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에 안도하는 유럽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16 08:00
  • 호수 16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주말(11월7일) 트럼프의 재선 실패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 정치권과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수년간 고율 관세 압박,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파리기후협정 등 문제에서 다른 입장을 취하며 유럽연합(EU)과 불화를 빚어왔다. 하지만 조 바이든의 당선으로 양 대륙 간 외교 문제는 예측 가능해졌고, 다방면에서 협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2018년 6월9일 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폭탄’에 대해 항의하는 유럽 정상들 ⓒAP 연합
2018년 6월9일 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폭탄’에 대해 항의하는 유럽 정상들 ⓒAP 연합

독일·프랑스를 비롯한 EU 대다수 국가 정상들과 유력 정치인들은 지난 주말 바이든 대통령 후보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는 트위터 메시지를 앞다퉈 전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바이든 당선인과 이전에 좋은 만남과 대화를 나눴던 것을 기억한다”면서 “미국과 독일은 직면한 코로나 위기, 지구온난화, 국제적 테러리즘과 같은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대응해야 한다”며 양국 간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부통령이 되는 카멀라 해리스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하고싶다”는 메세지를 통해 최초의 여성-비백인 부통령에 오른 해리스 부통령 당선자의 성공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도 해리스 부통령의 당선을 "역사적 성취"라고 높이 평가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강력한 NATO는 북미와 유럽에 유익하다”며 바이든은 “우리 동맹 관계의 강력한 지지자”라고 환영했다. 독일 외무부 페터 바이어 북대서양 협력조정관은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의 승리는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큰 안도의 한숨’처럼 반겨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는 독일에서 극도로 인기가 없었는데 이는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화시켰다”며 “앞으로 개선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캠페인에서도 NATO 탈퇴를 수차례 거론했고, 미군 3만5000명 이상이 주둔한 독일에는 GDP 2%대로 국방비 지출을 늘릴 것을 압박해 양국 관계가 긴장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바이든과 해리스 당선에 대한 EU의 확연한 환영 반응은 특히 기후위기 문제에서 눈에 띈다. 많은 유력 정치인과 정당, 기후단체들이 ‘미국의 복귀’를 환영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곧 파리협정 5주년을 맞게 된다”며 “이 승리는 기후위기라는 점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긴밀히 협력할 필요성을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11월4일 파리협정을 공식 탈퇴했지만, 바이든은 신속한 재가입을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의문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다. 11월6일 독일 DTS 통신사에 의하면, 대표적인 기후운동단체 ‘Fridays-for-Future’는 “트럼프에 비해, 바이든은 전반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의지를 보인다”면서도, “그의 기후정책 계획은 독일 정부의 정책을 연상시킨다. 외양은 낙관할 수 있지만, 실제 내용은 우리가 희망하는 것에 못 미친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바이든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기후정책을 기획하는 ‘역사적인 기회’를 가지기에 아직 파리협정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앞으로의 초점은 “그가 선거공약을 지키도록 상기시키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EU와 NATO의 회원국인 중앙유럽의 4개국(V4)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의 국가원수들도 미국의 새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냈다. 특히 유럽에서는 드물게 친트럼프 성향으로 여겨지는 헝가리 수상 빅토르 오르반도 뜻밖에 발빠른 축하 서한을 보내 주목을 받았다. 유럽연합은 헝가리 정부의 EU 지원금 횡령같은 부정부패와 민주주의 침해를 이유로 제재조치의 논의 대상이 되어왔는데, 이에 항의하는 헝가리는 유럽연합 예산을 비토하겠다고 협박해왔다. 

헝가리 사회학자 발라쉬 베르코비츠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영향력하에 있는 대다수 언론매체는 트럼프가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에 집중하는 모양새”라며 “헝가리 언론의 이런 보도행태는 바이든이 헝가리를 전체주의국가라고 비판했던 발언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헝가리 정부는 자국의 악화되는 인권문제에 관여하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새 정부를 불편하고 두려운 시선으로 보고있다”고 분석했다.  

오르반 총리의 친밀한 정치적 동맹이자 슬로베니아의 수상인 야네즈 얀샤는 지난 수요일 성급하게 트럼프 대통령에게 축하 트윗 메세지를 전하는 헤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카타르의 일간지 ‘더 페닌슐라’(The Peninsula)는 멜라니아 트럼프가 슬로베니아 출신이라고 언급하며, 얀샤 수상이 바이든을 “미국 역사상 가장 불완전한 대통령 가운데 한 명이 될 것”이며 “법원이 선거결과를 판단해야 한다"는 그의 발언과 함께, 아직까지 공식축전을 보내지 않은 그의 특이한 행보를 보도했다. 반이민 기치를 내건 슬로베니아민주당 (SDS) 소속인 그는 올해 3월 집권했다.

이와 달리, 슬로베니아의 보루트 파호르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직 관료들은 이미 바이든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또한 체코 밀로시 제만 대통령도 과거 공식적으로 트럼프 지지입장을 표명한 바 있지만, 바이든 당선 직후 축전을 보냈다. 비록 트럼프가 유럽연합을 “적"이라고 명명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베니아와는 비교적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맺어왔다.

세계 최연소 수상으로 주목받는 핀란드의 산나 마린 수상은 미국의 초고령 대통령이 될 바이든에게 축전을 먼저 보낸 정치인들중 한 명이다. 지난 7일 핀란드 공영방송 Yle은 우익 포퓰리스트 성향의 ‘Finns Party’당의 주스시 한라아호(Jussi Halla-aho) 대표만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력 정치인들이 당선 축하 메세지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혈연을 중시하는 이탈리아는 새로운 영부인 질 바이든이 이탈리아 태생이라는데 주목하기도 했다. 심지어 영부인의 사촌까지 인터뷰하는 열성을 보였다. 유력한 인터넷매체 '팬페이지'(Fanpage)는 질 바이든이 뉴저지에서 출생했지만 조부가 시칠리아 태생이라며 500명 남짓한 현지의 작은 마을 겟소(Gesso)의 모든 주민들이 바이든 부부의 당선을 응원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그의 일생 궤적을 자세히 보도하며 영부인이 되고서도 교사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의 직업적 열정에 주목했다.  

브뤼셀의 싱크탱크, 유럽정책센터의 야니스 엠마누일리디스 디렉터는 지난 1일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 이전) 과거로의 전면적인 회귀는 불가능하기에 유럽연합과 미국의 관계는 앞으로도 다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을 것”이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관계가 상당히 진전될 희망이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 소속의 바이든도 중국에 대한 유럽연합의 관대한 태도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기후문제와 다자주의, 세계무역기구 이슈에 협력하는 댓가로 중국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예측했다. 이는 향후 미·중 갈등이 유럽에서도 여전히 외교 쟁점으로 남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