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마니아인 ‘개코’가 골프 역사 새로 썼다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1 16:00
  • 호수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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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재, PGA 최고 권위 마스터스 준우승…역대 아시아 최고인 최경주 3위 성적 깨트려

PGA 최고 권위의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가 11월16일(한국 시간) 우승자를 가려냈다. 하지만 전 세계 골프팬들의 이목은 우승자인 더스틴 존슨(미국)보다 2명의 선수에게 더 집중됐다. 한 명은 ‘골프지존’으로 일컬어지는 지난해 우승자 타이거 우즈이고, 또 한 명은 코리안 임성재 선수다. 그런데 그 주목도의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 타이거 우즈는 이날 파3 홀에서 무려 10타를 치는 참사로 화제가 된 반면, 임성재는 아시아 선수 중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차지하며 새 역사를 썼다는 점이다.  

임성재는 이날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끝난 84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합계 15언더파 273타를 쳐 존슨과 5타차로 캐머런 스미스(호주)와 공동 2위에 올랐다. 임성재는 이 대회 상금으로 101만2000달러(약 11억2000만원)를 손에 넣었다. 마스터스 종전 아시아 국적 선수의 최고 성적은 2004년 최경주가 기록한 3위였다.

이번 대회에서 임성재가 특히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세계골프랭킹 1위 존슨과 함께 챔피언조에서 플레이를 펼치면서도 전혀 위축되거나 기죽지 않고 자신만의 경기를 풀어갔다는 데 있다. 세계적인 골프평론가들로부터 “최고의 리듬 감각을 갖고 있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임성재는 72홀 내내 자신감을 갖고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임성재는 이번 마스터스에서 아시아 최고의 성적 외에도 올 시즌 최다 버디와 최소 퍼트 수를 기록했다.

임성재 선수 ⓒ연합뉴스

7세 때 골프클럽 처음 만지고, 9세에 대회 첫 출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임성재는 네 살 때 제주도로 이사를 갔다. 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골프장을 다녔다. 플라스틱 장난감 클럽을 휘둘렀던 것도 이때다. 그는 일곱 살 때 첫 골프클럽을 만졌고, 초등학교 2학년 때 대회에 첫 출전했다. 이때 77타를 친 것이 ‘골프의 길’을 선택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한국체대 4년 재학 중으로 2014년, 2015년 2년간 국가대표를 지낸 임성재는 2016년부터 2년간 일본과 한국투어를 병행했지만 우승이 없었다.

2018년엔 미국을 노크했다. PGA 2부 콘페리투어에서 2승을 거두며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8~19 PGA투어 시즌을 맞은 임성재는 35개 대회에 출전해 우승은 하지 못했으나, 최고 성적 3위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2부 투어 신인상을 받은 뒤 이듬해 PGA투어 신인상을 받은 것은 22년 만의 기록이다.

신인상도 의미가 크지만, 그래도 임성재에게 필요한 건 우승이었다. 그 기회는 드디어 2019~20 시즌에 찾아왔다. 올해 3월 혼다클래식에서 생애 첫 PGA 우승을 차지했다. 2020~21 시즌은 7개 대회에 출전해 모두 컷을 통과했고 ‘톱10’ 1회, ‘톱25’에 3회 들었다. 올 시즌 현재 그의 상금 랭킹은 10위(138만4676달러)다. 세계골프랭킹은 18위에 올라 있다.

키 183cm에 몸무게 92kg의 탄탄한 체격을 가진 임성재는 리듬감을 앞세우기 때문에 장타력보다는 정확성에 포인트를 맞추는 ‘리듬스윙’을 한다. 이를 위해 그가 집중하는 것이 있다. 바로 스탠스다. 어드레스가 잘돼야 스윙이 제대로 이뤄진다는 스윙 철학을 갖고 있다. 샷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어드레스 때 발의 위치라는 것이다. 스탠스만 잘 잡아도 정확한 샷을 구사할 수 있는데, 그의 스탠스는 ‘스퀘어 스탠스’다. 양발을 목표 방향과 일직선으로 잡는다. 오픈이나 클로즈 스탠스를 하지 않는다. 이는 항상 일정하다.

