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한 DJ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의 ‘굴곡진 인생사’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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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민주화운동 헌신하다 모진 고문당해
고문 후유증으로 얻은 파킨슨병 최근 병세 악화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의 빈소 ⓒ연합뉴스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의 빈소 ⓒ연합뉴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4월20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고인은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자택에서 쓰러져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별세했다. 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과거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아오다 최근 병세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1948년 목포에서 태어난 김 전 의원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그가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도 불린 이유다. 그의 삶의 궤적은 아버지와 닮아있다. 부자는 민주화를 위해 모진 풍파를 겪었고, 굴곡진 삶을 살았다. 김 전 의원의 첫 ‘대외행보’는 1971년 대선 때다. 당시 경희대 정외과 대학원생이던 김 전 의원은 청년 조직을 결성해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김 전 대통령의 선거를 도왔다.

이 일로 김 전 의원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일주일 동안 고문을 당했다. 고(故) 조영래 변호사와 고(故) 김근태 전 의원, 심재권 의원 등 서울대생이 주축이 된 전국 최초 학생운동조직체인 ‘민주수호전국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의 배후조종자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 전 의원은 이때 고문으로 허리를 크게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1980년 5월에는 신군부가 김 전 대통령을 학원 소요사태 및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조종자로 발표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공안당국에 연행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당시 심한 구타를 견디다 못해 허위 자백을 할까 두려웠던 김 전 의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목을 크게 다쳤고, 이 부상이 파킨슨병으로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으로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에서 4년6개월 형을 선고받은 김 전 의원은 1987년 사면 복권 될 때까지 정권의 계속된 감시를 받아왔다. 사면 이듬해부터는 정치권에 합류해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1988년 평화민주당의 외곽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를 만들어 정계에 첫발을 들였고,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로 목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0년 당명을 바꾼 ‘새천년민주당’으로 제16대 총선에서 재선했고, 2004년 3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6년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김 전 의원은 대외활동을 접었다. 이후 모습을 나타낸 것은 2009년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다. 당시 김 전 의원은 파킨스병이 악화돼 몰라보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타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한편, 김 전 의원의 빈소는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차려졌다. 입관은 4월22일 오후 2시, 발인은 4월23일 오전 7시로 예정됐다. 김 전 의원의 묘소는 5‧18 국립묘지에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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