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前 장관 “트럼프가 있는 한 한·미 동맹 균열 불가피”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9 08:00
  • 호수 15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1차 북핵 위기 해결사’ 한승주 前 외무부 장관…“섣부른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철수 명분만 줄 것”

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⑨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⑩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⑪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장관으로 취임한 지 2주 만인 1993년 3월12일, 나의 22개월 장관 재임 기간 중 가장 중대한 사태가 벌어졌다. 그날 아침 10시 반경 정태익 미주국장이 급히 장관실을 찾았다.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는 것이다. 외무부 장관직을 맡은 지 2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자서전 《외교의 길》 중에서)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고려대 명예교수)은 우리 외교사에서 북핵과 관련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외무 관료다.

한 전 장관은 김영삼 정부 출범과 동시에 직업외교관이 아닌 학계 인사가 외무부 수장에 오른 첫 사례다. 깜짝 인사, 파격인사를 즐겨 하던 김영삼 대통령은 정치학자였던 한 전 장관을 통해 외무부의 대대적인 조직혁신을 꾀했다. 당시 김 대통령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정종욱 서울대 교수(외교학과)를, 외무부 장관에는 한승주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과)를 임명함으로써 관료사회에 충격을 줬다.

하지만 한 전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북핵’이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 직면해야 했다. 이후 북핵 문제는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에 이르기까지 숱한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 전 장관은 미국은 물론 중국·일본·러시아·유엔(국제연합) 등 국제사회를 돌며 평화적 해결방법을 모색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2차 위기 땐 주미 대사로 대미 외교 진두지휘

한 전 장관이 다시 외교무대에 등장한 것은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관계를 돈독하게 만든다는 생각에 추호도 변함이 없다’는 뜻을 강조한다는 차원에서 초대 주미 대사로 한 전 장관을 기용한 것이다. 

한국의 진보정권과 미국의 보수정권 간극은 애초부터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 때문에 중간에서 이를 조율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 간극을 채운 이가 바로 한 전 장관이다. 그 스스로도 “주미 대사로서 나의 워싱턴 시절 2년은 ‘Picnic(소풍)’이 아니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외무부 장관 시절부터 다져놓은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한 전 장관이 대사로 부임한 2003년 4월20일 뉴욕타임스는 ‘한국 외교,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다(Korean Diplomacy Enters a New Era)’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며 높은 신뢰를 보였다. 2차 북핵 위기 때도 한 전 장관은 주미 대사라는 대미(對美) 외교의 최일선에 섰다.

한·일 외교관계의 이정표로 평가받는 ‘고노 담화’가 발표된 것(1993년 8월4일)도 그가 외무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때다. 2005년 12월8일 고려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외교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열린 고별강연에서 한 전 장관은 자신이 생각하는 외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외교란 완전하고 일방적인 승리가 아닌 상호적이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외교가 포커와 같으냐, 바둑과 같으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외교는 표정 관리 면에서는 포커와 같아야 하고, 전략 면에서는 바둑과 같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외교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과 같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그가 바라보는 한국 외교는 어떤 모습일까. 또 북한과 미국 간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 전 장관과의 인터뷰는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인 3월4일 서울 경희궁 옆에 있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진행됐다. 


■ 북핵 사태

1994년 1차 위기 때는 외무부 장관으로, 2002년 2차 때는 주미 대사로 현장에서 북한 핵 문제를 다루셨습니다. 지난해부터 미국과 북한은 정상 간 대화로 비핵화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정상 간 대화는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쇼’ 효과는 있겠지만 실질적인 합의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될 순 없습니다. 다만 정상 간 이해를 도모하고 의중을 파악하는 방법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실무자 간의 협상과 합의로 연결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습니다.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귀국 후 자랑할 만한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약점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유리한 거래를 하려고 했을 겁니다. 조금 주고 많이 받는 방법 말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아마도 정상회담을 통한 ‘빅딜’보단 실무자 협상을 통해 ‘스몰딜’을 만들어 가면서 북한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추구할 겁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α’를 주고 대북제재의 부분적 해제를 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α란 ‘핵 목록 신고, 추가 시설 폐기’, 대북제재 해제는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 관광, 철도·도로 건설 등 남북경협을 허용’하는 겁니다.

그러나 핵 신고와 관련된 합의가 있다 해도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종전선언은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이라기보다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죠. 북한의 종전선언 카드는 대북제재를 철회시키기 위한 바게닝칩(협상수단)이지만, 궁극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달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1993년 7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서울공항에 도착, 한승주 외무부 장관의 안내로 환영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93년 7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서울공항에 도착, 한승주 외무부 장관의 안내로 환영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트럼프, 스몰딜 통해 단계적 비핵화 추구할 듯

회담이 결렬되면서 북한, 더 자세히 말하면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김 위원장의 다음 행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원했던 것을 다 얻지 못했으나 2차 회담에서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국제적 위상을 높였고, 미국과의 맞대결에서 자신이 결코 하수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그게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협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리라 예상하십니까.

