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재난지원금 안 주나” 전남의 ‘가난한 지자체’ 한숨
  • 정성환·박칠석·이경재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2.03 16: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너도나도’ 재난지원금 지급, 벌써 전남 시·군 11곳 동참
재정자립도 한자릿수 가난한 전남 지자체들, 지급 경쟁 주목
재난지원금 푸는 속내는…구휼행정인가, 단체장 포퓰리즘인가

정부와 별개로 절반이 넘는 전남 지자체들이 전 주민을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보편적지원금) 지급에 나서면서 지자체간 양극화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해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주민들은 지자체장의 ‘무능’ 탓으로 화살을 돌리면서 가난한 지자체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전남 22개 기초지자체 중 11곳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명분으로 곳간을 열고 있다. 이들 지자체들은 설 명절을 맞아 사용할 수 있도록 연휴 이전에 재난지원금을 줄 계획이다. 하지만 지자체에 따라 받지 못하는 주민도 있어 차별 논란이 있다. 재정 자립도 10% 이내의 전남 기초지자체는 재난지원금 지급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왜 안줘?”…“지자체장 무능” 화살

이처럼 재난지원금 지급 유행이 전남 도내 전역으로 번지면서 불똥은 가난한 지자체로 튀고 있다. 지급 계획이 없는 지자체들은 “우리는 재난지원금을 안주냐”는 주민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역 내에 산단 등이 있어 재정이 넉넉한 일부 지자체들이 일제히 재정 지원금 지급에 나서는 모습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초유의 재난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 구제를 위한 선한 구휼 행정이냐, 아니면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둔 선출직 지자체장의 포퓰리즘 선심행정이냐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나머지 미지급 지자체장들이 끝까지 ‘표의 압력’을 이겨낼지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관광객 발길이 끊겨 썰렁한 전남 화순 온천관광지구 ⓒ시사저널 정성환
관광객 발길이 끊겨 썰렁한 전남 화순 온천관광지구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22개 시군 중 11곳서 설 전 지급

3일 전남도에 따르면 재난지원금 지급 대열에 전남 시·군 11곳이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이미 별도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광양시와 화순군을 포함하면 지자체는 13곳이다. 전남 22개 시·군 중 절반이 넘는 지지체가 재난지원금 지급에 나선 셈이다.

전남 시·군 중 시 단위 순천, 여수, 목포, 나주 순으로 총 4곳이 재난지원금 지급을 선언했다. 군 단위는 해남군을 시작으로 영암, 고흥, 장성, 구례, 강진, 완도 등 7곳 포함, 총 11곳이다. 지급 시기는 목포와 강진 등 9개 시·군이 설 이전 지급을 추진 중인 가운데 지급 결정이 늦은 나주시와 완도군은 3월 내 지급을 검토 중이다. 또 광양시와 화순군은 지난해 전 주민에게 지급을 완료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25일부터 순천시가 1인당 1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전 시민에게 지급하기로 하고 현재 접수 중이다. 여기에 여수시와 목포시도 행렬에 가세했다. 이어 해남·영암·고흥·장성·강진·구례군 등도 앞 다퉈 자체 재원을 마련해 재난지원금을 전달하기로 했다. 지난해 전남에서는 최초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던 광양시는 2차 재난지원금을 검토하고 있다. 
 

엇갈린 시선…“지급 공감” vs “가난한 전남에서”

지자체의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장기화라는 초유의 재난상황에서 비록 10만원 안팎의 지원금이지만 주민들의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게 이들 지자체의 지급 배경이다. 겯들여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 등 명분도 내세웠다. 

반면에 선심성 예산 난발로 인한 재정파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독 전국 광역시도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다시 말해 가장 '가난한' 전남에서 앞다퉈 재난지원금 지급에 나서면서다. 또한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다가왔다는 점에서 선출직 지자체장의 정치적 포퓰리즘 논란도 일고 있다. 재선 또는 3선을 준비하는 현직 단체장으로서는 전 주민 재난지원금 지원이 정치적으로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만큼 곱지 않은 시선이 지배적이다.  

또한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 간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곡성 군민 이 아무개(48)씨는 “여수시민과 순천시민이 부럽다. 여수시의 경우 4인 가구에 100만 원을 준다는데, 곡성군민은 한 푼도 못 받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같은 전남도민들 사이에서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니 화난다”고 말했다.

