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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방치된 사형제의 비현실성에 "감형 없는 종신형 도입해야"

사형수는 '교도소의 황제' 비판 목소리도…독방 사용·노역 제외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9(Fri) 09:00:00 | 1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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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제 논란’에 휩싸인다. 법정 최고 형량에 ‘사형’이 있기는 하나 1997년 12월 이후 21년째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사형이 집행될 확률은 거의 없다.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나 다름없다.

 

이명박 정부 때 사형집행을 시도했다가 외교부와 시민사회의 반대로 유보된 적이 있다. 국제사회와 사형을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려는 대통령은 나오지 않을 것같다. 현행 형사소송법에는 ‘사형 집행의 명령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고만 명시돼 있다. 지난 2월21일 법원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간 등 살인, 추행유인, 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36)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이씨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법원도 이를 수용했다. 이씨는 다음 날인 2월22일 항소장을 제출해 2심에서 다시 혐의를 다투게 됐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도 원심이 그대로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이영학은 여중생 딸의 친구(15)를 집으로 유인해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먹인 후 성추행하다 살해했다. 딸과 함께 시체를 강원도 영월군 소재 야산에 암매장했다. 이외에도 아내(사망)에게 10여 명의 남성들과 성매매를 강요했고, 희소병을 앓는 딸 치료비 명목으로 10억원이 넘는 돈을 불법 모금한 뒤 후원금으로 호화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의 죄질이 불량하고 극악한 것은 맞다. 하지만 한 명을 살해한 이씨에게 사형이 최종 확정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흉악범이라도 여러 명을 살해하지 않고는 사형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20대 여성을 잔혹하게 살인한 오원춘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보통 인명을 해친 기준으로 보면 법원은 2명까지는 무기징역, 3명 이상의 경우 사형을 적용해 왔다. 물론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숫자가 사형 선고의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지금까지 법원은 “사형은 극히 예외적인 형벌로 누구나 정당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만 선고해야 한다”며 사형 선고의 제한성을 강조했다. 범죄자가 인명을 해친 정황도 참작한다. 문제는 이런 기준이 판사의 주관적 판단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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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법감정 무시한 판결

 

홍아무개씨(59)는 1997년 후배를 살해해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2012년 출소했다. 4년 뒤인 2016년 10월30일 홍씨는 또다시 살인을 저질렀다. 자신이 머무르던 수원시 팔달구의 한 인력사무소 내 숙소에서 A씨와 술을 마시다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다음 날인 31일에는 팔달구의 한 모텔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다방 종업원 B씨(여·52·중국 국적)와 성매매를 하다가 화대를 놓고 다투는 과정에서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홍씨는 이렇게 3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검찰은 “피고인은 살인죄 전력이 있음에도 또다시 두 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등 인명 경시 태도가 극에 달해 구금 생활로 교화될지 의문이고 재범의 위험이 크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해 3월에 열린 재판에서 법원은 홍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어린 시절 다소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고, 복역·출소 과정에서 의지할 가족이 없어졌으며 일용직을 전전하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면서 “피고인이 도주하거나 사체를 은폐하지는 않은 점, 범행 일부를 자백한 점 등에 비춰 피고인의 생명을 박탈하기보다는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해 속죄하도록 하는 게 옳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법원의 판단이 들쭉날쭉하다는 것은 이 사건의 판결을 보면 알 수 있다. 2001년 2월 전남 나주 드들강에서 당시 여고 2학년이던 강수연양(18)이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됐다. 이 사건은 15년 동안 미해결로 남아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김아무개씨(40)가 범인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수연양을 살해한 지 약 2년 후인 2003년 7월 전당포 주인 등 2명을 유인해 잔혹하게 살해한 후 야산에 암매장했다. 김씨는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박수연양의 살해 수법과도 비슷했다. 박양이 살해될 당시 김씨의 전과는 8범이나 됐다.

 

1·2심은 김씨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고, 지난해 12월22일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김씨는 ‘드들강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16년 만에 법적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법원의 선고 후에 뒷말이 무성했다. 김씨의 경우 이미 2명을 잔인하게 살해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고,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며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범행을 숨기기 위해 행적을 조작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유리하게 정상 참작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3명을 죽인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은 국민의 법감정을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난을 받았다. 판사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한 명을 살해한 흉악범이나 3명을 살해한 흉악범에게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형이 선고되는 현실이다.

