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몰이는 세계의 비웃음 살 바보 같은 짓”
  • 전남 보성=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5.01.29 18: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념 갈등으로 얼룩진 민족사 그려온 조정래 작가

<태백산맥> 출간은 한국 현대사의 심장을 관통한 문학적·사회적 사건이었다. 한국전쟁 전후의 비극적 시공간을 향해, 분단 조국의 치명적 금기를 향해 조정래 작가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당대의 자유·반공주의자는 물론 ‘좌익’ 공산·사회주의자들의 사상과 행적까지 소설을 통해 생동감 있게 되살아났다. 제약 없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민족사의 아픔을 그려낸 <태백산맥>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수백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자리 잡았다.

조정래 작가 역시 공안몰이의 희생자였다. <태백산맥>의 이적성 논란 때문이다. 사회주의 체제를 미화했다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여 년간 검찰 조사를 받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다. 지난 1월21일 <태백산맥>의 무대인 전남 보성 벌교읍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이날 조 작가는 <태백산맥> 전권을 필사한 애독자들에게 감사패를 전하는 행사에 참석한 후 인근의 ‘태백산맥기념비’를 돌아봤다. 그와 동행하며 공안 정국이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이념 갈등이 거세지고 있는 현 시국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태백산맥>은 해방 이후 한반도가 어떻게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는지를 입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최근까지 좀처럼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남북 관계를 보면 어떤 느낌인가.

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원이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심히 넘기면 안 된다. 계속 화합하고 협력하며 전진해야 하는데,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관계가 정체하거나 퇴보하는 것은 민족의 비극이다. 남북 갈등 국면이 지속되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충분히 화해하고 화합할 수 있다. 서로 한 발짝씩만 물러서면 될 일이다. 남북한 갈등이 커지는 것은 양측이 모두 책임져야 할 문제다.

최근에는 ‘종북’이라는 키워드를 둘러싸고 남남 갈등이 심각하다. 공안 정국이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창피스러운 일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점도 그렇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극한 대립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비문화적이며 반민족적인 행위다. 세계 시민들로부터 비웃음을 살 만한 바보 같은 일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태백산맥> 역시 발표 당시부터 20년 이상 이적 표현물 논란에 시달렸다.

대한민국은 반공국가로 탄생했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갖고 있다. 그런 국가에서 ‘공산주의자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고 하는 게 용납이 안 된 것이다. 나는 그들을 악마나 짐승처럼 그려선 안 된다고, 그건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적 입장이 아니라고 말해왔다. 그럼에도 계속 자기들만이 옳고 내가 편파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태백산맥>의 수많은 독자가 보기엔 그런 평가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의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좌익을 미화하고 우익을 폄하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까지 받았는데.

1994년 보수 성향 단체들이 작성한 고소장이 책 한 권 분량이다. 약 500개 항목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내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빨갱이’라고 고발한 것이다.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이를 반박하는 객관적 자료를 일일이 준비해 제출해야 했다. 이후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11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작가가 역사의 진실을 말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고달픈 것인지를 입증한 꼴이다.

극우 성향 인물들로부터 받은 전화·편지 등의 협박이 신변에 위협을 느낄 수준이었다고 들었다.

당시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우면 유서를 두 통이나 썼겠나. 그러나 분단 상황에서 이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을 썼기에 감수해야 할 통과의례라는 생각으로 이겨냈다.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분단을 문학적으로 극복하는 일을 하면서 어쩌면 당연한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를 고발한 사람들을 용서한다고 말하기는 아무래도 어렵지만, 그들의 입장만큼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것 또한 분단 상황이 만든 비극의 일부니까.

창작의 자유를 옥죄는 틀이 되지는 않았나.

(창작에) 엄청난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거기에 꺾이면 이미 작가가 아니다. 에밀 졸라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가 이를 극복하며 글을 써왔다. 그런 고난에 처한 작가라면 누구라도 견뎌 이겨내야 ‘문학의 승리’가 이뤄질 것이다.

최근 보수 성향의 고등학생이 황산 테러를 일으키는 등 극단적 폭력행위까지 나타나고 있다.

사회가 덜 성숙해서 발생한 일이다. 21세기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성을 지닌 사회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념 공세의 일환으로 상대를 ‘종북’으로 낙인찍는 고소·고발이 빈번한 현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 상황과 비교하면 훨씬 좋아졌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비판이 나오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우리 사회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 흥행을 계기로 한국의 산업화 시기에 대한 ‘정치적 해석’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편의 영화에 정치적 이념을 갖다 붙이는 건 너무 촌스럽고 악의적이다.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감독 스스로도 안타까워하지 않나. 아버지 세대가 겪은 고난과 삶의 아픔을 감사히 받아들이며 담담하게 그리고 싶었다고 하지 않나. 그 진심을 봐야 한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람들이 예술가의 진심을 왜곡하고 자기 편의로 이용하고 있다. 순수를 모독하지 말라. 예술은 예술일 뿐이다.