지원 금액을 둘러싼 불만도 높다. 전남 도내에선 여수시가 1인당 25만원으로 가장 많다. 총 소요액은 720억원 규모다. 화순군은 20만원, 목포시를 비롯한 다른 9개 지자체는 10만원이다. 목포시와 순천시 등 경쟁도시에는 “왜 우리 지역은 여수시보다 못하느냐”는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권오봉 전남 여수시장이 1월 18일 오후 시청 영상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시민 1인당 25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여수시
권오봉 전남 여수시장이 1월 18일 오후 시청 영상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시민 1인당 25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여수시

지급 지자체의 변(辯)...“고통받는 주민 경제생활에 도움” 

재난지원금 지급에 나선 지자체들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주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된 데 따른 불가피한 위민행정이라는 입장이다. 권오봉 여수시장은 재난지원금 지급결정 배경에 대해 “앞으로 2월이면 백신이 공급되고 3~4월이면 관광이 재개돼 소비와 투자 등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바로 그 기간까지가 시민들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순천시도 지난 8월 1차 유행과 연말 2차 유행 등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의 고통이 심화되고 지역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되자 지원금 추가 지원을 결정했다.

많은 지역민들 또한 정부의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경제활성화 효과를 근거로 지급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단체장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며 “생색을 낼 수 있는 사업에만 예산을 쓰지 말고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주민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민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나주의 한 시민은 “행정기관이 영업을 제한하면서 많은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봤다. 이들을 돕는 방법으로 재난지원금 지급이 가장 효과적이다”며 “이런 지원은 시기가 제일 중요한데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주장했다.

 

미지급 지자체의 변(辯)...“선심성 예산 난발로 재정파탄 우려”

반대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먼저 인기 영합성 예산 난발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남 한 지자체 관계자는 “어느 단체장이 주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안 주고 싶겠느냐”면서 “단순히 눈앞의 인기보다는 전체 살림을 꾸려가는 단체장의 고충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재정 파탄의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지난해 정부의 재정지원금 지원이 늘면서 올해 지자체에 내려주는 교부금이 상당수가 삭감됐다”면서 “재정긴축 상황에서 무리하게 재정지원금 지급에 나설 경우 현안사업 또는 재난긴급복구 등의 시급한 예산까지 탕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공짜로 돈을 받는 데 길들여지면 받는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터질 때마다 늘 지자체의 현금 지원을 기다리게 된다. 재원에 한계가 있는 지자체는 점점 지쳐간다”며 “이런 사태가 이어진다면 가난한 지자체는 빚더미에 올라앉고 재정은 엉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공짜의 역설’을 염두에 둔 얘기다.

지역정치권에선 주민들의 재난지원금 지급 요구 등이 잇따를 경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지자체들이 이를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울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시·군의 주민들이 지자체장의 ‘무능’을 탓한다면 가난한 지자체의 단체장도 너도나도 선거를 의식해서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칫 재난지원금의 순수한 취지가 퇴색된 채 1년 앞으로 다가 온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포석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내년 6월 지자체장 선거 염두 선심성 논란

지역사회에선 이제 지급하느냐, 마느냐는 이미 지난 얘기가 됐고, ‘언제’로 넘어간 분위기다. 완도군 등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기준 재정자립도 6.3%로 전남지역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낮은 완도군은 지난달 중순까지 만해도 재정형편상 재난지원금 지급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군민 당 10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경우 50억원 정도가 필요해 군 재정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도군 또한 군민 압박(?)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3월 내 지급을 검토 중이다. 뒤늦게 동참한 나주시도 비슷한 곡절을 겪었다. 신안군은 2월 중순 예정된 제1회 추경 때 재난지원금 예산을 세울지 여부를 고민 중이다. 광주 5개 자치구도 차기 구청장협의회에서 안건 외 사안으로 재난지원금 지급 여부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전남 22개 시군의 지난해 재정자립도 평균은 14.1%로 이 가운데 5개 시 지역은 22.1%, 나머지 17개 군지역의 평균은 9.5%에 불과하다. 특히 재난지원금 지급을 확정한 전남 7개 군지역의 재정자립도는 영암 13%, 장성 11.8%, 강진 7.8%, 해남 7.4%, 구례 7.3%, 고흥 7.1%, 완도 6.3%다. 대부분 한자릿수 재정자립도에 머무는 상황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재난지원금을 마련하는 데 상당한 재정적 부담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지방행정 전문가들 사이에선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지만 재정자립도가 현저히 낮은 지자체의 재정을 고려한 선택인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더불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못한 지자체와 해당 주민들에게 박탈감만 심어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전남의 한 대학교수는 “코로나19 사태는 어느 한 지자체만의 상황만이 아닌 전남 전 지역, 전국적 문제”라며 “전남도와 기초단체가 함께 소통해 지원 방향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결국 재난지원금 지원은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가 문제가 남는다. 왼쪽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서 오른쪽 호주머니로 옮기는 꼴이다”고 뼈있는 말을 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