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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9·11’과 안산 ‘세월호’, 기억과 추모의 음악‘

[박종현의 싱송로드] 그때’ 어디에 있었으며, ‘지금’ 어디에 있는가?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수석연구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31(Tue) 19:30:00 | 14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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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필자가 미국에서 한 수업을 듣던 때의 일이다. 2001년 9월11일 뉴욕에서 벌어진 세계무역센터 테러를 강의 주제로 다루던 첫날이었다. 늘 활기차던 옆자리의 예술대학 학생이 엎드려 있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늘 그렇듯 교수가 “오늘 논의할 글들을 어떻게 읽었어요?”라며 일종의 인사를 던졌을 때 그 학생이 울음을 터뜨리며 “전 그때 맨해튼에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교수가 말을 건넸다. “고마워요. 와 줘서. 지금 가도 돼요.” 학생은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문을 열고 나갔다. 10여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되돌아오는 ‘기억’의 위력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당시 듣던 수업은 ‘기억학’이었다. 서구에서의 기억학은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참전자들이 겪은 트라우마를 연구하며 본격적으로 확립된 연구들을 뜻한다. 유학 중 들었던 기억학 수업의 많은 부분은 사람들이 전쟁·핵실험·인종 학살과 같은 집단적 기억들을 어떻게 겪고 또 재생산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까지 학기 내내 마음이 무거워져 있던 기억이 난다.

 

 

‘9·11 테러’에 대한 뉴욕 음악가들의 작업

 

인류학자 커센블랏-짐블렛은 미국인들에게 있어 ‘9·11 테러’는 다른 재난들과는 그 기억의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미국의 매체들에서 외면되거나 선택적으로만 노출되었던 타지의 수많은 재난들과는 달리, 각종 언론과 기기를 통해 샅샅이 그 현장이 생중계됐다. 기억의 대상과 경험자-목격자 사이에 시간적·심정적 거리를 전혀 둘 수 없는, 이른바 ‘섬광 기억(flashbulb memory)’의 조건에 있었다는 것이다. 숱한 재난사들 중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사진이 찍히고 보여졌으며, 즉각적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기억은 추모를 통해 온전한 옛일이 될 수 없었고, 끊임없이 현재로 되돌아오는 이른바 집단적 ‘멜랑콜리아’(과거를 과거로 보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지금’으로 호출해 살게 되는 상태를 일컫는 프로이트적 용어)가 되었다.

 

‘9·11 테러’가 발생했던 뉴욕의 예술가들, 그중에서도 음악가들은 이 트라우마에 대해 무엇을 했으며, 또 해 오고 있을까? 시의 형태를 기타 소리 등과 긴장 속에 조응시키며 낭송하는 방식의 음악을 선보인 뉴욕 출신의 음악가 아니 디프랑코는 사건 몇달 후에 《자명한(Self-Evident)》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9분여의 장시(長詩) 속에서 그는 목격의 기억을 비유적으로 되새긴다. 동시에 ‘승리자들’, 다시 말해 살인자들·기득권자들·언론들, 그리고 무지한 이들 모두를 한데 묶어, 그들을 위해 분노와 풍자를 섞은 ‘축배’를 하나하나 들어주며 조롱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사라지지 않고 머물 수밖에 없는 기억을 이야기한다. 

 

응징이 준 교훈에서 나는 푸른 독 연기가 / 여전히 허공에 떠 있어 / 우리 신발 위에 재가 있고 / 우리 머리 위에도 있어

(아니 디프랑코의 곡 《자명한》의 일부)

 

사건 당시 뉴욕에서 한창 작업 중이었던 또 다른 음악가 윌리엄 바신스키는 작업이 끝날 무렵 창가에서 그 재난의 현장을 목격했다. 그는 당시 자신이 과거 릴 테이프에 녹음한 소리의 덩어리를 그 테이프가 닳을 때까지 반복 재생시켜 그 소리들이 점점 늘어져 사라지는 것을 녹음해 내는 실험적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 작업들에다 자신이 촬영한 ‘그곳’의 장면들을 커버 아트로 붙여 《붕괴하는 루프들(The Disintegration Loops)》이라는 이름의 시리즈를 발표한다. 거듭되는 하나의 소리가 흔적조차 사라져가는 것을 수십 분 가만히 지켜보도록 하는 음악 위에다 이미지들을 얹음으로써, ‘기억’과 ‘반복’, ‘보냄’과 ‘목격’ 등의 단어가 가진 의미들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로 청자를 이끈다.

 



음악을 통해 기억의 과정에 참여하다

 

필자는 ‘기억’ 수업을 들은 지 얼마 후 세월호 참사 소식을 외지에서 들었다. 세월호 참사는 필자를 비롯한 많은 ‘한국인들’에게 (어떤 이들에게는 아닌 듯 보이지만), 수년째 ‘현재’로서 살고 있는 기억이다. 음악인들의 수많은 몸부림이 있었다. 많은 공연들이 있었다. 한편에선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페스티벌 공연을 한 지자체 산하기관에서 ‘국민 정서’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취소해 버렸다. 그 과정에서 공연을 통해 추모의 뜻을 함께하고자 했던 음악인들이 졸지에 ‘생각 없는 유흥인들’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곡을 통해 기억의 과정에 참여한 경우들도 있었다. 작곡가 황호준과 판소리꾼들의 연행집단 ‘바닥소리’가 함께 써 발표했던 추모곡 《밤하늘 별빛들》이 그런 경우다. 황호준이 작곡한 이 곡은 계면조(슬픔 등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많이 쓰이는 한국음악의 선법 중 하나)로 시작하여, 뒤에 살풀이 구음의 형식을 빌려 추모하고 위로하고자 하는 바람을 음악적으로도 드러낸다.

 

유채꽃 만발한 섬은 저기 있으니 / 어서 나와 가자꾸나 봄나들이 가자꾸나 

(바닥소리의 《밤하늘 별빛들》 초두)

 

각지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이 모여 프로젝트 앨범을 꾸리기도 했다. 2015년에 나왔던 《다시, 봄》 앨범이 그것이다. 가수 권나무의 《이천십사년사월》은 그때에 대해 잊지 못하는, 혹은 잊을 수 없음의 의미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두 잊겠지만 몸이 기억하여 / 이맘때면 잠깐의 감기라도 나눠 앓아서 / 사랑했고 잊혀졌던 / 정말 사랑했고 이내 잊혀졌던 것에 노래를 

(권나무의 《이천십사년사월》 후렴)

 

 

어느새 9·11은 16년 전의 일이 되었고, 우리의 세월호도 3주기가 지났다. 미국의 컨트리 싱어 앨런 잭슨은 《어디에 있었어요?(Where were You?)》라는 노래에서 담담한 어조로 끊임없이 묻는다. 그때 어디에 있었으며, 무슨 소식을 듣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말이다. 울었는지, 분노했는지, 기도했는지 등등. 이러한 응시는 사실 과거가 아니라 ‘지금’에 대한 질문이다. 각자가 ‘그 일들’과의 관계 속에서 현재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우리도 앞으로 십 수년, 아니 수십 년간 우리가 그때 어디에 있었으며,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처럼 끊임없이 호출될 것이다. 학문적으로든, 예술적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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