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메뉴열기

시사저널

차나무 하나로 자자손손 부를 누리게 한 ‘파아이렁’

[서영수 감독의 Tea Road(1)] 보이차의 고향 징마이(景邁) 차산을 가다

서영수 감독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25(Wed) 12:00:00

0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link

 

비가 내렸다. 밤새도록 퍼붓던 비는 새벽에도 멈추지 않았다. 징홍(景洪)의 아침을 구성진 빗소리로 맞이했다. 윈난성(雲南省) 성도(省都) 쿤밍(昆明)에서 780km 서남 방향에 있는 징홍은 중국에서 유일한 타이(傣)족 자치주, 시솽반나(西雙版納) 주도(州都)로 교통요충지다. 보이차(普洱茶) 고향 윈난성에서도 품질 좋은 차나무가 살고 있는 알짜배기 차산은 징홍을 중심으로 산개돼있다. 일반 승용차로는 갈 수없는 험로가 많아 사륜구동 SUV가 필수다. 가까우면 3시간 멀면 이틀 넘게 가야하는 첩첩산중에 천년 이상 묵은 차나무가 보물처럼 숨어있다.

 

중국 CCTV 제작진이 준비해둔 사륜구동 SUV를 타고 오전 9시 징홍을 출발했다. 차산에서 촬영 중인 CCTV 다큐멘터리 제작팀에 합류하러 가는 길을 궂은비가 속절없이 따라왔다. 수 천 년 전부터 변하지 않고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중국 전통문화 베스트 5’를 중국정부가 선정하자 중국 CCTV는 다큐멘터리 특집을 기획했다. ‘베스트 5’로 인정받은 보이차를 테마로 ‘티엔츠푸얼(天賜普洱, 하늘이 내려준 선물 보이차)’을 제작하는 CCTV PD 류춘위(劉春雨)와 1년 여에 걸친 일정 조율 끝에 첫 출연하는 날 하염없이 내리는 비는 야속하지만 반갑기도 했다.

 

%uD30C%uC544%uC774%uB801%uC0AC%20%A9%20%uC0AC%uC9C4%3D%uC11C%uC601%uC218%20%uC81C%uACF5


영화와 TV를 연출하며 카메오 출연은 재미삼아 해봤지만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중국CCTV로부터 초대받아 중국 현지에서 보이차 전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상황은 기대보다 긴장이 앞섰다. 이틀 전 오후 6시30분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 KE885편은 4시간 35분 만에 쿤밍 창수이(長水)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국내선 항공편이 마감돼 쿤밍공항호텔에서 1박하고 다음 날 오후 징홍 까사(嘎洒)공항에 도착했다. 중국 CCTV 제작진이 예약해준 호텔에서 하룻밤 지새우고 드디어 촬영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드세게 내리는 비로 촬영이 늦춰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징홍을 벗어난 차는 보이차 산업 중심기지로 부각돼 성장일로에 있는 멍하이((勐海)현을 거쳐 라후(拉祜)족 자치지역인 란창현(瀾滄縣) 후이민향(惠民鄕)에 속한 징마이(景邁) 차산입구까지 3시간 만에 도착했다.

 

%uBE44%uAD6C%uB984%20%uAC00%uB4DD%uD55C%20%uCC28%uC0B0%28%uC67C%uCABD%29%uACFC%20%uBCF4%uC774%uCC28%uB97C%20%uB9CC%uB4DC%uB294%20%uC708%uB09C%uC0B0%20%uB300%uC5FD%uC885%20%uC5B4%uB9B0%20%uCC3B%uC78E%uC758%20%20%uD2BC%uC2E4%uD55C%20%uC790%uD0DC%A0%A9%20%uC0AC%uC9C4%3D%uC11C%uC601%uC218%20%uC81C%uACF5


