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인맥 잔치’에 누가 끼었나
  • 감명국·김지영 기자 ()
  • 승인 2010.11.0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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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그룹 수사 파장, 야권에서 여권으로…‘MB 최측근’ 천신일 회장·여당 중진 의원 등 거명

 

▲ 지난 10월24일 구치소로 가기 위해 대검 청사를 나서고 있는 임병석 C&그룹 회장(가운데). ⓒ연합뉴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중수부’(中搜部)라는 약자로 쓰인다. 그런데 때로는 ‘中’자가 ‘重’자로 혼동되기도 한다. 그만큼 중수부가 직접 담당하는 수사는 묵직하다는 느낌을 준다. 2008년 중수부는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 수사로 정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몰고 온 수사였다. 이후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갔던 중수부가 침묵을 깨고 1년5개월 만에 다시 칼을 빼들고 나선 것이 ‘C&그룹 비리 의혹’ 수사이다. 이미 몰락의 과정을 밟고 있던 호남 연고의 중견 기업에 대해 중수부가 직접 칼을 들이대자 처음에는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검찰이 박연차 게이트에 이어 또다시 ‘노무현 정부 죽이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의 시선도 나왔다. 하지만 대검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어렵게 개시한 (중수부의) 첫 수사이다. 우리가 바보가 아닌 이상, 구(舊) 정권만 타깃으로 삼겠나. 두고 보면 안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임회장, 지연·학연·혈연 총동원

▲ 임병석 회장과 같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임회장의 로비 의혹과 관련해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김재록씨 ⓒ연합뉴스

수사가 진행될수록 분위기도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처음 바짝 얼어붙었던 야권의 긴장감은 서서히 여권으로 옮겨가고 있다. “2007년 말, 2008년 초 급격한 위기의식을 느낀 C&측이 이명박 정부 주변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을 것이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이름은 여기서도 등장한다. 한 여당 의원이 임병석 회장,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 등과 가깝게 지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C&그룹에 대한 부당 대출 의혹을 받고 있는 박 전 은행장은 지난 6·2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충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그는 현재 용산역세권개발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수사 초기에는 대부분 야권 인사들이 주로 거론되었다. 특히 ‘486 정치인’인 ㅇ씨와 또 다른 ㅇ씨, 그리고 ㅅ씨가 등장한 것은 뜻밖이었다. 모두가 참신한 이미지로 민주당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급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거론된 이들은 모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저마다 “내 이름이 왜 거론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입장이다.

<시사저널>이 임병석 회장 주변을 다양하게 접촉하면서 수집한 정계 인맥의 면면을 보면, 확실히 김대중 정부 및 노무현 정부 인사가 많다. 임회장은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호남의 좌장 역할을 했던 ㅇ 전 의원과 절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회장의 성장 배경에 ㅇ 전 의원이 호남 일을 맡아주었다는 전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고위 공직자 출신 ㅇ씨의 경우는 영남 지역에서 C& 사업의 뒤를 봐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ㅇ씨측 인사는 “소설 같은 이야기이다”라고 부인했다. 앞에서 언급한 두 사람과 가깝게 지내고 있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고위직 출신의 또 다른 ㅇ씨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임회장은 민주당 중진인 ㅂ의원과도 가깝다는 증언이 나온다. 두 사람을 연결해준 인사는 앞에서 언급한 ㅇ 전 의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에 근무하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 있는 한 부장검사는 10월26일 기자에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ㅂ의원 이름이 활발히 오르내렸으나, 요즘에는 민주당의 또 다른 ㅂ의원의 이름이 새롭게 나오고 있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임회장의 정계 인맥으로는 대부분 호남 지역 출신 민주당 인사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임회장의 고향(전남 영광) 인맥도 정가에 다방면으로 뻗어 있다. 임회장은 세간에 광주 석산고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1학년을 마친 후 자퇴한 것으로 밝혀졌다. 임회장과 석산고 동문인 한 인사는 “임회장은 고교 시절 ‘고등학교를 3년 동안 다닐 필요가 뭐 있나. 친구 몇 명만 사귀면 되지’라면서 자퇴했고, 검정고시를 거쳐 한국해양대를 졸업했다”라고 전했다. 비록 석산고를 중퇴하기는 했지만, ‘모교’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석산고 동문 후배로 알려진 한 인사는 “임회장은 석산고를 상당히 잘 챙겼다. 행사 찬조금을 많이 내지는 않았지만 동문회에 나와서 ‘발렌타인 30년산’ 양주를 몇 병씩 내놓기도 했다. 그가 한강 유람선 사업도 하고 있을 때는 유람선을 동문회 장소로 빌려주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 부당대출 의혹을 받고 있는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 ⓒ시사저널자료

지난 정부에서 고위 관료 지낸 인사 ‘주목’