또 특이한 점이 있다. 어드레스에서 테이크 백으로 클럽을 가져갈 때 무척 느리면서도 부드럽게 가져간다.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 이와 달리 톱스윙에서 다운스윙, 그리고 임팩트, 폴로스루는 무척 빠르게 움직인다. 스윙 시간이 2초 정도다. 백스윙과 피니시는 업라이트한 편이다. 교과서 같은 스윙이 아니라 자신의 체형에 맞는 스윙을 한다는 얘기다. 몸통 스윙을 하면서 스윙이 좀 더 간결해지고, 테이크 백을 천천히 하면서 샷의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 100야드 이내에서의 웨지샷이 강점인데 양팔과 어깨를 삼각형으로 유지하는 것이 비결이다. 임성재는 “샷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손과 몸이 하나가 되도록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3월1일 PGA 혼다 클래식에서 생애 첫 우승한 임성재가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모와 함께 떠돌이 생활…“우승하면 미국에 집부터 살 것”

임성재는 미국에서 부모와 함께 떠돌이(?) 생활을 했다. 대회가 열리는 인근 호텔이 곧 집이자 안식처다. 아버지 임지택(55)씨와 어머니 김미(53)씨가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미국에 집이 없다. 이동할 때는 비행기보다 차를 이용했다. 짐이 많은 탓이다. 부친 임씨는 1000km 정도 거리까지는 직접 차를 운전한다고 했다. 오죽했으면 임성재가 PGA투어 챔피언십 2라운드까지 선두권에 오르면서 대회 보너스가 1500만 달러(약 165억8100만원)에 이르자 인터뷰에서 “우승하면 먼저 미국에서 집을 사겠다”고 말했을까.

2019~20 시즌에 35개 대회를 소화하자 외신은 임성재에 대해 ‘PGA 투어 신인의 마라톤’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는가 하면 ‘배가본드의 리더’라는 표현까지 썼다. PGA투어 커미셔너 제이 모나한(미국)은 그를 ‘아이언맨’이라고 지칭하며 “그가 보낸 시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다“고 평했다.

임성재는 삼겹살을 유독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부모가 하는 일 중 한 가지는 대회 장소 인근의 음식점을 찾는 것이다. 무조건 육고기를 잘하는 음식점을 물색해야 한다. 아들의 에너지를 보충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점이 없을 때에 대비해 푸드박스를 준비한다. 한국마트에서 미리 장을 보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됐다.

임성재에게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미국에서 지어준 별명 ‘아이언맨’ 외에 ‘개코’란 별명도 있다. 임성재는 냄새를 잘 맡는다. 특히 골프공 같은 새 물건은 우선 냄새를 맡아 본다. 이게 특이한 버릇이 됐다는 것이다.

 

마스터스 화제가 된 타이거 우즈의 10타 ‘재앙’

디펜딩 챔피언 타이거 우즈가 최종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아멘코너 12번홀(파3·158야드)에서 무려 10타를 쳤다. 7오버파로 ‘셉튜플 보기(Septuple bogey)’를 기록한 것이다. 우즈는 그린 앞쪽 개울에 볼을 세 차례나 빠트리면서 10타 만에 홀아웃했다. 바람을 체크한 우즈는 8번 아이언으로 첫 티샷을 했으나, 볼이 짧아 워터해저드 앞 페어웨이에 낙하한 뒤 둔덕을 넘어 개울에 빠졌다.

드롭존으로 이동해 친 3번째 샷도 그린에 떨어진 뒤 강한 백스핀이 걸려 뒤로 굴러서 다시 물에 퐁당. 같은 자리에서 친 5번째 샷은 그린 뒤 벙커로 들어갔다. 벙커에서 친 6번째 샷이 그린에 떨어진 뒤 굴러서 또 반대쪽 개울에 빠졌다. 다시 1벌타를 추가한 뒤 8타 만에 온그린을 하고 2퍼트로 마무리하며 무려 10타 만에 홀아웃한 것이다.

이 개울은 마스터스 우승자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2번홀 그린 앞과 11번홀 그린 뒤로 흐르는데, 지류가 13번홀 페어웨이의 왼쪽과 그린 앞을 지나간다. 재미교포 케빈 나와 버바 왓슨(미국)은 2013년 마스터스에서 3개의 볼을 이 개울에 빠트리며 역시 셉튜플 보기를 범했고, 1980년 톰 바이스코프(미국)는 볼 5개를 빠트리며 무려 13타를 기록한 악명 높은 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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