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구속기소…‘여권 vs 사법부’ 긴장감 팽팽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1 17: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헌정 사상 첫’ ‘치욕’ 등 단어로 점철된 법원, 위상 지키기 안간힘
“김경수 구속시킨 사법농단 세력 못 믿는다” 與, 연일 ‘강공 모드’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결국 법정에 서게 됐다.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한 양 전 대법원장을 2월11일 재판에 넘겼다. 전·현직을 통틀어 사법부 수장이 직무와 관련한 범죄 혐의로 기소되기는 대한민국 최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월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 시사저널 고성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월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 시사저널 고성준

 

사법수장 구속기소, 전·현직 통틀어 처음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오후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하고, 구속영장이 기각된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도 불구속 상태로 기소했다. 앞서 두 차례 기소된 임종헌(구속)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겐 특정 법관을 사찰하고 인사불이익을 주기 위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가담한 혐의가 추가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2017년 9월까지 6년간 대법원장을 지냈다. 재임 당시 임 전 차장과 박·고 전 대법관 등에게 '재판거래' 등 반(反)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는다.

지난해 6월 사법농단 수사가 시작된 이래 법원에는 '헌정 사상 처음' '치욕'이란 말이 줄곧 따라붙었다. 참담한 분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양 전 대법원장 후임자인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수사와 판사 탄핵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시점에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법농단 수사 협조와 사법부 위상 지키기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지난해 5월 그 존재를 부인했던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이어진 검찰 수사에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 등으로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 전까지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판사들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임 전 차장 건을 제외하면 법원에서 잇달아 기각됐다. 

사법부 내 자성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지만, 스스로 내놓은 개혁안은 정치권과 시민사회 모두에서 미흡하단 지적을 받았다.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회의와 법원사무처를 신설하는 내용이 골자다. 김명수 사법부가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이 개혁안은 현재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경수 구속 후 벼르는 與…'사법신뢰 최후 보루' 내몰린 法   

역시 사법부 71년 역사상 처음이란 부연이 달린 1월11일 검찰 조사에 앞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 후배들을 의식하고 다독였다. 그는 이날 오전 검찰 포토라인 대신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관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여러 사람이 수사당국으로부터 조사까지 받은 데 대해 참으로 참담한 마음"이라며 "이 자리를 빌려 국민에게 우리 법관들을 믿어 줄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싶다. 절대 다수의 법관들은 국민에게 헌신하는 마음과 법관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사건에 관련된 여러 법관들도 자기들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저는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1월30일 김경수 경남지사가 '댓글조작' 의혹에 관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자 여권은 사법부, 특히 사법농단 세력의 반격이라는 주장을 노골적으로 쏟아냈다. 김 지사는 친문(親문재인) 핵심이자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다. 정부·여당의 사법개혁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기 위해 사법부가 김 지사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향후 법원의 손에 맡기지 않는 대대적인 사법개혁을 벼르는 모양새다. 갈등 구도로 비춰보면 이번 양 전 대법원장 구속기소와 향후 이어질 재판은 여권과 사법부 사이 또다른 긴장의 씨앗이 될 우려도 크다.

당장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재판을 어느 재판부에서 맡을지를 놓고 양측 모두 초긴장 상태다. 통상 재판 배당은 검찰 기소 후 2~3일 안에 이뤄진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이 배당될 수 있는 서울중앙지법 1심 형사합의 재판부는 총 16곳이다. 법원은 형사합의부 재판장 협의를 통해 소속 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연관성이 있거나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재판장 등 제척 사유가 있는 재판부를 제외하고 무작위 전산 배당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YTN에 출연해 "재판장이 곧 퇴직을 한다든가 다른 업무가 몰려있다든가 제척 사유에 해당한다든가 하는 문제로 재판부 16곳 중 5군데 정도가 (양 전 대법관 재판을 맡을 수 있는 후보로) 예상된다"면서 "여러 가지 사항 자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재판 결과가 나왔을 때 예컨대 '저 판사는 양승태 키즈였다', '저 판사는 과거 법원행정처에 근무했다'는 식으로 얘기가 나오면 또 양형의 공정성에 여러 가지 의혹을 살 대목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이를 가리려는 노력을 (법원이) 현재 하는 듯한데, 녹록지 않은 작업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