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비꼰 ‘한국판 CES’의 진짜 모습은 달랐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1.3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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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졸속 추진’ 비판 쏟아진 ‘한국 전자IT산업 융합전시회’ 가보니
현장에선 “좋은 기회” 등 호평 나오기도

1월 초 미국 CES에서 공개됐던 우리 IT기술을 볼 수 있는 기회가 1월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렸다. 행사 이름은 ‘한국 전자IT산업 융합전시회.’ 하지만 ‘한국판 CES’란 이름이 더 익숙한 게 사실이다. 취지는 좋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데도 국내 언론들은 마치 공동전선을 구축한 마냥 일제히 비판의 총알을 쏘아댔다. 공통된 지적은 “정부가 급조한 쇼”라는 것. 정말 이번 전시회는 빛도 내지 못한 개살구였을까. 

1월 30일 오전 서울 DDP에서 열린 'ICT(정보통신기술) 혁신과 제조업의 미래'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관람을 하고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1월 30일 오전 서울 DDP에서 열린 'ICT(정보통신기술) 혁신과 제조업의 미래'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관람을 하고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야. 저거 대박 아니냐?” 회사원 정용석(46)씨가 삼성전자의 TV ‘더 월(The Wall)’ 앞에서 외쳤다. 전시회 둘째 날인 1월30일 행사장을 찾은 정씨는 “늘 보던 쇼가 아니라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씨는 ‘홍보 부족’이라고 꼬집던 기사들을 보고 이번 전시회의 개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정씨는 “기사 몇 줄로만 봤던 CES 출품작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찬준(28)씨는 “미국 CES에 가보고 싶었지만 못 가서 아쉬웠다”며 “궁금하던 차에 이렇게 규모는 작지만 국내 기술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좋다”고 했다.   

 

“규모 작지만 국내 기술력 볼 수 있어 좋다”

실제 전시회의 규모는 크다고 하긴 힘들었다. CES 때 부스 전체를 ‘스마트시티’로 꾸몄던 삼성전자는 1018평의 공간을 혼자 썼다. 하지만 이번 부스 면적은 108평으로 약 10분의 1에 불과했다. 전시회가 열린 DDP 알림 1관 전체가 905평에 그쳤다. 이 안에 CES에 참여했던 대기업 4곳과 중소기업․스타트업 등 총 35곳이 부스를 마련했다. CES 때만큼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기 힘들 수밖에 없는 면적이다. 

그러다 보니 LG전자의 OLED 폭포처럼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작품은 이번 전시회에 설치되지 않았다. SK텔레콤이 SM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선보였던 ‘디제잉 로봇’과 ‘소셜 VR’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 대기업 관계자들은 “핵심 제품들은 모두 가져 왔다”는 데 입을 모았다. 업무차 전시회를 찾았다는 삼성SDS 직원 이아무개씨(31)는 “미국에 가지 못했던 국내 소비자들을 위해 경험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라고 했다. 

삼성전자가 마련한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출품작을 둘러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삼성전자가 마련한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출품작을 둘러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네이버랩스의 지능형 로봇팔 '앰비덱스' ⓒ 시사저널 고성준
네이버랩스의 지능형 로봇팔 '앰비덱스' ⓒ 시사저널 고성준

좁은 공간에도 핵심 제품 모두 선보인 대기업들

그럼에도 이번 전시회는 개막 전부터 도마에 올랐다. 조선일보는 1월25일 청와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판 CES가 대통령 지시로 급히 준비됐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기업이 먼저 건의했다”며 곧바로 반박했다. 하지만 ‘졸속 추진’이란 비판의 봇물을 막진 못했다. 전시회에 참가한 대기업 중 한곳의 관계자는 “예정된 행사가 아니다 보니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반면 중소기업은 달랐다.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언론에서 부정적인 면만 부각됐다고 꼬집었다. 의료기기 업체 인트인의 이유진 실장은 “언론 기사를 보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부정적인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을 계속 던져서 불쾌했다. ‘힘들었죠’라고 물어보면 ‘힘들었다’라고 답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중견 로봇기업 '유진로봇'의 부스. 관계자는 "준비 기간이 짧았지만 정부 강요로 참여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중견 로봇기업 '유진로봇'의 부스. 관계자는 "준비 기간이 짧았지만 정부 강요로 참여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문제는 ‘언론’…“부정적 답변 계속 유도해”

보안솔루션 업체 비티비엘의 이상록 부사장은 “CES 참가가 쉽지 않은 국내 중소기업으로선 이런 전시회가 좋은 기회”라며 “서둘러 준비했지만 부담은 없었다”고 했다. 정부는 전시회참가 기업에 부스와 장비를 무료로 지원했다. CES는 부스 한 곳당 600여만원을 받고 빌려줬다고 한다. 

