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건강검진 필요하다…‘성장진단 컨설팅’
  • 임수빈 산업은행 선임컨설턴트 (sblim@kdb.co.kr)
  • 승인 2018.12.0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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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은행의 작은 컨설팅 이야기] 12회 - 새롭게 선보이는 중소기업 혁신성장 지침서

우리가 병원을 찾는 이유는 아픈 곳을 치료받기 위해서다. 외상을 입어 당장 응급조치가 필요한 상황이거나, 일상생활 중에 몸의 이상을 감지하게 되면 우리는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을 하고 곧바로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꼭 어디가 아프지 않아도 병원을 찾는 경우가 있다. 바로 건강검진을 받을 때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컨설팅을 의뢰하는 경우는 경영상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여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할 때이다. 가장 일반적인 사례이며 컨설턴트에게도 익숙한 컨설팅이다. 그러나 기업이 현재 상태나 미래 전략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할 때는 사람의 건강검진에 해당하는 조금 특별한 컨설팅이 필요하다. 이런 성격의 컨설팅은 사람의 건강검진과 비슷한 점이 여럿 있다. 우선, 아무래도 당장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생각만 하다 결국 컨설팅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리고 잠재적인 위험은 때에 따라 사후에 수습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기에, 컨설팅이든 병원 진료든 예방은 언제나 치료에 우선한다는 점도 둘 사이의 유사점으로 꼽을 수 있다.

2003년 최초 설립 이후 800건 이상의 컨설팅을 수행한 산업은행 컨설팅실은, 다른 컨설팅 하우스와 달리 컨설팅 이후에도 여신 거래 중인 기업의 Life-cycle을 장시간 지켜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이러한 진단 및 예방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고 이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신설하였다. 2018년 4월에 런칭한 성장진단 컨설팅이 그것이다. 성장진단 컨설팅은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우량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경영 진단을 실시하고 지속 성장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실은 금년 4월부터 현재(11월 말)까지 6건의 성장진단 컨설팅을 수행하였다. 뚜렷한 문제가 보이지 않는 기업체를 컨설팅한다는 것은 컨설턴트로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때문에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는 순항 중이다. 이 중 CEO들의 만족도가 높았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로마무역: 주마가편(走馬加鞭),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더하다.

아로마무역은 충주에 위치한 중소기업이다. 회사이름은 생소할 수 있으나 이 회사가 유통하는 제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로 50여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프리미엄 향초 양키캔들이다. 아로마무역은 2007년 양키캔들의 국내 독점총판계약을 체결하며 국내시장에 처음 향초 문화를 도입했으며, 현재 140여개 매장을 운영하며 양키캔들의 600여 가지 품목을 공급하고 있다. 아로마무역은 양키캔들 유통을 단순히 ‘초장사’로 보지 않고 향기사업이라는 비전을 설정하여 국내에 전개했다. ‘제2의 초콜릿 시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공간을 향기로 인테리어 한다는 스토리텔링으로 감성 마케팅을 펼치며 국내 전무했던 향기시장을 새로이 만들어냈다. 이같은 열정으로 향초를 선물아이템으로 확실히 각인시켰으며, 양키캔들 외에도 고급 브랜드인 프랑스의 메종베르제, 중저가의 라프라비를 보유하여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특히 라프라비는 자사 브랜드로 디퓨저 시장에서 점차 그 이름을 알려가고 있다.

 

라프라비 디퓨저 타임투파티 (사진제공 = 산업은행)


2000년에 태어나 양키캔들을 유통하며 10여 년 만에 준마(駿馬)로 변모한 아로마무역은 화장품 사업이라는 채찍을 들었다. 회사는 신사업 전략의 타당성과, 향초 사업의 개선을 위해 고민하던 차 지난 6월 우리 실과 처음 만나게 되었다. 몇 차례 회의 뒤 우리는 아로마무역의 기존사업과 계획 중인 신사업의 전반을 진단하게 되었다.

아로마무역 향초 사업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가맹점이다. 디자인보다 향이 중요한 향초의 특성상 다른 제품에 비해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이 높다. 또한 본사는 고객이 온라인몰에서 제품을 구입하면 이를 가맹점으로 연결시켜 수익을 이전하는 방식의 가맹점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때문에 복수의 가맹점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다수일 정도로 가맹주들의 만족도가 높은데, 우리는 이에 착안하여 기존 운영 방식의 보완과 함께 가맹점 확장에 대한 전략을 제안하였다. 또한, 유해물질, 모조품 위험이 있는 병행 제품의 국내 유통에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실행 계획을 수립하였다.