“김정은 위원장이나 트럼프 대통령은 6자회담과 같은 다자협상보단 양자 간 딜 메이킹(Deal Making)을 선호할 것입니다. 2차 회담처럼 회담 결렬로 인해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회담 결렬의 원인을 미국의 코언 청문회 발언과 뮬러 특검 수사 등 미국 내부의 문제와 연결 짓는 시각도 있습니다.

“간접적이나마 영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가 내세울 성과가 없는 합의를 만드는 것보다 빨리 워싱턴으로 돌아가 국내 정치적 난관에 대처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약점을 이용해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이끌어 내려고 했는데 무리를 한 것 같습니다.”

회담 결렬로 우리 정부의 중재 역할이 한층 커졌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국내 언론이 ‘중재’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는 아주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중재(仲裁)란 영어로 ‘아비트레이션(Arbitration)’이라고 해서 제3의 권위 있는 인사 또는 기관이 강제력 있는 판결을 내는 행위입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중개(Mediation)지요. 양쪽 모두를 더 적극적으로 협상에 참여시킨다는 차원에서 ‘화해’라는 말도 괜찮습니다. 중재라는 말은 우리의 역할을 과장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중개’해야 할까요.

“북한엔 비핵화가 남북 경제협력의 폭과 규모를 넓힐 기회라는 것을 알려주고, 미국엔 지금 가능한 ‘딜’이 비핵화 과정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합니다. 좀 더 필요하다면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김 위원장의 발언을 외부에 전달하는 것으로 만족할 게 아니라 북핵과 관련된 목표가 무엇인지 확실히 설정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북한과 미국의 협상을 주선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북한과의 경제협력 길을 열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국, 북핵 중재자 아니라 중개자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북한 비핵화 해법을 찾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북핵 문제와 관련해 당사국들이 모두 ‘네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봐야겠네요. 하지만 결정적 원인은 북한의 역대 지도자들이 핵무기가 자신들의 생존 수단이라고 생각해 벼랑 끝 전술, 기만, 살라미 전술, 위장 비핵화 등을 동원해 핵 개발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3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아마 3차 회담은 안 열릴 겁니다. 대북제재의 부분 해제는 정상회담을 굳이 열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거거든요. 북한으로선 미국과 정상회담을 열어야 할 메리트가 없습니다. 서울 답방도 가능성이 낮아 보입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남한 내 사회갈등만 야기할 뿐이죠.”


■ 한국 외교정책

정치외교학자로서 트럼프란 인물을 어떻게 보십니까.

“제가 고별강연에서 외교에 대해 7가지로 설명했습니다. 협상에 있어서도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보는 게 외교거든요.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제가 얘기한 모든 것을 반대로 하는 인물이에요. 그게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먹힐지 몰라도, 국제외교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외교는 공개적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다 공개하지 않습니까. 하지 말라는 건 다 하고, 하라는 건 다 반대로 하고 있는 겁니다. 학자적 입장에선 상당히 재미있는 케이스지만, 이론이나 논리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사람인 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요.

“트럼프 대통령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이를 위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양심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무조건 칭찬하는 건 나라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 아니에요. 다른 나라에서 볼 때, 속에 없는 말이라는 게 빤히 보이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 국격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칙 있는 대미 실용외교가 필요하다는 의미 같습니다.

“혹자는 실용이라는 게 원칙이 없는 거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외교가 바로 그렇기 때문이죠. 김정은 위원장을 ‘로켓맨’으로 부르다 ‘친구’라고 하지 않던가요? 중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죠. 하나의 중국을 고수할 필요가 없다고 하다가 설명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불가피한 경우에 하나의 정책을 바꿀 수 있겠지만, 분명한 건 이유가 있고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그럽니다. 북핵 문제 해결은 미국에 맡겨놓고 우리는 경제협력에 나서야 한다고 말이죠. 북한 인권 사항은 우리 외교 사안이 아니라면서 말입니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우리의 역할을 미국과 북한을 연결시켜주는 것으로 규정하며 대북제재에 마지못해 동참하는 건 혼돈스러운 일이죠.”

2차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미 군사연합훈련 중단의 이유를 돈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내년에 재협상하자는 이야기도 솔솔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이 한국을 방어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존재로 간주하며 금전적인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주한미군은 오늘에 와서 소련 대신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을 방위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 되고 있어요. 북한의 비핵화에도 필요합니다. 한국 방위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관련해선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가 아닌 ‘윈윈’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일각에선 한·미 동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 있는 한, 동맹에 이상이 안 생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과도 불화를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정부가 민족 공조를 강조한 나머지 미국과의 유대를 소홀히 하는 인상을 주는 것도 한·미 관계에 어려움을 주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외신들은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여전히 걱정합니다.

