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는 도대체 왜 생기는 걸까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1 08: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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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신체의 빠른 노화 보여주는 적신호”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부족  

캐나다 작가 수진 닐슨이 2010년 펴낸 소설 《조지 클루니씨, 우리 엄마랑 결혼해줘요》는 이혼한 엄마와 미국 배우 조지 클루니를 이어주려는 12살 딸의 이야기다. 머리가 하얗게 센 중년 남자라도, 새아빠로 삼고 싶을 만큼 조지 클루니는 어린 소녀에게도 매력적인가 보다. 그러나 일반인에게 흰머리는 나이 듦 또는 늙음을 상징한다. 결혼식에 단골로 등장하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라’는 주례사에서도 파뿌리는 흰머리, 즉 늙음을 뜻한다. 그래서인지 파뿌리처럼 흰색의 머리카락은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게 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흰머리를 막을 수는 없다. 흰머리는 나이를 먹으면 생기는 정상적인 현상이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50대까지, 흰머리가 생기는 시기와 정도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30대 이후부터 흰머리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고 40~50대엔 대다수가 검은 머리카락을 그리워하게 된다. 

본래 자신의 머리카락 색은 모근에 있는 색소 세포(멜라닌 세포)에 의해 정해진다. 젊을 땐 색소 세포 수도 많고 색을 분비하는 기능이 활발해 본래의 머리색이 잘 유지된다. 그러나 20대부터 서서히 색소 세포 수가 줄어들고, 그 기능도 떨어진다. 점차 색소 공급이 잘되지 않아 머리카락이 본래의 색을 잃는데, 이것이 흰머리다. 빛 반사에 따라 은색으로도 보이므로 은발 또는 그레이 헤어라고도 부른다.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굵어 보이는데, 이는 흰머리가 검은 머리카락보다 도드라지게 보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 현상이다. 

모든 머리카락이 거의 동시에 하얗게 변하는 것도 아니다. 흰머리도 생기는 순서가 있다. 흰머리는 일반적으로 옆머리부터 시작해 정수리와 뒷머리 쪽으로 퍼진다. 또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코털-수염-눈썹-속눈썹 순으로 하얗게 탈색된다. 겨드랑이, 가슴, 음부 등에 나는 털의 색은 잘 변하지 않는다. 

미국 배우 조지 클루니는 흰머리 그대로 2016년 칸영화제에 참석했다. ⓒ AP연합
미국 배우 조지 클루니는 흰머리 그대로 2016년 칸영화제에 참석했다. ⓒ AP연합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 증거는 미흡

프랑스 혁명 후 국고 낭비 죄와 반혁명죄로 처형된 마리 앙투아네트는 37살 젊은 나이에 단두대에 오르기 전, 극심한 스트레스로 하룻밤 사이 백발이 됐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이다. 머리카락이 갑자기 하얗게 세는 것을 가리킨다. 문재인 대통령도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개표가 끝난 뒤에 스트레스로 3주가량 몸살을 앓는데 그때 머리가 하얗게 셌다고 한다. 예전 미국 대통령 후보 존 매케인도 베트남 전쟁 때 포로로 잡혀서 고문을 당한 후 머리가 백발이 됐다. 

이처럼 스트레스가 흰머리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흰머리가 유독 눈에 거슬리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여긴다. 실제로 흰머리와 스트레스 관계를 밝히려는 연구가 있다. 미국 앨라배마주립대와 버밍엄대 공동연구진은 인간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발동하는 면역체계가 모발의 멜라닌 색소 생성을 방해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13년 뉴욕대 연구진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장기간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머리색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스트레스가 흰머리를 촉진한다는 단서를 모으고 있지만, 그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밝힌 과학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흰머리가 검은 머리로 돌아간다는 의학적 근거도 없다. 다만, 스트레스 등으로 생기는 활성산소가 노화를 촉진하므로 흰머리도 빨리 생길 것이라는 정황은 많다.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시나이병원의 타일러 사이멧 가정의학과장은 입원 환자 가운데 흰머리를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소규모 연구를 진행했다. 사이멧 과장은 “2~3년 동안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은 빨리 흰머리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흰머리 발생 시기는) 유전적인 원인도 있지만, 스트레스나 생활습관으로 5~10년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어린 나이에 흰머리 많으면 질병 의심

