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그룹 총수들이 이번 음력 설 연휴를 경영 현안과 사업 전략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을 전망이다.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은 공식 외부일정 없이 자택에 머물며 경영구상에 집중할 예정이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와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리스크, 법 개정과 최저임금 인상 등 대내적 당면 현안이 산적해 있어 이에 대한 해법 찾기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설 연휴 기간 삼성의 유일한 해외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인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반도체단지를 찾아 현장을 점검하고 반도체 실적 반등에 대한 의지를 임직원들에게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 부회장은 메모리 반도체 단기 시황이 악화됨에 따라 비(非) 메모리 분야인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올해 첫 해외 출장을 시작으로 글로벌 행보를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도 자택에서 명절을 보내며 경영 구상에 매진할 예정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추석연휴 기간엔 미국에서 고율관세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한 바 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 등 당면 현안 뿐 아니라 지난해 무산된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정 부회장은 수소경제 분야에 대한 구상을 더욱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약 8조원을 투자해 수소 전기차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다양한 산업에 융합해 퍼스트 무버로서 수소사회를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 또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4년 7개월 만에 극적 타결됨에 따라 추후 추진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까지 5대 신사업에 80조원을 투자할 계획을 밝힌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설 연휴 동안 별다른 일정 없이 자택에서 경영구상에 몰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5대 신사업은 반도체 및 소재, 에너지 신산업, 헬스 케어, 차세대 정보통신기술(ICT), 미래 모빌리티 등이다.
지난 해 취임해 올해 경영 2년차를 맞은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설 연휴에 휴식을 취하면서, 취임 이후 줄곧 매진해온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 발굴과 성과 도출에 대한 고민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그룹이 앞으로 나갈 방향을 '고객 중심 경영'으로 정했다. 미래사업 육성을 강조해 온 구 회장은 올해 인공지능(AI), 로봇 등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선대 전통 따라 양력 설 쇠는 재계 총수들
4대 그룹 총수들은 창업주나 선대 회장 때부터 양력 설을 지내왔기 때문에, 설날 따로 차례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지 않는다. 대부분 음력 설을 쇠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삼성, 현대, LG, SK 등 그룹의 총수들 중에는 양력 설(신정)을 쇠는 집안이 많다.
현대가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 시절부터 양력 설을 쇠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SK도 고 최종현 회장 시절부터 양력 설에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그룹과 LG그룹도 창업주 시절부터 신정을 쇠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삼성, CJ, 신세계 등 이른바 '범 삼성 그룹'과 현대·기아차, 현대, 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그룹', LG, GS, LS 등 '범 LG 그룹' 역시 설 대신 양력 1월 1일에 일가가 모여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재계의 전통은 해방 이후 정부 정책에 따라 양력 설을 지내던 각 그룹의 선대 전통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일제강점기부터 장려된 양력 설은 해방 이후 수립된 제 1공화국에서도 장려됐다. 1월1일부터 1월3일을 설 공휴일로 지정하고 양력 설을 지내게끔 한 것이다.
정부는 6공화국 때인 1989년 2월, 양력 설 연휴 기간을 2일로 줄이고 음력 설 연휴를 3일로 확대했다. 1998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의 경제난 타개와 이중과세 등을 막기 위해 정부가 2일이던 양력설 연휴를 하루로 단축하면서, 음력 설이 설날로 부활했다.
한편 베트남이나 중국 등을 제외하고는 음력 설 연휴를 찾기 힘든 해외 국가들의 상황을 보면, 글로벌 사업 등을 해나가는 4대 그룹이 양력 설을 쇠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