산업화 시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대하소설 <한강>을 통해 당시를 조명한 바 있는데.

한국의 산업화는 세계적인 기적이다. 불과 40여 년 사이에 1000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됐다. 거기에 30년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까지 이뤘지 않나.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밖에 없다. 이런 성과에 대한 자존감을 갖고 우리 현대사를 돌아볼 때 ‘기적’을 만든 게 과연 누구인가, 이게 <한강>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였다. 특정 정권이나 정치집단이 아니라 그 시절 함께 고통을 짊어진 국민이 바로 주인공이라는 얘길 한 것이다. 이름 없는 산업화의 주역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인공으로 내세워 쓴, 작가의 양심에 비춰볼 때 가장 객관적으로 쓰고자 했던 ‘대한민국 경제 발전사’다.

<허수아비춤> <정글만리> 등 최근작에서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 및 나아갈 길을 집중 조명했다. 정부·여당이 수시로 강조하고 있는 ‘경제 살리기’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정권이 경제를 끌고 갈 수 있었던 시기는 1인당 국민소득이 5000달러 수준일 때 이미 끝났다. 산업화 초기에는 국가가 성장을 이끌어갈 수 있었지만 경제가 고도화되면서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제의 양적 성장은 경제인들이 주도해야 할 몫이다. 정치는 정치 본연의 일을 해야 한다. 좋은 정치란 바로 민생을 잘 살피는 것이다. 지금 국민의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현재 정부·당의 정책 방향이 잘못 가고 있다는 뜻인가.

재벌을 지원해 경제를 살린다? 절대 (뜻대로) 안 된다. 부자 감세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부자 증세, 서민 감세로 민생부터 돌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양적 지표에 현혹돼선 안 된다. 원래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 선진국으로 발전해나갈수록 성장은 둔화될 수밖에 없다. 과거 산업화 시기의 높은 경제성장률이 지금도 가능하다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결코 속지 말아야 한다.

항상 우리 현대사 혹은 당대의 현실 문제에 밀착된 작품을 써왔다. 구상 중인 차기작의 소재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교육을 다룬다. 오는 2월부터 6월까지 5개월 동안 집중해 두 권 분량의 장편소설을 쓸 계획이다.

분단의 상흔으로 얼룩졌던 역사, 극한의 좌우 대립이 남긴 상처가 충분히 극복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분단된 상황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민족사 앞에서 죄인이다. 조국이 분단된 과정에는 남북 모두의 책임이 있었다. 다만 그 경중이 있을 뿐이다. 그 책임의식을 모두가 잊어버리지 않을 때 비로소 평화통일이 가능하다. 이를 잊어버리고, 분단과 갈등의 책임을 상대에게 미루기만 한다면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부디 이성을 회복하고,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래야 양보하고 대화할 수 있다. 서로 화합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태백산맥>은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과 함께 공안 당국의 지속적인 관심도 함께 샀다. 여순사건 및 4·3사건, 빨치산들의 활동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미화했다는 이적성 논란에 시달렸다. 8·9·10권까지 출간이 마무리된 1987년 당시와 대학 운동권 사이에서 필독서로 꼽히던 1990년 당시 검찰 내부에서 사법 처리 가능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소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1994년 결국 일이 터졌다. 북한 고위 관계자로부터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오는 등 사회 전반에 안보 불안이 고조되던 시기다. 보수 성향의 8개 단체가 <태백산맥>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자, 검찰이 조정래 작가와 책을 출판한 출판사 대표 등을 기소한 것이다. 조 작가가 소환된 것은 물론 <태백산맥>을 쓰는 과정에서 만난 취재원까지 조사 대상이 됐다. 문단 및 사회 각계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이문열 작가는 “<태백산맥>은 한국전쟁에 대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금기를 깨뜨렸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라며 발표한 지 8년이나 지난 작품에 갑자기 검찰 조사가 진행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정래 작가는 매일 감시를 당하는 듯한 두려움과 불안감 속에서 집필 활동을 이어가야 했다. <태백산맥>의 이적성 논란은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5년이 돼서야 종지부가 찍혔다. 검찰이 “대한민국의 존립 및 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적극적·공격적 이적 표현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