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1급이 총리·실장 ‘위’인 나라
  • 김현일 대기자 (hikim@sisapress.com)
  • 승인 2016.09.02 16:27
  • 호수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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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1401호는 ‘박근혜 정권 핵심실세’ 특집을 실었습니다. 주요 언론사 정치부 기자 85명과 평론가 15명 등 관계 전문가 100명의 견해를 정리한 역작입니다. 제대로 된 ‘2016년 여권 권력지도’를 그리기 위해 신문·방송·주간지·인터넷 매체 기자를 무작위로 선별, 일일이 휴대전화로 조사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 개인적으론 떠름한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몇몇 독자들께서도 지적하시듯 ‘조사가 정확한지?’라는 의문 때문입니다. 전 경제부총리 최경환 의원이 현 정권의 ‘넘버 원’으로 조사됐다는 내용과 관련, 한 여권 원로는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고 물어오셨습니다. ‘넘버 원이 아니라는 얘긴지’ ‘당장은 그렇더라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건지’ 헷갈리는데 분명한 점은 ‘힐난조’였다는 것입니다. 여권의 속사정을 남만큼 꿰고 있을 그 원로는 “몸을 사려야 하는 판에…”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행여 정확도가 미덥지 않으시면 분위기 파악을 위한 것쯤으로 치부하셨으면 합니다.

 


‘핵심 실세 3인을 꼽는다면?’이라는 조사의 핵심질문 자체나 ‘득표 순’으로 서열을 매긴 등도 마뜩찮습니다만 어쨌든 나온 답변은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48표를 얻어 1위가 된 최 의원에 이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2위(36표)에 랭크됐습니다. 지난해 7월의 같은 내용 조사 때 15위에서 급부상했는데 맞는지 틀리는지 나중에 따지도록 하죠. 그다음이 얘기가 됩니다. 이재만 총무·정호성 부속·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등 이른바 ‘3인방’이 뒤를 이었습니다. 검찰 등 공안기관을 꽉 잡고 있다는 우병우 민정수석은 정 비서관과 공동 4위입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정 비서관이 ‘압도적’ 1위, 이 비서관은 3위, 안 비서관은 4위였습니다. 본인들은 ‘밀렸다고’ 섭섭할지 모르겠으나 이 대표와 표차도 별로 안 되고, 행간을 읽으면 대통령의 신임이 여일(如一)하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겁니다.

 

조사 결과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3인방 다음이 김재원 정무수석, 서청원 의원, 황교안 총리, 안종범 정책기획수석,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 순이라는 사실에 이르면 할 말을 잊게 됩니다. 총리나 핵심 수석의 랭킹 대목은 일단 접어두고…비서실장이 11위(6표)로 저만치 밀려나 있는 것은 참 ‘거시기’합니다. 조사 답변자들이 3인방을 최고 실세로 꼽은 이유는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가장 오랜 기간 함께해서’입니다. ‘권력의 크기는 (대통령과의)거리에 반비례한다’는 권력법칙도 있으니까 과히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청와대 내에서조차 ‘거리’가 잣대가 된다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서관이 수석 위, 수석이 실장 위’라는 세간의 시각은 실제 여부를 떠나 그것만으로도 비정상입니다. 국기 문란이 우려되는  국정 왜곡입니다. 따로 역사 교훈을 운위할 것 없이  비극적 현상입니다. 박 대통령과 3인방 본인들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매우 위태로운 것입니다. 

 

8월26일 아침,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관측 사상 최고·최악의 무더위가 언제냐 싶게 사라졌습니다. 권력도 그렇지요. ‘계절 순환’처럼 예외가 없습니다. 머지않아 청와대엔 찬바람이 몰아칠 겁니다. 그제야 얄팍한 세태를 탄식할 게 아니라 위기가 닥치기 전 주위를 살펴야 합니다. 대비한다면서 ‘정반대’ 처방을 하면 정말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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