SNS와 화상통화로 얼굴을 이미 익힌 CCTV PD 류춘위가 반갑게 맞이했다. KBS가 제작한 ‘차마고도(茶馬古道)’에 스태프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류 PD는 여유로운 진행 대신 우중촬영을 강행했다. “일광은 좋지 않지만 비오는 장면도 운치가 있다”는 연출자의 주장에 출연자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비를 흠뻑 맞아가며 옛 차마고도를 탐방하는 장면을 하루 종일 공들여 촬영했지만 중국 CCTV에 방영된 최종 완성본을 보니 그 부분은 3컷만 살아남았다. 연출자는 촬영 현장에서 필요 충분한 분량을 확보하려는 속성을 가진 부류라는 것을 잘 알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오늘 촬영할 메인은 ‘파아이렁’(帕嗳冷)을 모신 사당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파아이렁은 바옌렁(叭巖冷)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소수민족 발음을 한자로 표기하는 ‘음차(音借)’ 과정에서 발생하는 드물지 않은 현상이다. 파아이렁은 보이차가 생산되는 유일한 지역인 윈난에서 최초로 차나무를 재배해 보급한 부랑(布朗)족 두령으로 사후에 차조신(茶祖神)으로 모셔졌다. 푸(濮)족의 후예인 부랑족 우두머리였던 파아이렁을 기리는 노래 ‘파아이렁은 우리 영웅, 우리 조상이신 파아이렁이 대나무집 짓는 기술과 차나무 재배법을 알려주셨네, 그분은 우리 삶의 영원한 뿌리’라는 내용을 담은 조선가《祖先歌》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uBD80%uB791%uC871%20%uC871%uC7A5%uACFC%20%uD544%uC790%20%A9%20%uC0AC%uC9C4%3D%uC11C%uC601%uC218%20%uC81C%uACF5


1800여 년 전 윈난을 지배하던 남조국(南詔國)은 강인하고 용맹한 부랑족을 용병으로 앞세워 숱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보다 평화를 추구하는 파아이렁은 용병 차출과 외족 침입을 피해 교통이 편리하고 농산물과 물자가 풍족한 호반(湖畔) 지역을 버리고 험준한 산악지대로 들어가 새로운 생활터전을 찾아 나섰다. 이동 중에 우연히 발견한 차나무 잎으로 환자들이 치유되는 것을 알게 된 파아이렁은 야생차나무가 많이 서식하는 지역을 찾아 징마이산 속에 정착했다. 징마이산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타이족 왕과 분쟁이 있었지만 파아이렁은 타이족 왕이 보낸 화번공주(和蕃公主)를 아내로 맞이하며 갈등을 종식시켰다. 타이족 왕은 파(帕)라는 관직을 내려 부랑족에 대한 통치를 파아이렁에게 일임했다. 파아이렁은 ‘파’라는 관직에 ‘아이렁’이라는 이름이 더해진 존칭이다.

 

파아이렁은 대본영(大本營)을 전망 좋은 산등성이에 자리한 웡지(翁基)에 두고 주변 산채(山寨)를 관리했다. 돌도끼와 돌호미를 사용해서 비탈진 산기슭을 개간해 야생차나무를 옮겨와 심으며 순화(馴化)시켰다. 파아이렁은 평생을 차나무 증식과 재배기술을 주변 부락에 보급하는데 쏟았다. 말년에 접어든 파아이렁은 7공주에게 차산을 골고루 나눠주며 후대를 위해 “소와 말과 같은 가축은 재난과 질병이 발생하면 몰살해버린다. 금은보화를 물려주면 낭비하다가 궁핍해질까 염려된다. 생명력이 강한 차나무는 절대로 소멸되지 않으니 차나무를 소중히 키우면 결코 가난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라고 유훈을 남겼다. 파아이렁이 당부한 유지를 잘 받아들인 부랑족은 자자손손 차나무를 증식시켜 망징산(芒景山)과 징마이산(景邁山)을 세계최대 고차수(古茶樹)단지로 만들었다. 파아이렁이 예지한대로 부랑족은 차나무 하나로 풍족한 삶을 오늘도 누리고 있다.

 

 

%uBD80%uB791%uC871%uC774%20%uCC28%uB97C%20%uC7AC%uBC30%uD558%uB294%20%uACFC%uC815%uC744%20%uADF8%uB9B0%20%uBCBD%uD654%20%A9%20%uC0AC%uC9C4%3D%uC11C%uC601%uC218%20%uC81C%uACF5


%uD30C%uC544%uC774%uB801%uC0AC%20%uC9C0%uB3C4%20%A9%20%uC0AC%uC9C4%3D%uC11C%uC601%uC218%20%uC81C%uACF5

 

파아이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파아이렁사(帕嗳冷寺)는 징마이산에서도 깊숙한 곳에 있다. 타이족 마을인 징마이를 거쳐 사륜구동 SUV로 1시간 남짓 산길을 달리면 부랑족이 모여 사는 망징(芒景)이 나왔다. 시야를 가리는 비의 장막을 뚫고 더 깊은 산속으로 올라가니 파아이렁사가 있는 망홍(芒洪)촌이 나타났다. 파아이렁사를 알리는 패루(牌樓)를 지나 정원에 들어서니 파아이렁 후예인 현재 부랑족 족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수리야(蘇利亞)는 1950년 북경에서 열린 중화인민공화국설립 1주년 기념식상에서 자신이 만든 보이차를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에게 선물로 증정하기도 했다. 

