특유의 신맛·쓴맛·단맛 모두 느껴

구대회 커피테이너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31(Wed) 17:31:37 | 14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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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의 수필 《오월》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만약 작가가 찬물이 아니라 더운물이라고 썼더라면 오월의 푸르름과 청춘을 표현하는 데 참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 글뿐이랴. 커피 역시 온도는 맛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뜨거운 물이 없었다면 애초에 커피는 없었을 것이다. 더운 여름에 인기 있는 콜드브루(일명 더치커피) 커피 또한 상온의 물로 장시간 추출하는 것이니, 물이 차갑거나 뜨겁지 않다면 커피다움을 잃어버리게 된다.

 

설탕가루보다는 작고 밀가루보다는 큰 원두 7~8g을 9기압의 압력과 92도의 온도로 20~30초 동안 추출한 20~30mL의 커피 원액을 우리는 ‘에스프레소’라고 부른다. 정확히는 에스프레소 싱글이다. 그러나 한 잔의 맛있는 에스프레소의 탄생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익히 알고 있는 대로 대기압은 1기압이다. 물의 끓는점은 기압과 비례한다. 그래서 산에서 라면을 끓이면 100도 전에 물이 끓어서 설익게 된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9기압으로 커피를 추출하려면 물의 끓는점은 100도를 훨씬 넘게 되고, 추출 시 물의 온도가 높아서 불쾌한 쓴맛과 잡미가 난다. 1950년대 이후 훼마사(社)의 달라코르테가 이끄는 기술진이 진일보한 보일러 시스템과 전동펌프를 장착한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됐다.

 


원두 강하게 볶으면 특유의 쓴맛 많이 느껴

 

에스프레소를 추출한 후 따뜻한 물로 희석한 커피를 흔히 ‘아메리카노’라고 한다.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는 컵에 물을 먼저 부은 후 나중에 에스프레소를 부은 음료를 에스프레소의 양에 따라 쇼트블랙(싱글), 혹은 롱블랙(더블)이라고 한다. 이때도 물의 온도가 중요한데, 계절에 따라 3단계로 조절하면 커피를 알맞은 온도로 즐기는 데 도움이 된다. 필자는 한여름에는 약 80도를 유지하고, 봄과 가을에는 약 85도, 한겨울에는 약 90도로 물의 온도를 맞춰 아메리카노를 만든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물의 온도가 90도를 넘지 않는 것이다. 일부 카페에서는 계절에 관계없이 핫 워터 디스펜서(Hot Water Dispenser·온수기)의 물의 온도가 95도로 맞춰져 있는데, 고객이 커피를 마시다가 화상을 입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물이 너무 뜨거우면 커피의 복합적인 맛을 느끼기에 부적합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

 

핸드드립은 또 어떠한가? 원두의 볶음도와 표현하려는 쓴맛·신맛의 정도에 따라 추출하는 온도 또한 달리해야 한다. 편의상 원두의 볶음도를 약·중·강으로 나눠 설명하면, 약하게 볶았을 때는 신맛이 많이 나기 때문에 그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약 80도의 물이 적당하다. 반대로 신맛을 누르고 쓴맛을 느끼고 싶다면 약 90도의 물로 커피를 추출해야 한다. 강 볶음일 때도 마찬가지다. 커피 특유의 쓴맛을 즐기고 싶다면, 약 90도의 물로 커피를 추출하면 된다. 역으로 쓴맛을 누르고 신맛을 맛보고 싶다면 80도로 하면 된다. 물론 지나치게 강하게 볶은 원두에서 물의 온도 조절로 신맛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중 볶음일 때 물의 온도 조절로 커피의 복합적인 맛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약 80도의 물은 신맛을 강조할 때, 약 85도의 물은 신맛과 쓴맛을 즐기기에 적합하고, 약 90도의 물은 쓴맛을 표현하고 싶을 때 좋다. 이렇듯 핸드드립에서 물의 온도는 커피의 신맛과 쓴맛을 조절할 때 필수적인 조건이다.

 

대기압 상태에서 상온의 물로 장시간 접촉을 통해 커피를 추출하는 콜드브루는 그 방법에 따라 점적식과 침출식으로 나뉜다. 점적식은 우리가 흔히 보는 물을 한 방울씩 분쇄한 원두 위에 떨어뜨려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이다. 반면 침출식은 분쇄한 원두 위에 물을 부어 장시간 두면, 물이 커피 가루를 적시다가 결국 추출되는 방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물의 온도다. 만약 뜨거운 물로 커피를 추출한다면 콜드브루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커피가 추출되는 대기의 온도라고 할 수 있는 상온의 물로 커피를 추출해야 쓴맛이 덜하고 입안에 청량감이 감도는 커피를 얻을 수 있다. 최근에는 콜드브루라는 이름에 충실하기 위해서인지 아예 얼음물로 커피를 추출하는 커피집도 늘고 있다.

 

따뜻한 카페라테를 만들 때 우유를 데우는 스티밍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대개 냉장고에 있는 우유의 온도는 5~7도 정도 된다. 이것을 에스프레소 머신의 스팀 노즐에서 나오는 수증기와 파장, 그리고 진동으로 우유를 데우고 섞게 된다. 그럼 몇 도까지 우유를 데워야 할까? 추운 겨울이면 카페라테를 주문한 고객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사장님, 우유를 아주 뜨겁게 해 주세요”라는 요청이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스티밍 온도는 약 60~70도다. 그보다 못하면 우유의 비릿함이 느껴지고, 과할 경우 텁텁한 맛이 나 좋지 못하다. 일부 바리스타들은 정확한 스티밍 온도를 구현하기 위해 온도계를 밀크 저그에 꽂고 우유를 데우기도 한다.

 

 

카페라테 우유의 적정 온도는 60~70도

 

전날 마시다 남은 아메리카노를 차에 놓고 내린 적이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차에 올라 무심코 남은 커피를 마시고 대개 우리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와, 커피가 식었는데도 맛있네.” 혹은 “엥, 이게 뭐야? 어제와 달리 쓰기만 하잖아.” 커피의 진정한 맛은 식었을 때 알 수 있다. 마치 화장을 지운 여성의 민낯과도 같은 것이다. 평소 화장한 얼굴만 보다가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그녀의 민얼굴을 보고 역시 두 가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누구세요?” 또는 “와! 화장을 지운 얼굴에서 빛이 나네.” 민낯이 아름다운 여성이 진짜 미인인 것처럼, 식었을 때 맛있는 커피가 진짜 맛있는 커피다.

 

카페에 가면 너무 뜨겁게 우유를 데워달라고 하지 말고, 바리스타에게 맡겨보자. 적어도 제대로 된 커피인이라면 고객에게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기 위해 정성을 다할 것이다. 그가 내온 커피에 믿음을 갖고 적절한 온도의 커피 맛을 즐기기 위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면, 커피를 한 번에 다 마시지 말고 조금 남긴 후 커피가 다 식었을 때 마셔보자. 청량감이 도는 신맛, 기분 좋은 쌉쌀한 쓴맛, 그리고 풍부한 보디감까지 느껴진다면 의심할 나위 없이 그 카페는 민낯조차 맛있는 커피 맛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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