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번스 매각, 프로야구 ‘신세계’는 열릴까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31 12:00
  • 호수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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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 마케팅의 새로운 돌파구 기대
“성적 뒷받침돼야” 의견도

프로야구 21년 역사의 SK 와이번스가 팔린다. 인천 야구의 새 주인은 이제 신세계그룹이 된다. 매각대금은 1325억8000만원. 신세계그룹은 몇 년 전부터 야구단 인수에 관심을 보여왔다. KBO를 방문해 야구단 매각대금 등을 문의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모그룹이 현금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두산 베어스, 모그룹이 아예 없는 서울 히어로즈가 매물이 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결과적으로는 SK그룹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SK의 야구단 매각 충격파는 상상 이상이다. 지금껏 기업 간 야구단 매각이 대부분 모그룹의 재정난을 이유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SK 야구단 내부에서 매각 진행 상황을 아예 몰랐던 이유다. SK 와이번스는 모그룹 재정이 튼실한 상황. ‘왜?’라는 의문이 들기 충분하다.

2018년 11월12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SK 와이번스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2018년 11월12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SK 와이번스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8번째 프로야구단 매각, 그 중심엔 인천이… 

1982년 출범한 국내 프로야구에서 구단이 매각·인수된 사례는 앞서 7차례 있었다. 그 중심에는 인천이 있었다. 프로야구사에서 처음 매각됐던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연고지도 인천이었다. 슈퍼스타즈는 프로 원년 1할대 승률(0.188), 18연패(1985년) 등 굴욕적 성적을 남기면서 모기업 재정난으로 1985년 청보식품에 팔렸다. 매각대금은 70억원. 청보 핀토스 또한 모그룹 풍한그룹이 파산하면서 1987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청보 핀토스를 50억원에 인수했던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은 1995년 9월 현대그룹에 태평양 돌핀스 구단을 팔았다. 매각대금은 470억원으로 당시 역대 최고액이었다. 당시 굴지의 대기업이었던 현대가 인수하면서 수시로 주인이 바뀌는 인천 야구의 비극은 끝날 것처럼 보였다. 실제 현대 유니콘스는 단기간 내 한국시리즈 4차례 우승 등의 성과를 냈으나, 정몽헌 회장의 비극적 선택과 현대그룹 재편 등과 맞물리면서 2007년 또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STX, KT, 농협 등과 협상했으나 실패하며 현대 유니콘스는 공식 해체됐고 이후 이장석 대표를 앞세운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구단을 물려받았다. 매각대금 없이 가입금만 KBO(한국야구위원회)에 120억원을 냈고 야구단 명칭은 서울 히어로즈가 됐다. 네이밍 스폰서로 운영되는 히어로즈는 우리 히어로즈에서 넥센 히어로즈로, 지금은 키움 히어로즈가 돼 있다.

인천 연고팀 외에 구단이 매각된 사례로는 MBC 청룡과 쌍방울 레이더스, 그리고 해태 타이거즈가 있다. 프로 원년 야구단 창단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MBC는 공공성 문제로 야구단이 1990년 럭키금성그룹에 매각됐다. 인수대금은 130억원 수준이었다. 쌍방울 레이더스나 해태 타이거즈는 IMF 영향으로 모그룹 재정 상황이 안 좋아지며 각각 SK(2000년)와 KIA(2001년)에 매각됐다. SK는 당시 선수단 인수를 조건으로 쌍방울에 70억원, 현대에 인천 연고지를 양도받는 조건으로 54억원, KBO에 가입금 46억원을 각각 냈다. 

한국시리즈 9차례 우승의 명문 구단 해태 타이거즈는 해태제과의 자금난으로 2001년 8월 기아자동차에 210억원(가입금 30억원 포함)에 팔렸다. 기아자동차는 명문 클럽 역사를 남기기 위해 ‘타이거즈’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창단 비용으로 250억원이 들었던 SK는 1325억8000만원에 야구단을 되팔았다. 숫자로 보면 ‘남는 장사’지만 계산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21년 동안 프로야구단 운영을 위해 매해 200억원 안팎의 돈을 추가로 썼던 것을 고려해야만 한다. 얼추 4000억원 이상을 쏟아부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프로야구단이 ‘돈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이유다.

 

1000억원대로 뛰어오른 야구단 가치 

물론 상황이 점점 나아지고는 있다. SK가 처음 야구와 인연을 맺은 2000년 프로야구 시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리그 총 관중은 250만 명 남짓이었다. 스포츠 마케팅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 등 국제대회 성적이 국내 야구 붐으로 이어지면서 프로야구 총 관중(정규리그 기준)은 2008년 500만 명, 2016년 800만 명을 넘어섰다. 리그 총 관중 수입은 이제 900억원 안팎에 이른다. 서울 연고의 두산과 LG는 2019년 관중 수입으로만 13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SK 또한 94억원을 벌었다.  

중계권 수입도 상당하다. KBO는 지난해 지상파 3사와 4년간 2160억원(연평균 540억원)에 중계권 계약을 했다. 2019년에는 통신·포털 컨소시엄과 5년 총 1100억원(연평균 220억원) 규모로 계약했다. 중계권으로만 연평균 760억원을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2000년과 비교해 야구단 가치가 많이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선수 연봉 상승 등의 이유로 야구단에는 여전히 연간 150억~200억원에 달하는 모그룹 현금 지원이 필요하다.

사실 SK의 쌍방울 야구단 인수도 그룹의 자발적 의지는 아니었다. 당시 정권이 야구단 인수를 반강제적으로 종용했던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은 정용진 부회장이 강한 의욕을 보이면서 자발적으로 야구단을 사들였다. 목적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은 최근 스타필드 같은 복합쇼핑몰 사업에 투자하면서 사세를 확장해 왔다. 돔구장과 호텔, 쇼핑센터 그리고 놀이공원이 결합한 일본 도쿄 돔구장을 떠올리면 신세계그룹의 지향점이 잘 드러난다. 실제로 신세계그룹은 돔구장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상태다. 신세계그룹의 이러한 적극적인 행보는 긍정적 시그널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프로스포츠 마케팅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팀당 연간 144경기를 치르는 프로야구는 마케팅 효과가 타 스포츠에 비해 크다. 실제로 럭키금성은 1990년 야구단 인수와 함께 처음 LG라는 그룹명을 썼고, 이는 LG의 신바람 야구와 맞물리며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넥센타이어 또한 히어로즈에 네이밍 마케팅을 하면서 넥센타이어 기업명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SK를 인수한 신세계그룹도 야구단을 통한 마케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 마케팅은 나름 성적이 좋았을 때 더 빛을 본다. SK가 한때 ‘스포테인먼트’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팀이 거듭 리그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성적이 나야만 팬들이 몰리고 팬들이 몰려야만 제대로 된 마케팅 효과가 나온다. 그리고 성적을 내는 데는 적정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해 9위 팀(SK)의 전력 보강은 2루수 최주환 정도다. 삐에로 쇼핑, 부츠 등을 단기간에 접었던 유통 그룹이 과연 연간 200억원 안팎을 쓰면서 팀 성적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부푼 희망을 품었으나 동시에 물음표도 떠안고 있는 신세계 야구단은 오는 3월에 정식 출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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