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60척 해외 수주 계약서 있는데도 2008년에 갑자기 태도 변해”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11.0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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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몰락 과정 지켜본 계열사 대표 ㄱ씨의 증언

 

▲ 2008년 12월 영장 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오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시사저널 임준선

대검 중수부가 C&그룹에 본격적인 사정의 칼을 들이대자, 정계와 재계 주변에서는 태광실업의 박연차 전 회장과 C&그룹의 임병석 회장을 오버랩하는 시각이 많아졌다.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임회장을 ‘호남의 박연차’로 부르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측과 밀착된 박연차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임회장 역시 노무현 정부에서 사세를 급속히 키웠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구 여권 사정’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도 키웠다. 실제 C&그룹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지낸 ㄱ씨는 10월27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임회장이 무리한 경영을 한 측면은 있지만, 2008년 당시 은행권에서 갑자기 대출을 일거에 막아버리는 등 정권 교체 이후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가 있었고, 그것이 그룹의 종말을 초래하는 결정적 계기였다”라며 기획 사정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2008년 그룹의 몰락 과정을 지켜본 그는 이후 회사를 떠났다. 그를 만나 내막을 들어보았다. 

2008년 당시 회사가 어려워지게 된 과정이 어땠나?

주거래 은행이던 우리은행에서 갑자기 자금 대출을 막았다.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C&중공업이 선박 60척을 해외 수주했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것이 순조롭게 되었으면 상황은 달라졌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당시 (수주) 계약서만 있으면 은행에서 대출해주는 것이 관례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런 관례를 깨고 은행에서 틀어막았다.

왜 그랬다고 보나?

그때가 외화 유동성 위기가 오면서 은행도 어려울 때였다. 서슬 퍼렇던 새 정부의 눈치도 살필 때였다. 은행에서 C&그룹의 대출 규모를 파악하고,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규모에 비해서 대출이 너무 많다고 봤겠지. 또 그때 박해춘 행장이 물러나고 우리은행장이 바뀌었다. 그리고 갑자기 대출이 막혔다. 그러면서 완전히 자금이 막히고 꼬이고 내부에서 임금이 체불되고, 그때가 2008년 5월 전후이다. 그 전까지는 정말 괜찮았다.

임병석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어땠나?

상당히 저돌적이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 오버페이스한 것은 분명히 있었다. 그는 항상 임원들을 모아놓고 “나는 사심이 없다. 집도 없다. 여기에 오로지 ‘올인’한다. 자신 있다”라고 수시로 강조했다.

임회장 등이 호남 정계 인맥과 유착되었다는 말들이 많았는데.

나도 회사에 있을 때 그런 소문을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경영진측에서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한 번은 ㄱ씨(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의 자금이 회사에 들어왔다는 소문이 사내에서 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임회장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직접 해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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