“그건(주한미군 철수)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예요. 물론 지금 북한에 1차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제재 해제죠. 종전선언이나 주한미군 철수는 제재 해제를 위한 디코이(Decoy·유인책)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겁니다.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철수나 지위를 약화시키기 위한 명분을 준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점이죠.”

과거 노무현 정부 때도 한·미 외교라인은 다분히 이념에 치우친 경향이 강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체로 워싱턴의 분위기는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에 집중한 나머지 동맹을 포함한 한·미 관계 전반을 소홀히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한·일 외교분쟁과 관련해 워싱턴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일본 쪽에 다소 기운 모습을 보이고 있거든요. 주한미군 문제에 있어 트럼프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사들이 축소나 철수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다행스러워요.”

한승주 외무부 장관과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이 1994년 11월9일 외무부에서 북·미 합의 후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변화와 한·미 공조 강화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 ⓒ 연합뉴스
한승주 외무부 장관과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이 1994년 11월9일 외무부에서 북·미 합의 후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변화와 한·미 공조 강화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 ⓒ 연합뉴스

“사드 배치 있어 중국 기대감 키운 것은 실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사드 배치는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보십니까.

“네. 사드 배치는 필요한 조치였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취한 것은 중국에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줌으로써 필요 이상의 문제를 야기했다고 봐야 합니다.”

과거 주미 대사 시절 균형감 있는 외교활동으로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현재 대미 외교팀에 당부할 게 있다면 어떤 점을 말씀하시겠습니까.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대미 외교는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 비위를 맞추기 위해 급급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사건건 싸움을 할 일도 아니에요. 균형을 잡고 일관성 있는, 그러면서도 원칙이 있으면서 실용적인 외교를 수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한반도 주변 국제관계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미국 대선이 내년에 치러지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얼마나 지지표를 던져줄지를 지금 알긴 어려워요. 트럼프의 수많은 비리가 드러나고 조금씩이나마 지지층이 움직이고 있어 재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그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불행이 될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게 가장 걱정됩니다.

“앞으로 2년간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는 당면한 정치적, 법적 문제들을 어떻게 헤쳐 나가고 2020년 대선에서 어떻게 승리하느냐죠. 이미 그 자신이 공언한 대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큰 업적으로 내세울 거예요. 그런 면에서 트럼프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봅니다.”

2015년 체결한 위안부 합의 파기로 한·일 관계도 악화됐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의 이러한 결정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다. 상책은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겁니다.”

하노이 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겨냥해 다소 뼈 있는 몇 마디를 했습니다. 회담 결렬이 대중(對中) 무역갈등 등 중국과의 국제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회담 결렬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력 부재, 전략의 빈곤을 드러냈어요.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미국의 대중국 입지를 약화시켰죠. 대중 무역 갈등에 있어서도 미국은 큰소리친 것과 달리 고삐를 늦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전반적인 국제관계에 있어 미국의 위상과 입지가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여전히 ‘쌍중단(雙中斷·북한 핵 개발,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북핵 해결이 쉽지 않은 배경에 중국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국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어떤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시는지요.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것은 중국의 이익에도 어긋나는 일이에요. 중국은 북한 정권을 존속시키고 북한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중요하게 보고 있어요. ‘쌍중단’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서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이미 이뤄진 거나 다름없어요. 중국은 북한이 원하는 ‘부분적 제재 해제’에 동참해 한국과 함께 북한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워싱턴, 한·일 외교 갈등에서 일본 쪽 기울어”

한·일 외교 갈등을 바라보는 워싱턴의 생각은 어떨 거라고 보십니까.

“워싱턴은 한·일 간의 관계에 있어 비정상적인 갈등이 유발되고 있다고 봅니다. 당장 초계기 사건만 해도 미국 사람들은 일본 쪽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이는 분위기예요. 트럼프가 방위비 문제로 주한미군 감축을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주한미군의 중요한 목적은 일본 방위거든요. 일본 정부는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부분만 약속하는 것을 걱정합니다. 미·일 동맹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일본은 미국과 SM-3(‘바다의 사드’로 불리며 최대고도 500㎞까지 요격 가능)로 연결돼 있어요. SM-3는 사드보다도 강력한 방위체계거든요.”

장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외교가 실종된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지적이에요. 외교엔 정책이 있고, 이를 이행하는 컨덕트(Conduct)가 필요해요. 대중국 외교만 보더라도 중국 대사가 몇 달째 자리를 비워놓고 있는데도, 아무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건 그 전에도 한 일이 별로 없었다는 뜻이에요. 신임 대사는 개인적으로 잘 압니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 같은데 외교는 단일 이슈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