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막힌 김정은의 새로운 돌파구 ‘푸틴’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8 11:00
  • 호수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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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기회” 北·러 경제특구 ‘나선-하산’ 집값 강세…경제난 허덕이는 北, 러시아에 SOS

서울의 한 사립대 북한연구소에 근무하는 A연구원은 올 초 북한·러시아 접경지역 ‘나진-하산(Hassan)’ 일대를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북한의 경제특구 나진·선봉(나선) 일대에 지상 15~20층짜리 아파트가 생각보다 빠르게 지어지고 있어서다. 표면상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면, 유엔 대북제재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A연구원은 “나선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4~5년 전부터”라면서 “경제제재가 강화되고 있지만, 집값은 강세라는 이야기가 일대에 파다하다”고 전했다. 

나선-하산에서 북한 측 지역인 나선은 북한의 1호 경제특구다. 이 일대가 경제특구로 지정된 것은 1991년 무렵. 북한은 이곳을 2005년에는 특급시로, 2010년엔 특별시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이곳의 두만강 건너편에 위치한 러시아 접경 도시가 바로 하산이다. 북한 입장에선 외자 유치에 있어 최적의 장소다. 러시아와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다. 동쪽과 서쪽의 경제 차가 큰 러시아로선 어떤 식으로든 극동 개발을 성공시켜야 한다. 하산 일대를 개발하면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것도 가능하다. 

참고로 나선-하산과 가장 가까운 중국의 도시는 훈춘(琿春)이고 그 뒤에 있는 대도시가 창춘(長春)이다. 중국은 나진항을 통해 내륙 물류를 동해로 빼내 처리해도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창춘과 지린(吉林)-투먼(圖們) 일대를 ‘창지투(長吉圖) 선도구’라며 국가사업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 국경 하산역 역사. 역사 왼쪽 옆 플랫폼에 2011년 10월12~13일 러시아 하산에서 북한 나진까지 시범 운행을 하고 돌아온 화물열차가 정차해 있다. ⓒ 연합뉴스
러시아 국경 하산역 역사. 역사 왼쪽 옆 플랫폼에 2011년 10월12~13일 러시아 하산에서 북한 나진까지 시범 운행을 하고 돌아온 화물열차가 정차해 있다. ⓒ 연합뉴스

 

러시아·중국 큰손들, 입도선매 분위기

나선 일대 부동산 개발은 민관 합동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북한 노동당이 철거 및 토지 조성과 개발 인허가권을 갖고 ‘돈주’로 불리는 평양의 비공식 민간자본이 개발에 나서는 방식이다. 노동당으로부터 인허가권을 따낸 ‘돈주’는 북한 내부나 외부로부터 투자자를 찾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극심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 내부에서 마땅한 투자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여명거리 등 평양 시내 한복판의 고층 아파트 입주권도 전년 대비 20~30%가량 하락한 상황이라 더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나선 지역의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최근 1~2년 사이 해외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상은 중국·러시아 큰손이다. 

그중에서도 중국 자본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현재 나선-하산에는 중국·러시아 기업들이 다수 입주해 있다. 외국인을 위한 카지노도 있다. 이수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남북경협팀장)는 “특구로 지정된 지 30주년을 맞이한 올해 중국·러시아 투자자들은 경제제재가 해제될 경우 이 일대 부동산 가치가 급등할 것으로 생각해 경기가 바닥인 지금을 최적의 투자시기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금융시장에서 큰손으로 불리는 짐 로저스의 발언에서도 읽힌다. 짐 로저스가 2015년 3월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과 중국, 러시아 3국 접경지역을 투자유망 지역으로 꼽았는데, 이곳이 바로 ‘나선-하산’이다.

현재 나선-하산에서 가장 비중이 큰 사업은 물류다. 이 사업은 북한과 러시아가 함께 만든 조인트벤처에서 진행하는데 공식 회사명은 ‘라선컨트란스’다. 러시아와 북한의 지분비율은 7대3이다. 러시아산 석탄을 나진항을 통해 내보내는 이 사업은 현재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 제2270호 제9조 및 제2371호 제8조에 따라 석탄 수출 금지 예외를, 제2375호 제18조에선 합작사업 금지 예외 규정으로 두고 있다. 제2397호 제16조에 따라 화물선박 해상차단 강화 부분도 예외다. 애초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북한과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철도로 가져온 석탄을 나진항에서 배에 실어 남한의 광양항으로 갖고 오는 방식을 생각했다. 시작은 북·러 조인트벤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남·북·러가 참여하는 3자 합작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시행된 5·24조치 이전까지만 해도 이 모델은 경제적 가치가 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유엔 제재에서 빠진다 해도 미국 독자 제재가 버티고 있다. 당장 나진항에 입항한 선박은 1년간 미국 항구에 들어올 수 없다. 더 무서운 것은 ‘세컨더리 보이콧’ 성격의 금융제재다. 나선-하산에서 출발한 물자를 해외에 내다 파는 데 자금을 대준 금융기관들은 미국 주도의 국제 금융시장에서 퇴출된다. 이 때문에 현재 라선컨트란스는 상당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광 수요를 겨냥한 개발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현재 러시아 연해주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을 여행하는 것은 대북제재에 해당되지 않는다. 김광길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두만강을 가로질러 러시아와 북한을 잇는 자동차용 다리를 새로 건설하는 것도 북한 투자가 아니어서 대북제재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뉴시스

5월 중 김정은 러시아 방문 유력 

최근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북한과 경제교류가 많은 우방이다. 동시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지금 중국이 미국과 무역전쟁 중이라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도 북한이 러시아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다. 이는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생각과 맞아떨어진다.

실제로 푸틴의 핵심 측근인 블라디미르 콜로콜체프 내무장관은 4월2일 평양을 방문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부일 인민보안상 등과 면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콜로콜체프 장관의 방북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공식 방문이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는 4월3일 “김 위원장을 공식 초청했으며, 다만 형식과 장소, 시기는 아직 조율 중이다”고 밝혔다. 

러시아 극동 개발은 북한과 러시아 양국에 좋은 외화벌이 수단이다. 북한은 러시아에 3만 명에 달하는 인력을 파견한 상태다. 하지만 유엔 제재로 올해 안에 절반에 가까운 인력이 북한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럴 경우 북한으로선 돈줄이 더 말라갈 수밖에 없다.

외교가에서는 김 위원장이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인 5월9일 극동 지역 거점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로 날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9월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의 비서실장 격인 김창선 서기실장이 지난 3월 모스크바를 찾은 것도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논의하기 위한 성격이 짙은 것으로 판단된다. 나선-하산 일대 부동산 값이 조금씩 오르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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