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주무기’는 천재성이 아니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9.2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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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함과 겸손, 묵직한 저력 발휘하기 시작한 원동력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지 꼭 3년째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올해 시사저널이 실시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 부문 10위에 올랐다. 멘토인 지휘자 정명훈(6위)과 4위 차이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뒤 2016년 처음 순위권(7위)에 진입한 조성진은 지난해 15위로 내려갔다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며 다시 10위 안으로 들어왔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사진 제공 : 크레디아)

 

 

 

진정성 잃지 않는 '완성형' 피아니스트…스승들 입 모아 칭찬


천재 피아니스트, 클래식음악계의 아이돌 등 조성진을 수식하는 말이 많다. 곡을 해석하는 특출난 상상력에 평단은 박수를 보낸다. 클래식음악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도 조성진은 안다. 유튜브를 통해 조성진의 흡인력 있는 연주를 접하고 피아노를 다시 배워보는 이들이 적잖다. 그러나 조성진이 '반짝 스타'에 머물지 않고 묵직한 저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원동력은 천재성도 스타성도 아니다. 음악을 향한 진지함과 겸손함이 조성진의 주무기다. 강단 있는 성품은 덤이다. '소년 출세는 인생 3대 불행 중 하나'란 속설은 이미 조성진을 비켜갔다.
 
무엇보다 조성진은 스승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스승들 역시 세계적인 음악가다. 조성진은 10대 때부터 이미 '완성형' 피아니스트였음에도 끊임없이 배우고 조언을 구하며 스승들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국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지휘자 정명훈 남매가 조성진을 지근거리에서 이끌어왔다. 특히 피아니스트 출신인 정명훈은 부모의 심정으로 조성진을 바라본다. 그는 지난 9월3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도이치 그라모폰(DG) 120주년 기념 갈라 콘서트' 기자회견에 조성진과 같이 참석해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정명훈은 "조성진이 13살 때 쇼팽 스케르초를 연주하는 걸 처음 들었다. 그렇게 재주 있는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그 나이에 벌써 완벽한 피아니스트가 돼 있었다고 판단했다"며 "이후로도 점점 더 발전하고 잘하는 모습에 너무 기쁘다. 부모가 자기 아이들이 잘 커주면 기쁜 것처럼 음악가들도 후배들이 잘할 때 제일 만족한다"고 말했다. 정명훈의 극찬에 조성진은 쑥쓰러운 듯 물을 들이켰다. 현재 정명훈과 조성진은 세계 최대 클래식 음반사 DG에 함께 속해 있다. 정명훈은 1990년, 조성진은 2016년 DG와 계약했다.

 

지휘자 정명훈(왼쪽)과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9월3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도이치 그라모폰(DG) 120주년 기념 갈라 콘서트' 기자회견에 참석했다.(사진 제공 : 크레디아)

 

 

정명훈의 소개로 조성진을 알게 된 정경화는 "조성진에게 조언해줄 때 한 마디를 하면 열 마디를 알아듣는다"고 칭찬했다. 정명훈과 정경화는 조성진을 본인들 무대에 지속적으로 초대하는 한편 인생 행로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조언해줬다. 조성진은 공개석상에서 "정경화, 정명훈 선생님은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가 1세대라고 할 수 있고, 이 세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 세대 아티스트도 없었을 것"이라며 스승들을 높였다.
 
조성진의 또 다른 스승이자 프랑스가 자랑하는 피아니스트 미셸 베로프도 조성진의 진지함을 가장 큰 강점으로 꼽았다. 조성진은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당시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미셸 베로프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다. 미셸 베로프는 최근 《Queen》지 '양영은이 만난 사람' 인터뷰에서 "피아니스트들은 위대한 작곡가들을 대신해 연주하는 매개체로서 겸손해야 한다"면서 "조성진은 자질이 워낙 출중한 데다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 열심, 의지 등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고 회상했다.
 
미셸 베로프는 이어 "피아노 연주에 진리는 없다만 조성진에게 너무 어린 나이에 크게 성공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럴 경우 자신의 연주가 독립적이기보다 대중이 요구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고, 이는 엄연히 잘못된 길"이라며 "피아니스트는 스스로 음악을 추구하면서 발전해야 한다. 다행히도 조성진은 내 가르침대로 잘 가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내가 조성진의 스승일 수 있어서 행복했다"며 "앞으로도 조성진이 어떤 일로든 나를 찾을 때 항상 그의 곁에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악 대하는 태도 변함없어" 12월 모차르트 연주

 

스승을 즐겁게 하고, 어떻게든 더 퍼주고 싶게 만드는 힘. 한국 나이로 25세인 그가 지닌 가장 큰 저력이다. 조성진은 '남의 평가에 영향 받거나 좌우되지 말며, 호평을 받든 혹평을 받든 흔들리지 말고 계속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라'는 미셸 베로프의 조언을 착실히 따르고 있다. 사실 그동안 대부분 호평만 받아온 조성진이다. 하지만 혹시 앞으로 닥쳐올지 모를 파고(波高)에도 단단히 대비된 모습이다.
 
조성진은 오는 12월6일 DG 120주년 기념 갈라 콘서트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를 연주한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이다. 2011년 서울시향과 연주했던 곡이다. 기자가 "2011년 이후 커리어, 인생 등 측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연주에 변화가 있을까"라고 묻자 조성진은 "물론 달라졌겠지만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또 "나보다는 관객들이 더 잘 알 것"이라며 연주에 임하는 자세를 담담하게 내비쳤다.
 
지금까지 조성진이 DG를 통해 출시한 음반은 쇼팽 콩쿠르 실황을 포함해 총 3장이다. 11월 말 정규 앨범으로는 세 번째인 모차르트 음반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콘서트가 아닌 스튜디오 앨범 녹음에 대해 조성진은 "내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빼고는 크게 불편한 점이 없었다"고 전했다. 격변하는 디지털 음악 플랫폼에 참여할 여지에 관해서는 "음반사에서 제안할 경우, 내가 하고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이벤트 등을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종류의 플랫폼은 잘 모르겠다"며 "나는 그냥 피아노를 칠 뿐"이라고 밝혔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자'는 인생 모토가 드러나는 설명이다.     
 
실력·인성·인정·인기 모두 가진 피아니스트, 스승들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 독일 베를린에 살며 1년 중 9개월 정도는 전 세계로 연주 여행을 다닌다는 25세 청년……. 누군가에게는 위태할 수 있을 성공이지만, '조성진'이기에 다들 맘을 놓는다. 정경화는 "콩쿠르 우승자들은 우승 이후 3년 동안이 음악가로서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데, 조성진이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터득하고 결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놀랍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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