젊은 나이에 흰머리가 나는 경우도 있다. 흔히 젊은 사람에게서 나는 흰머리를 새치라고 부른다. 이는 속칭일 뿐, 의학적으로는 흰머리와 동의어다. 노화가 아니더라도 흰머리가 나는 원인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원인은 가족력이다. 부모나 조부모가 이른 나이에 흰머리를 경험했다면 자식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나 저하증 같은 호르몬 이상으로 흰머리가 날 수 있다. 악성 빈혈, 골감소증, 당뇨병, 신장병 등 질환도 흰머리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너무 어린 나이에 흰머리가 생겼다면 특정 질환이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조성진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20대에 흰머리가 나더라도 10가닥 미만이면 정상이지만, 흰머리가 전체 3분의 1 이상이어서 눈으로 확연히 보일 정도라면 병원 진료를 한 번쯤은 받아볼 필요가 있다. 또 초등학생이 흰머리가 생기기도 한다. 대부분 큰 이상은 없지만, 눈으로 보일 정도로 흰머리가 많다면 병원에서 특정 질환이 없는지 검사를 받아보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흰머리는 질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특히 흰머리와 심장병 위험의 연관성은 과거부터 관찰돼 왔다. 인도 구라잣의대 심장전문병원 연구진이 40세 이하 남성 중 관상동맥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790명과 건강한 사람 1270명을 비교했더니 흰머리나 탈모가 있는 남성은 건강한 남성보다 심장병 위험이 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비만한 사람의 심장병 위험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4배 높다. 결국, 심장병에는 비만보다 흰머리나 탈모가 더 큰 위험요인 셈이다. 연구진은 “조기 탈모와 흰머리는 신체의 노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적신호”라고 강조했다.  

또 뚱뚱할수록 흰머리가 많이 난다는 게 의사들의 설명이다. 조 교수는 “나이와 가족력 외에 비만과 흡연이 흰머리를 촉진한다. 특히 흰머리가 생긴 젊은 사람 가운데 뚱뚱한 사람에게서 확실히 흰머리가 많다. 비만한 사람의 대사 변화가 모발 색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한다. 또 담배를 피우면 노화를 촉진하기 때문에 흰머리와 관련이 있다. 만성질환이나 악성 빈혈 등 질병으로 아주 어린 나이에도 흰머리가 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월이 지나 생기는 흰머리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체중 조절과 금연으로 흰머리가 생기는 시기를 늦출 수 있다. 또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 고른 영양 섭취와 같은 일반적인 건강관리도 흰머리 예방에 필요하다. 조 교수는 “흰머리 예방으로 체중 조절과 금연을 추천한다. 또 일반적인 건강관리가 흰머리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염색할 땐 생리 독성 성분 조심해야

그래도 하나둘 생기는 흰머리가 보기 싫어 그때마다 뽑는다. 흰머리를 뽑을수록 더 많은 흰머리가 난다는 말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속설이다. 흰머리를 뽑아도 모근은 두피 아래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다시 흰머리가 나온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흰머리 수는 늘어나므로 전체적으로 흰머리가 더 많이 난 것처럼 보인다.  