오히려 CES 때보다 더 유익한 자리였다는 중소기업도 있었다. 블록체인 업체 위즈블은 이번 전시회에서 부스 3개를 연결, 참여 중소기업 중 가장 넓은 공간을 썼다. 기자가 CES에서 본 위즈블 부스는 1개가 전부였다. 유오수 위즈블 대표는 “부스가 넓어져 CES 때 공개한 위즈블페이(가상화폐 결제플랫폼)뿐만 아니라 전자처방전 시스템도 선보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위즈블은 이번 전시회에 핀테크 기업으론 유일하게 참가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사 키네틱랩의 부스도 더 커졌다. 이곳은 전시회 개막날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방문한 부스이기도 하다. 키네틱랩은 사람의 동작을 인지하는 댄스 게임을 CES에 이어 이번에도 선보였다. 임예준 기술이사는 “CES는 성인만 입장이 가능했고 관람객들이 케이팝에 관심이 적어 피드백을 받기 어려웠다”며 “하지만 이번 전시회는 누구나 참관할 수 있어 소비자의 반응을 깊게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키네틱랩 부스에서 기술 설명을 하고 있는 임예준 기술이사 ⓒ 시사저널 공성윤
소프트웨어 업체 키네틱랩 부스에서 기술 설명을 하고 있는 임예준 기술이사
ⓒ 시사저널 공성윤
보안솔루션 업체 비티비엘의 이상록 부사장 ⓒ 시사저널 공성윤
보안솔루션 업체 비티비엘의 이상록 부사장 ⓒ 시사저널 공성윤

‘흥행 실패’ 예상했는데 “개막날보다 많이 찾아와”

“홍보 부족으로 흥행에 실패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섣부르다는 의견이 있다. SK텔레콤이 ‘댄싱 VR 캐릭터’ 공연을 펼칠 땐 수십 명의 관람객이 한 번에 몰려 뒤에서 지켜봐야 했다. 네이버랩스 관계자는 “개막날인 어제보다 많은 일반인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전시회를 주관한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관계자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언론 보도가 과장됐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아쉬움이 없진 않았다. 특히 CES 때 관심을 모았던 LG 롤러블 TV가 개막 날 하루만 공개돼 관람객에게 실망을 안겼다. 좁은 규모가 원인은 아니었다. 수량이 한정돼 있어 다음 날 네덜란드 전시회로 날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일정 조율이 부실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관람객으로 참여한 60대 구글 엔지니어 A씨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CES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규모가 예상보다 너무 작다”면서 “관계자들의 기술 설명도 허술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졸속으로 준비했다는 티가 난다”고 했다. 반대로 따져보면 규모와 준비기간, 전문성 등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으로 읽힌다. 

"CES에 이어 이번에도 참가한 블록체인 업체 위즈블이 가상화폐 결제플랫폼 '위즈블페이'를 선보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CES에 이어 이번에도 참가한 블록체인 업체 위즈블이 가상화폐 결제플랫폼 '위즈블페이'를 선보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그래도 남는 아쉬움… 진짜 ‘한국판 CES’ 되려면

또 무엇이 고쳐져야 할까. 관람객 장석호(67)씨는 “우리나라 하드웨어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라며 “이젠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기술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삼성전자 ‘더 월’을 가리키며 “저 선명한 화면 뒤에 어떤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려줘야 진정한 한국판 CES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유오수 위즈블 대표는 “이번 행사도 CES처럼 참여 기업을 산업 부문별로 나눠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기왕이면 아시아 IT기업들을 유치해 글로벌 연례행사로 키워야 한다”며 “그때야 비로소 진짜 ‘K-CES’라고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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