국내 브랜드 제품, ODM 제품 및 자사제품의 수출을 계획하고 있는 신사업과 관련해서는, 중국 시장 분석, 벤치마크 조사 및 케이스 스터디 등을 통해 전략적 로드맵을 제시하였다.

컨설팅을 마친 후 경영진은 회사의 현안들을 객관적인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 좋은 기회였다는 의견을 전해주었다. 컨설팅 기간 중 우리가 본 아로마무역은 매우 신중하고 현명한 회사였다. 특히 경험 많은 회장님과 감각 있는 사장님의 조합이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어, 아로마무역이 키워나갈 우리나라 향기 산업이 기대된다.


케이피텍: Next Generation에 거는 기대

두 번째 회사는 PVC필름, PET필름 전문 제조기업인 케이피텍이다. 케이피텍은 설립 이후 30여 년간 플라스틱 필름이라는 한 우물만 파온 국내 강소기업으로, 1998년 PVC필름 공장을 세울 때 산업은행과 인연을 맺었다. 케이피텍은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고체 형태의 원재료를 매입하고 이를 가공하여 투명한 필름 형태의 제품을 생산한다. 이후 PVC필름은 주로 제약회사로 판매되어 알약 포장에 사용되고, PET필름은 성형업체로 납품되어 재가공을 거치는데 최종적으로 식품포장용기, 일회용컵, 가구 외장 등에 활용된다.

케이피텍은 PVC에서 PET 중심으로 개편되어가는 필름시장에 잘 대응하여 지속적인 매출 성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경영진은 잠재적인 위험을 고려하여, 지금이 회사의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특히 창업주의 2세인 현 대표이사는 대기업에서 해당 시장 및 제품에 대한 경력을 쌓은 후 6년 전 케이피텍에 합류했다. 변해가는 필름시장에서 케이피텍의 위상을 지켜나가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표이사는 케이피텍의 경쟁력을 산업은행과 함께 진단하기로 결정하였다.

임직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회사를 분석해보니, 케이피텍의 어려움은 주로 외부 환경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 원재료가격 상승, 제품단가 하락, 정부의 플라스틱 제품 사용 규제와 같은 이슈들은 회사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문제들은 회사가 직면한 당장의 위기요인은 아니었지만 케이피텍은 이미 장기적 관점에서 수익성 확보와 매출 확장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케이피텍의 대표제품 무독성 PVC 필름(좌), A-PET 시트(우) (사진제공 = 산업은행)


우리는 매출 증대를 위해 회사가 기획 중인 신제품의 시장을 조사하여 관련 기업 및 잠재 리스크 분석, 그리고 리스크별 대응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후 수익성 개선을 위해 회사의 영업전략의 수정을 제안하였다. 과거에는 시장 내 경쟁자가 적고 수급이 타이트해 제품 경쟁력보다는 영업망을 잘 구축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저렴한 중국산 설비의 유입으로 진입장벽이 낮아져 공급과잉 상황인 요즘은 기존의 영업방식으로는 수익성을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는 창업주 때부터 이어져오던 관계형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내부통제 강화에 따른 체계적인 수익, 생산 관리에 힘쓸 것을 강조했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 새로운 제품이나 시장으로 눈을 돌릴 것을 제안했고 저가 수주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 강화, 생산본부와 연계된 물량 수주를 통한 계획 생산 등 세부 전략들을 수립했다. 진단 기간 내내 함께 해왔던 대표이사는 적극적인 자세로 컨설팅 결과를 반영하여 구체적인 제품과 타겟 시장을 내년도 사업 계획에 반영하였다. 특히 회사를 객관적으로 진단한 경쟁력 맵이나 내부통제 개선에 대한 내용에 대해 만족감과 감사함을 표시하였다. 30년을 지나온 케이피텍의 미래는 신중하고도 힘있게 시작되었다.

컨설팅과 의료서비스의 다른 점은 치료다. 컨설팅에도 진단과 처방의 기능은 있으나, 문제점의 해결에 해당하는 치료는 온전히 회사의 몫이다. 의료서비스로 따지면 처방약의 규칙적인 복용, 식단관리, 운동 등의 실천은 환자의 숙제인 셈이다. 앞서 소개한 두 회사는 실천 의지가 충분해 보였다. 이젠 기대하는 마음으로 회사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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