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 지자체·학교 아닌 학생 입장서 문제 풀어라”
  • 김종일 기자·박소정 객원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09 09:59
  • 호수 1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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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살인자 ‘라돈’, 당신 아이를 노린다] 전문가들 견해

 

400개가 넘는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실내 라돈(Radon) 농도가 권고 기준치를 초과하는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라돈은 세계보건기구(WHO)가 폐암 발병의 주요 원인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토양이나 암석 등에 존재하는 자연방사성 가스인 라돈은 건물 바닥이나 벽의 갈라진 틈을 통해 실내로 유입된다. 밀폐된 공간에서 고농도 라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폐암 등에 걸릴 수 있어 ‘침묵의 살인자’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강건욱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라돈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인과관계는 의학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이미 널리 인정받고 있다”면서도 “무색·무취한 특성 탓에 아직 국내에는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사저널 1486호 커버스토리 ‘단독, 침묵의 살인자 라돈, 당신 아이를 노린다’ 기사 참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문가들은 라돈의 위험성을 한결같이 경고하고 있다. 특히 어린 학생일수록 라돈에 노출되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녀들을 매일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런 우려에 대해 한 발짝 물러서 있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교육부의 측정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현재 교육부는 라돈 측정을 3개월간 연중(4~6월 혹은 9~11월) 1회 실시하도록 하고 있는데, 지금 방식으로는 온도 변화 등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하는 라돈의 위험성을 파악하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라돈은 보통 겨울에 많이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라돈 농도가 봄에 기준치 이하로 측정됐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강원 춘천의 한 학교에서 실시간 측정기로 라돈 농도를 측정하는 모습 © 시사저널 박소정


 

일선 학교에서조차 교육부의 측정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교 관계자는 “지금의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교 관계자도 “작년 측정 결과에 반신반의하고 있다”며 “라돈 농도가 높게 나왔는데, 한 번의 측정 결과라고 무시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도 쉽지 않아 난처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라돈 측정 시 반드시 자격증 있는 전문가를 고용하고 등재된 측정기기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측정 결과도 즉시 공개하도록 권고한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측정에서부터 문제 해결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승연 연세대 자연방사능 라돈안전센터장·환경보건센터장은 “병 치료의 시작이 정확한 검진과 진단이듯 라돈 해결도 제대로 된 측정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금처럼 90일 이상 걸리는 측정 방식은 저렴하지만 시간대별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며 “과거엔 실시간 측정 장비가 비싸다는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지금은 꽤 저렴해진 만큼 예산을 투입해 측정을 보다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정수 환경안전건강연구소 소장은 “점검을 1층으로 제한하면 안 된다”며 “1층이 기준치를 초과했으면 2층 이상도 같이 점검해야 전체적인 위험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측정 지점이 학교 전체에서 단 한 곳뿐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교육부는 라돈 저감을 위해 일선 학교에 환기 조치 등을 강화하고 작년 측정 결과를 토대로 관리 매뉴얼 개정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또 고농도 라돈 발생 의심 학교를 대상으로 시간대별 측정도 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강원도의 한 학교 관계자는 “교육부는 환기를 하면 라돈 문제가 대부분 해결된다고 하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열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며 “라돈을 피하면 미세먼지가 들어오고, 미세먼지를 막으면 라돈에 갇혀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일선 학교 관계자들은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이 없으면 제대로 된 측정·저감시설 도입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와 학교가 공급자 중심적으로만 라돈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 센터장은 “현재 라돈 문제에는 수요자인 학생·학부모·시민이 빠져 있다”며 “이들이 라돈 감시를 직접 할 수 있게 해 줘야 측정 과정도 신뢰할 수 있고 여기서 생성된 데이터를 믿고 대안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학생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라돈 영향을 저감하는 방향이 무엇일지 지방자치단체와 학교, 학생, 학부모 등이 함께 관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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