 

부랑족 족장은 향불을 피워 사당 안에 모셔진 부랑족 영웅 파아이렁과 나란히 서있는 타이족 왕비동상에 먼저 예를 표하고 파아이렁사로 안내했다. 파아이렁 후손인 자신이 현재도 차를 만드는 부랑족이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득담은 표정과 힘 있는 말투는 중국어가 짧은 나와 표준어에 약한 그 사이의 간극을 충분히 메워줬다. 찻잎을 활용한 다양한 부랑족 전통음식과 징마이산 고차수에 기생하는 방해각(螃蟹脚)으로 담근 술로 만찬을 미리 준비한 그였지만 비로 인해 일정이 지연된 관계로 마음만 받고 다음 촬영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CCTV 촬영팀이 장비를 추스르는 짬 시간 사이 그와 나는 짧은 만남과 석별의 정을 담은 술잔을 나눴다. 아침보다 빗줄기는 잦아들었지만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uD30C%uC544%uC774%uB801%uACFC%20%uD0C0%uC774%uACF5%uC8FC%uC5D0%uAC8C%20%uC608%uB97C%20%uC62C%uB9AC%uB294%20%uBD80%uB791%uC871%20%uC871%uC7A5%uC744%20CCTV%20%uCD2C%uC601%uD300%uC774%20%uCD2C%uC601%uD558%uACE0%20%uC788%uB2E4.%20%A9%20%uC0AC%uC9C4%3D%uC11C%uC601%uC218%20%uC81C%uACF5


전체댓글0

0 /150
  • 최신글
  • 공감 순
  • 비공감 순
더보기

TOP STORIES

Culture > LIFE 2018.09.26 Wed
전 세계 울린 방탄소년단에 외신들 “아이돌의 정석”
정치 > 경제 2018.09.25 Tue
추혜선 “포스코의 노조 와해 공작 드러나”…노조대응 문건 공개
Health > LIFE 2018.09.25 Tue
의사가 권하는 ‘명절 증후군’ 싹 날려버리는 법
연재 > 서영수의 Tea Road 2018.09.25 Tue
‘6대차(茶)류’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백차(白茶)
한반도 2018.09.25 Tue
봄 이어 가을, 남·북·미 회담 삼각관계 데자뷔
국제 2018.09.25 Tue
[동영상] “방탄소년단 유엔 연설은 역사적 순간”
국제 > 한반도 2018.09.25 Tue
트럼프 만난 文대통령…비공개 회담선 무슨 대화 오갔나
경제 2018.09.25 Tue
평양 대신 워싱턴行 택한 정의선 홀로서기 가능할까
LIFE > Sports 2018.09.25 Tue
숫자로 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흥망사
갤러리 > 만평 2018.09.24 월
[시사 TOON] 평양 정상회담, 추석상 착륙
경제 > 사회 2018.09.24 월
 ‘추석은 가족과 함께’ 옛말...호텔·항공업계 ‘金특수’ 누린다
LIFE > 연재 > Health > 이경제의 불로장생 2018.09.24 월
[이경제의 불로장생] 총명은 불로장생의 길
LIFE > Culture 2018.09.24 월
한반도를 둘러싼  세 개의 《애국가》
국제 > 연재 > 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2018.09.24 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도운 후세 다쓰지 변호사 추모제
사회 > 연재 >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2018.09.24 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려면
경제 > 국제 2018.09.23 일
혼돈의 미국 11월 중간선거…한국경제 먹구름
LIFE > Health 2018.09.23 일
당뇨엔 과일, 고혈압엔 술, 신장병엔 곶감 조심
한반도 2018.09.23 일
北
사회 > OPINION 2018.09.23 일
[시끌시끌 SNS] 퓨마 ‘호롱이’ 죽음과 맞바꾼 자유
LIFE > Culture 2018.09.23 일
헬프엑스 여행기 담은 김소담 작가  《모모야 어디 가?》
LIFE > 연재 > Health > 노진섭 기자의 the 건강 2018.09.23 일
[노진섭의 the건강] 급할 땐 129와 보건복지부를 기억하세요
리스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