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다시 성희롱 문제,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어”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7 09:47
  • 호수 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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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적질’의 대가다. 아무리 어려운 자리에 있어도 수틀리는 말이 등장하면 꼭 짚고 본다. 원칙은 있다.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말, 간섭하는 말, 이른바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말. 이 ‘여성혐오’라는 말 자체가 오해의 여지가 큰 번역이라는 논란은 일단 뒤로 물리기로 한다.

 

지적을 당하는 사람들의 공통점도 있다. 자기가 무슨 잘못을, 또는 실수를 저질렀기에 지적을 당하는가를 모른다는 점이다. 때문에 문제 있음을 지적하는 나를 오히려 무례하거나 까칠하거나 성격 좀 이상하거나 과도하게 예민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자 애를 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무슨 대단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소한 말의 문제다. 예전에 페이스북에서 대화를 조금 나눈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대뜸 나에게 “누님”이라고 부르며 “형님이 잘해 주셨나 봐요, 기분이 좋으신 걸 보니”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 말이 무례하고 주제넘으며 성희롱이라는 사실을 나는 당연히 지적했지만 그는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호의를 지니고 한 말이었으므로 그것을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무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두 단어로 끝낼 이야기를 그는 악착같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으며 변명을 했다.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내가 ‘그런 사람’ 취급을 했다는 거다. 도대체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당신의 이러저러한 “말이 잘못”됐다는 지적에 왜 “그런 사람 아니다”고 변명을 할까.

 

‘호의’를 가지고 한 말이라도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사진은 tvN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 tvN 제공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떨까. 자기가 호의를 지니고 한 말은 어떤 무례한 말이라도 상대가 이해해야 할까.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으므로 내 의도를 네가 알아줘야 하는 걸까.

 

여성이 당하는 성적 폭력을 크게 육체에 가하는 폭력과 정신에 가하는 폭력으로 나눈다면, 전자에 대해선 상당히 경각심도 생기고 처벌해야 한다는 합의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언어폭력이 상상외로 심하다는 사실은 당하는 당사자를 제외하곤 심지어 같은 여성들조차도 잘 모를 때가 많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넓게 보면 우리 사회가 타자를 존중하는 언어능력이 점점 퇴화되기 때문이겠다. 이럴 때 사회문화적으로 약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일상적인 언어폭력을 당하게 된다. 좁게 보면, 바로 그 약자의 자리, 사회적 위계의 아랫단에 놓이는 사람들이 대체로 여성이기 때문이겠고. 더 좁게 보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습관화된 문화 탓이기도 하다.

 

바로 그래서, 성희롱은 반드시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권력의 위계가 높은 여성이 남성에게 하기도 하고, 남성 강자들에게 편승하고 싶은 여성의 무의식이, 다른 여성에 대한 성희롱을 방관하거나 가세하게 만들기도 한다. 앞에서 예로 든 사건이 페북에서 진행될 때, “그 동생이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역성들고 나선 사람들 중엔 여성들도 제법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조금 과장되게 지적을 하는 편이다. 당사자는 기분이 상할지 몰라도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이보다 훌륭한 교재가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혐오 발언이라고 판단할 때는 피곤을 무릅쓰고 일부러 그렇게 한다. “몰랐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폭력인가를 각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이 죽고 인간이 그 지위를 대신한 이래, 무지는 그 자체로 죄다. 지적당하는 사람에게도 장기적으로는 유익하다. 그러므로 여러분, 과감하게 지적을 하자. 그건 성희롱이에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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