뽑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흰머리가 많아지면 대개 염색을 생각한다. 성인 10명 중 6명 이상이 염색을 해 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염색할 때 주의할 점은 알레르기 반응이다. 색을 내는 성분(PPD)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데, 이 물질의 농도가 짙을수록 두피에 강한 자극을 준다. 천연 성분으로 만든 염색제라도 사람에 따라 가려움증이나 피부 착색과 같은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난다. 서울성모병원 피부과 연구팀은 2009~15년 피부반응검사로 확인된 염색약 알레르기 환자 105명을 대상으로 머리염색약과 접촉성 알레르기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염색약 알레르기는 50세 이상에서 흔하게 관찰됐다. 가장 흔한 증상은 가려움증, 따끔거림, 건조함 순이다. 또 반점, 판(피부가 솟아오름), 각질, 진물도 동반됐다. 증상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부위는 얼굴(57.1%)이었고, 그다음으로는 두피, 목, 몸통, 손이었다. 염색약 사용이 많을수록 알레르기 발생 범위가 넓어졌고 알레르기가 전신에서 발생할 가능성도 커졌다. 특히 환자의 80%는 피부반응검사를 통해 염색약 알레르기가 있음을 알았지만 28.6%만이 염색약 사용을 중단했다.

흰머리를 뽑아도 모근은 두피 아래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다시 흰머리가 나온다.
흰머리를 뽑아도 모근은 두피 아래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다시 흰머리가 나온다.

염색 알레르기, 팔 안쪽 사전 테스트로 예방 가능

이런 이유로 유럽연합(EU)은 2007년 염색제 제품에서 PPD 성분을 6% 이하로 제한했고, 아예 염색약에 PPD 사용을 금지하는 국가도 생겼다. 국내에서는 염색약에서 PPD 성분을 3%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국내에서 이 성분을 포함한 염색제는 전체 염색약의 3분의 2 정도다. 새치용 염색제의 경우 90% 이상이 PPD 성분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PPD라는 검은색 염료는 생리 독성이 있어 여러 나라에서 사용을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화학 성분이 적거나 천연 성분으로 만든 염색약이라도 모발과 두피에 자극을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염색을 너무 자주 하는 것은 두피 건강에 좋지 않다. 또 염색할 때 염색약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염색약을 바른 후 너무 오래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두피에 염색약이 너무 많이 묻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다. 조 교수는 “염색약은 화학약품이어서 접촉성 피부염과 같은 알레르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피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사용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염색약 알레르기 피해를 막으려면 사전 테스트를 통해 안전성을 확인하는 편이 확실하다. 면봉에 염색약을 발라 팔 안쪽이나 귀 뒤쪽에 묻힌 다음 48시간 피부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염색약이 흘러 옷에 묻을 수 있기 때문에 일회용 밴드 거즈 부분에 염색약을 발라 붙이는 방법도 있다. 간지럽거나 붓거나 진물이 흐르는 등의 증상이 생긴다면 염색을 삼간다.  

흰머리가 고민인 사람은 검은색 음식을 찾는 경향이 있다. 검은콩·검은깨·검은쌀 등 이른바 블랙푸드로 흰머리가 검게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품이 흰머리를 검게 만들거나 예방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이들 식품에 있는 항산화 성분(폴리페놀)이 탈모 예방에 다소 도움이 될 것으로 추측하는 정도다. 오히려 모발 건강에는 단백질, 무기질, 아미노산, 비타민 등 다양한 영양분이 필요한 만큼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한편, 내년에 환갑을 맞는 조지 클루니는 염색하지 않고 흰머리를 유지할 것 같다. 그는 2015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젊어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그저 지금 자신의 나이에 맞는 최고의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면 된다”며 머리 염색 등 젊어 보이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근거 없는 흰머리 속설들  

고생하거나 머리 나쁜 사람이 머리를 쓰면 흰머리가 난다?
고생하거나 머리를 많이 쓰는 것은 일종의 스트레스다. 
스트레스가 흰머리의 원인이라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염색을 자주 하면 흰머리가 더 난다?
염색을 자주 해서 흰머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음 염색 시기에 상대적으로 흰머리가 눈에 잘 띄는 것뿐이다.

흰머리를 뽑으면 더 많이 난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흰머리를 뽑다가 모낭이 손상되면 아예 머리카락이 나지 않는 불행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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