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신밍의 ‘또 다른 금고’ 실체는?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3.1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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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합동조사단이 밝혀내야 할 ‘상하이 스캔들’의 5대 의문점 / 기강 문란 등 철저히 조사해야

 

▲ 서울 도렴동의 외교통상부 청사. ⓒ시사저널 윤성호

‘상하이 스캔들’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한 정부 합동조사단 활동이 본격화했다. 3월20일까지 상하이에 머무르며 이번 사건을 통해 불거진 각종 의혹들을 조사할 방침이다. 조사 이후 외교가에는 이와 관련한 후폭풍이 거세게 불 전망이다. 정부 합동조사단이 밝혀야 할 의문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  기밀 정보 유출되었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전·현직 외교관들은 “상하이 총영사관에는 기밀이라고 부를 만한 핵심 정보가 없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에는 단순한 치정·이권 사건이라고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이명박 대통령의 상하이 엑스포 방문 일정과 관련한 정보가 유출되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전화번호도 유출되었다. 영사관 비자 발급 현황도, 상하이 영사관 비상 연락망 등도 다 넘어갔다. 그 자체를 국가 기밀 정보라고 볼 수 있는가에는 판단의 여지가 있으나 국가 기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 자료라고는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들의 전화번호는 도청에 이용당할 수 있다. 상하이 영사관 비상 연락망 등도 도청이나 미행에 이용될 수 있다. 중국 여성 덩신밍 씨가 단순하게 이권 브로커였다면 이런 자료가 왜 필요했을까?

덩 씨의 남편 진 아무개씨가 말한 ‘덩 씨의 또 다른 개인 금고’의 실체도 주목된다. 진씨가 열어보지 못한 덩 씨의 또 다른 개인 금고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 안에서 어떤 자료가 나오는가에 따라 국가 기밀 정보가 유출되었는지 여부를 가늠하기가 쉬울 것이다.

■ 영사들과 덩 씨의 관계는?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상하이 총영사관 영사들의 행태는 한 편의 소설이다. 한 여자를 두고 주먹 다툼을 벌이는가 하면 다정하게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최종 책임자인 총영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법무부 소속이었던 허 아무개 영사를 빼고는 덩 씨와 ‘특별한 관계’였던 이는 없다. 그러나 일부 영사가 ‘제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6억원을 드리고…’라는 내용의 각서를 쓴 것에서 보듯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이 드러났다. 합동조사단 조사에서 추가로 영사들이 덩 씨와 ‘특별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난다면 공직자들의 윤리 문제와 관련해 거센 책임론이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영사들의 행태가 단순해 보이지는 않는다. 최고 엘리트로 꼽히는 외교관들은 국민들의 기대를 한순간에 저버렸다.

■ 국정원, 어떤 역할 했나

이와 관련해 국가정보원이 제 역할을 했는지도 관심사이다. 교민 사회에는 이미 영사들의 불륜 행각과 관련해 소문이 파다했다는 점에서 국정원이 이를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정원 소속 부총영사가 이런 상황을 파악해 본국에 보고하고 경고·조치하는 제 역할을 했는가도 조사 과정에서 밝혀야 할 대목이다. 김정기 전 총영사는 부총영사가 자신을 음해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 전 총영사의 말이 맞다면 부총영사가 김 전 총영사와 관련해 좋지 않은 보고를 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보고를 받았다면 국정원이 이후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묵살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 상하이 총영사관, 파벌 다툼 있었나

외교를 잘 모르는 정치인 출신 총영사와 각 부처에서 파견된 영사들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내부 알력이 이번 사태를 불렀다”라고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정황을 보면 김정기 전 총영사는 몸은 상하이에 있었지만 눈은 국내를 향하고 있었던 것 같다. 향후 총선 등에 출마할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그에게 ‘상하이 총영사’는 거쳐가는 자리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영사들이 그에게 ‘충성’을 보이면서 영사관 기강은 서서히 무너지고 알력이 표면화되었다는 것이 영사관 사정에 밝은 이들의 전언이다.

총영사와 부총영사, 총영사와 영사 등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강 문란이 있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 비자 발급 등에 비리는 없었나

상하이 총영사관 사람들이 덩신밍 씨의 힘을 실감한 것은 한 영사가 부임하는 과정에서 ‘밀수’라고 볼 만한 사건이 생긴 것을 해결해주면서부터다. 상하이의 한 소식통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무언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될 만한 사안을 해결해준 사람이라면 이후 코가 꿰이기 마련이다. 덩 씨가 영사들을 바꿔가면서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이 ‘밀수’ 사건이 정말 문제가 없었던 사건인지, 그리고 비자 발급 과정에서는 비리가 없었던 것인지 정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비자 발급 업무를 맡고 있던 허 아무개 영사가 덩 씨와 남다른 관계였던 만큼 무언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 2008년 4월15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권철현 주일 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건에 대해 전·현직 외교관들은 한결같이 정권의 ‘보은 인사’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장춘 전 외무부 대사는 ‘잡놈’이라는 격한 표현을 쓰며 부적격 외교관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주미 대사, 주일 대사, 주중 대사가 모두 정치인 출신이다. 김정기 상하이 총영사도 외교와는 전혀 관계없는 정치인 출신이다. 현지어도 제대로 못하는 부적격자들이 공관장이나 외교부에 들어오면서 엉망이 되었다”라고 질타했다. 지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현지어를 구사할 줄 아는 외교관이 없는 재외 공관이 26개국(16.7%)에 달했다. 한 명 있는 공관도 20개국(12.8%)이었다. 또 외교부는 외국어 시험 점수에 미달해 해외 근무 자격이 없는 직원 65명을 해외에 근무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 들어 주요 해외 공관장에는 정치인 출신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갔다. 현재 주요 4개국 대사들 중에 정통 외교관 출신은 한 명도 없다. 한덕수 주미 대사와 이윤호 러시아 대사는 경제 관료 출신이며, 권철현 주일 대사는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지낸 정치인 출신이다. 또 류우익 주중 대사는 지리학자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해외 공관장 출신 중에도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던 인사가 다수 있다. 김재수 전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한나라당이 BBK 사건 공방에 대처하기 위해 만든 네거티브 대책단의 해외팀장을 맡았었다. 이하룡 시애틀 총영사도 ‘보은 인사’로 꼽힌다. 이총영사는 대통령 예비 후보 정책 특별보좌관과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내는 등 현 정부의 공신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2월에 일본 오사카 총영사로 임명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도 보은 인사로 분류된다. 김 전 청장은 경찰의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히고, 일본에 상당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용산 참사 때 강제로 진압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만큼 오사카 총영사 임명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자질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인사들이 대통령의 측근이나 선거 공신이라는 이유로 외교가에 대거 포진한 것이 오늘날 한국 외교가 추락한 한 원인이라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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