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조작으로 개미들 간 빼먹은 ‘회장님’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4 14:00
  • 호수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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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형량과 추징에 비해 높은 이득
‘남는 장사’ 주가 조작에만 골몰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이 금융감독원 조사 대상에 올랐다. 이유는 다름 아닌 주가 조작. 시작은 지난해 6월 서희건설이 한국지뢰제거연구소와 지뢰 제거 사업 추진을 위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다. 이후 서희건설은 남북접경지역의 지뢰를 제거하는 사업에 진출했다고 홍보했다. 서희건설 주가 역시 남북경협 테마주로 주목을 받으며 급등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지난해 7월과 8월 보유 중이던 서희건설 주식을 대거 매각해 차익을 실현했다.

이 회장의 주가 조작 의혹이 불거진 건 지난해 10월 서희건설의 지뢰 제거 사업 무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한국지뢰제거연구소는 지난해 6월말 서희건설에 MOU 해지 공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주식시장에서는 이 회장이 주식 매각을 염두에 두고 지뢰 제거 사업 진출 이슈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주가를 띄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희건설은 이 회장이 주식담보대출 상환을 위해 지분을 매각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금감원은 조사에 착수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시사저널 임준선

증권사 직원·시세조종꾼과 결탁도

기업 회장들이 주가 조작에 연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재계의 고질병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용호 게이트’다. 이용호 G&G그룹 회장은 2001년 계열사 전환사채 680억원을 횡령하고, 보물선 사업 등 미공개 정보로 주가를 조작해 250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 의혹이 불거지면서 권력형 비리로 확대됐다. 청와대·검찰·국정원·금감원·국회 등 권력기관들이 사건에 오르내렸다. 이 때문에 ‘이용호 게이트’는 아직까지도 주가 조작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기업 회장들의 주가 조작 사례는 최근까지 이어진다. 대체적으로 허위 정보·홍보를 이용한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12월 주가 조작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이 그런 경우다. 검찰에 따르면, 김 회장은 2015년 중국 금융권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는 허위 정보를 주식시장에 유포해 주가를 끌어올렸다. 제3자에게 무담보로 수십억원을 대여한 뒤 바른전자 주식을 매입하게 해 주가를 올리기도 했다. 검찰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김 회장이 챙긴 부당이득이 18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가 조작에 현직 증권사 직원이나 거래처를 동원한 사례도 있다. 오세영 코라오홀딩스 회장은 KTB투자증권 직원 박아무개씨와 공모해 회사 주가를 조종한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오 회장은 2013년 코라오홀딩스가 1500억원대 글로벌 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주가 하락이 예상되자 박씨에게 시세조종을 사주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박씨가 이전에도 코라오홀딩스에 대한 주가 조작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2011년 10월부터 10개월에 걸쳐 고가매수 등 시세조종성 주문을 내는 수법으로 주가를 조작한 것이다.

2017년 구속된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은 주가 조작에 거래처를 끌어들였다. 검찰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2015년 11월 7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공시한 뒤 주가가 급락하자 주가 조작을 계획했다. 계열사 대표 회의에서 거래처를 동원해 주식을 매수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에 계열사인 부산은행은 거래관계인 지역 건설업체 14곳에 거액을 대출해 준 뒤 주식을 매입하도록 해 주가를 상승시켰다.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사진)의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나섰다. ⓒ 연합뉴스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사진)의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나섰다. ⓒ 연합뉴스

주가 조작 피해자는 투자자들과 기업들

아예 주가 조작 세력과 결탁한 경우도 있다. 2017년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된 유홍무 전 CCS그룹 회장이 그 장본인이다. 유 전 회장은 2011년 12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주가 조작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1300여 차례에 걸쳐 CCS 주가를 조작해 21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유 전 회장은 재산관리인 박아무개씨로부터 주가 조작꾼 양아무개씨를 소개받았고, 양씨는 유 전 회장으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주가 조작의 피해는 투자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상기한 바른전자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김 회장의 비리 사실이 공개되면서 주가가 30% 이상 폭락했고, 16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철회됐다. 이로 인해 공시번복 사유가 발생하면서 불성실 공시법인 꼬리표도 붙었다. 현재는 상장 폐지 기로에 놓인 상태다. 현재 한국거래소 상장적격성 실질심사가 진행 중이다. 심의 결과 상장이 폐지될 경우 투자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계속된 주가 조작의 또 다른 피해자는 선량한 기업들이다. 누적된 시장 불신이 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본시장에서 주가 조작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일단 처벌이 ‘솜방망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자본시장법 위반 판결을 분석한 결과, 집행유예 비율과 상고 기각률이 높게 나왔다고 밝혔다. 자본사장연구원은 주가조작 사건이 점점 복잡·정교해지고 있어 기존 형사 제재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당이득에 대한 추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작은 위험만 감수하면 큰 이득을 누릴 수 있는 ‘로 리스크, 하이 리턴(Low Risk, High Return)’ 구조인 셈이다.

로케트전기 주가 조작 사건이 그 전형적인 케이스다. 고(故) 김종성 로케트전기 회장의 차남 김도원 로케트전기 상무는 허위 공시를 통한 주가 조작으로 57억원의 부당이득을 누렸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은 김 상무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지만 추징금은 없었다. 부당이득금이 ‘0원’으로 결정된 데 따른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현행 자본시장법상 부당이득금 규정이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이라고 돼 있을 뿐 구체적인 산식이 없어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김 상무는 징역 2년만 살면 부당이득 전액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됐다. 징역 1년당 30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리는 셈이다.


부당이득금 산정 체계 개정 ‘글쎄’ 

정부도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정부는 최근 주가 조작 부당이득금 산정 체계를 전면 개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와 법무부, 검찰 등을 중심으로 ‘부당이득금 산정 태스크포스(TF)’도 조직했다. 주가 조작 사범에 대한 처벌과 추징금 산정을 명확히 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부당이득 산정 공식이 확정되면 주가 조작 사범에 대한 처벌과 추징금이 명확해지고, 피해 투자자들의 손해배상소송 배상금액 산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 당국도 주가 조작 사범의 주식거래를 5년 동안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주가 조작 수법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며 “주식거래가 제한돼도 차명으로 거래하면 그만이고 부당이득금 산정 체계 개정이 이뤄질 경우 범죄 수익금을 미리 빼돌려 추징금을 피하는 방법이 동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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