실제 석산고 출신들을 그룹 내 요직에 앉히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민주당 ㅂ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김 아무개 전 C&우방 본부장과 박 아무개 C&우방 이사가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김 전 본부장은 2004년 민주당 후보로 서울 강서 을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러자 ‘석산고 강서 모임’에서 그를 임회장에게 소개시켜주었고, 임회장은 동문 후배인 그를 2005년 3월 C&우방 개발사업부 호남본부장으로 영입했다. 김 전 본부장은 그곳에서 1년2개월 정도 근무했다고 한다. C&그룹 사건이 터지고 한때 김 전 본부장이 임회장의 정·관계 로비스트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자 ㅂ의원이 자신의 보좌관이었던 김 전 본부장에게 지난 10월21일 전화를 걸어 “(검찰에서) 왜 자꾸 자네 이름이 나오느냐. 어떻게 된 일인가”라고 물었다는 후문이다.  

박 아무개 이사는 임회장이 석산고 1학년 때부터 절친했던 친구 사이로 알려졌다. 박이사는 정부부처 국회연락관으로 근무하다 C&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박이사가 국회를 드나들며 쌓았던 정치권 인맥을 사업 확장 등에 활용하기 위해 임회장이 영입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임회장과 동향 출신인 김재록씨의 이름도 다시 활발하게 등장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2006년 임회장에게 은행 대출을 알선하고 10억여 원의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기소된 바 있으나, 당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김씨는 당시에도 ‘이헌재 사단’의 멤버로 알려질 정도로 금융계의 마당발로 통했고, 호남 정치권 인사들과도 교류가 상당히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 주변에서는 임회장이 한창 사업에 어려움을 겪던 2007~08년 무렵, 김씨가 한나라당 ㅇ의원과 함께 박해춘 당시 우리은행장을 만나 C&그룹에 대해 논의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ㅇ의원은 10월28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임회장을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씨 역시 내가 국회에서 증인으로 신청을 한 적도 있고, 아무튼 개인적으로 안다. 박해춘 전 행장도 같은 대학 동문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이다. 하지만 임회장과 관련해서 우리 셋이 만난 사실은 전혀 없다”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임회장을 가장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오래되었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김씨는 10월27일 전화 통화에서 “나는 지금 C&과 아무 상관이 없다. 나한테 전화하지 마라”라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임회장은 나주 임씨 종친회 인맥도 최대한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인물이 임성주 전 C&그룹 부회장이다. 그는 현재 검찰로부터 임회장을 대신한 사실상의 로비 창구로 지목되고 있다. C&의 정계 인맥에 호남 인사가 집중되어 있는 데에는 임 전 부회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전남 목포 출신으로 목포고와 전남대를 졸업했다. 호남 인맥은 그를 통하면 안 닿을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마당발 인맥’을 자랑한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17쪽 상자 기사 참조). 전직 검찰 고위층 인사 ㅅ씨·ㅇ씨 등 C&그룹의 법조계 인맥 또한 대부분 임 전 부회장이 구축한 인맥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C&그룹의 한 전직 고위 임원은 10월27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룹은 임회장과 임갑표 수석부회장, 임성주 부회장 등 3인 체제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라고 밝혔다. 임수석부회장은 임회장의 친삼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과 함께 또 한명의 그룹 부회장으로 2006년 영입된 ㄹ건설 출신의 임 아무개씨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그룹 최고위 경영진은 완전 임씨 일색이 되는 셈이다.

임회장이 종친회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은 지난 2008년 10월에 있은 나주 임씨 유적지 순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회사 사정이 상당히 악화된 당시에도 임회장은 임성주 부회장과 함께 이 행사에 직접 참석했는데, 당시 참가한 관계자의 말로는 여기에 “임채정 전 국회의장, 임채진 전 검찰총장, 임동원 전 국정원장 등 정·관계 나주 임씨 종친회 관계자들이 상당수 모습을 드러냈다”라고 한다.

또 한 명 주목해볼 만한 재계 인사가 있다. 지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ㅇ씨이다. C&그룹이 고속 성장한 시기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였다. 당시 임회장은 쌍용양회와 유공(현 SK)의 물류 사업권 일부를 따내면서 급성장했다는 전언이다.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C&그룹이 10년 동안 고속 성장한 배경에는 정치권 인사의 도움보다는 재계 인사들의 도움이 컸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른바 ‘잘나갔던 정치권 실세’가 노무현 정부에서도 계속 잘나간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10년 동안 꾸준히 그의 사업 성장을 받쳐준 인맥은 재계 인맥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ㅇ씨가 거명되고 있다. 두 사람 간의 연결 고리에 역시 임회장과 친한 것으로 알려진 김 아무개씨가 존재한다. 검찰에서는 임회장이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과 연결된 중간에 ㅇ씨와 김씨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C&그룹의 주거래 은행으로 그동안 2천2백여 억원을 부당 대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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