 

현재 국내에서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는 군 사형수 4명을 포함해 총 65명이다. 이들은 미결수 상태로 수형 생활을 하고 있다. 마지막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는 2014년 6월21일 강원도 고성군 육군 22사단 일반전초(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부상을 입힌 임도빈(25)이다. 그는 2016년 2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일반인 중에서는 장재진(28)이 마지막으로 사형이 확정됐다. 그는 2014년 5월 대구에 있는 전 여자친구 집에서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혐의로 1·2심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대법원은 2015년 8월 장씨에 대한 원심을 확정했다. 만약 이영학에게 사형이 확정되면 66번째 사형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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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의 황제가 된 사형수들

 

사형수는 일반 재소자들과 달리 형이 집행되지 않은 ‘미결수’ 신분이다. 구치소 안에서는 ‘최고수’로 불린다. 더 무거운 형량을 받은 수감자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들은 교도소가 아닌 구치소에 수감된다. 현재 민간인 사형수는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 등 전국 5개 구치소에 분산 수용돼 있다. 이들은 일반 기결수와 달리 교정·교화 프로그램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연사할 때까지 사형수로 있는 것도 아니다. 죄질과 수형 태도 등을 종합해 감형 혜택도 주어진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10년 이상 복역하면 가석방도 가능하다. 현행 형법 제73조에 따르면, 유기징역형을 선고받으면 형기의 3분의 2, 무기징역형은 10년을 복역하면 가석방 대상에 포함된다. 사형수에서 무기수가 되면 기결수 신분으로 바뀌어 교도소로 이감된다. 이런 경우 사형수로 수감돼 있던 기간은 교정 기간에서 제외되고 새롭게 형기를 시작하게 된다.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지금 사형수에게 구치소나 교도소는 ‘호텔’이다. 그만큼 편하다는 뜻이다. 2016년 기준으로 사형수 1인당 연간 2000만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간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이들을 먹고 재우는 데 연간 13억원의 국민 세금이 쓰이고 있다. 더군다나 사형수는 독방 수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대부분 혼자서 방을 사용한다. 물론 구치소의 수용시설 수준에 따라 혼거실에 수용되기도 한다. 사형수는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노역도 하지 않는다. 2008년 법이 개정되면서 지금은 사형수도 희망자만 정역(일정한 노역)에 참여할 수 있다.

 

작업시간은 하루 5~6시간이다. 작업 종류에 따라 노임을 받기도 하는데, 1일 1600~8000원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위험하고 힘든 노역을 생각하면 착각이다. 작업을 하지 않으면 독거 사형수는 하루 1시간, 혼거 사형수는 하루 30분 운동시간이 야외활동의 전부다. 거의 매일 구치소에 있으면서 형 집행을 기다리는 것이 일과라면 일과다. 최고 흉악범인데도 불구하고 독방에서 노역도 하지 않고 놀고먹으면서 세금만 축내는 실정이다.

 

교도소 안에서 사형수들은 일반 수형자들과 달리 빨간 명찰을 단다. 옛날부터 교도소 안에서는 빨간 명찰에게 관행적인 편의가 제공됐다. 사형 집행이 있을 당시엔 ‘곧 죽을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마지막 배려 차원이었지만, 지금은 이것이 사형수 수형 생활의 특혜로 작용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사형수들은 ‘교도소의 황제’나 다름없다.

 

그렇다 보니 사형수들은 교도소 안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호시탐탐 담장을 넘본다. 21명을 참혹하게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의 경우 2009년 8월 미국의 시사화보 잡지 라이프가 뽑은 세계의 연쇄살인범 31인에 포함됐다. 유영철은 간혹 교도소 안에서도 난동을 부려 언론에 나오고 있다. 2011년에는 소지품을 검사하는 교도관에게 달려들어 “내가 사이코인 걸 모르냐”며 소동을 부렸다. 2014년 12월에는 포르노물을 불법 반입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소지품 검사를 받다가 교도관의 멱살을 잡고 난동을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나는 이미 끝난 사람이다. 건들지 마라’며 폭언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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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초등학생 이혜진·우예슬양을 유괴한 후 토막 살인한 정성현은 사형수 중에서 ‘소송왕’으로 불린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협박을 당해 누명을 썼다’며 국가 등을 상대로 4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가 하면, 서울구치소장을 상대로 징벌처분 소송을 내기도 했다. 정씨의 소송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사에 ‘살인마’라는 표현을 했다는 것을 문제 삼아 한 지역신문사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정두영은 철강회사 회장 부부 등 9명을 살해하고 10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흉악범이다. 그는 연쇄 살해 동기에 대해 “내 속에 악마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런 그가 2016년 8월 대전교도소 담장을 넘어 탈옥하려다 붙잡혔다.

 

현재 우리나라의 형벌 제도나 교도 행정 등은 사형이 시행될 당시에 맞춰져 있다. 이젠 감형 없는 종신형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흉악범인 사형수들이 구치소나 교도소 안에서 ‘놀고먹는’ 비현실적인 상황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들에게 교도소는 ‘호텔’이 아니라 죽기보다 무서운 ‘감옥’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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