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 계약서 받아든 양현종의 ‘믿는 구석’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0 16:00
  • 호수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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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와 MLB 스플릿 계약…현지 언론 “개막 로스터 포함될 확률 높아”

14년간 KIA 타이거즈 에이스로 활약했던 양현종(33)이 새로운 둥지를 찾았다. 바다 건너 미국 프로야구로 간다. 텍사스 레인저스. 박찬호부터 추신수까지 몸담았던 팀이라 국내 팬들에게도 꽤 익숙하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데뷔가 보장된 계약이 아니다. 양현종보다 1년 앞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동갑내기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과는 다른 신분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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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제외하곤 스플릿 계약 대부분 실패

양현종은 스플릿 계약을 했다. 말 그대로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소속일 때 처우가 다르다는 뜻이다. 양현종은 메이저리그 입성 때는 연봉 130만 달러(약 14억원)에 추가 인센티브로 55만 달러(약 6억7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최대 185만 달러의 계약이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만 머물 경우에는 연봉이 확 줄어든다. 양현종 측은 “일반적인 마이너리그 계약 수준”이라고 했다.

마이너리그 트리플A 기준으로 주급은 올해부터 502~700달러(약 55만3000원~77만1000원) 수준으로 책정돼 있다. 시즌 다섯 달 정도만 월급이 나오고 스프링캠프 기간이나 비시즌에는 월급이 하나도 안 나온다. 괜히 “눈물 젖은 빵”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다. 물론 양현종은 이 수준까지는 아니다. 양현종 측은 “평균보다는 높다. 트리플A 베테랑 선수가 받는 정도”라고 했다. 40인 로스터가 보장되지 않았기에 양현종의 현재 신분은 스프링캠프에 초청받은 마이너리거다.

메이저리그는 스플릿 계약을 한 선수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편이다. 예비 ‘보험용’ 성격이 짙다. 빅리그 입성이 만만치 않은 셈이다. 양현종처럼 스플릿 계약을 했던 KBO리그 출신 선수는 몇 명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로는 현재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약 중인 이대호(39)가 꼽힌다. 이대호는 2015년 말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거쳐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할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와 스플릿 계약을 했다. 스프링캠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면서 극적으로 개막 로스터에 포함됐다. 이후 104경기에 출전해 타율 0.253 14홈런 49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황재균(현 kt 위즈) 또한 스플릿 계약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2017년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성적은 18경기 출전, 타율 0.154 1홈런 5타점이 전부였다. 투수로서는 임창용(은퇴)이 스플릿 계약을 했었다. 그는 삼성 라이온즈를 거쳐 일본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다가 2013년 시카고 컵스와 1+1 스플릿 계약을 하고 바다를 건넜다. 하지만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9월 확대 엔트리 때야 겨우 빅리그 데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이들과 달리 류현진·강정호·박병호·김현수·김광현 등은 메이저리그 보장 계약이었다. 올 시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계약한 김하성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마이너리그 강등 거부권이 있었다. 마이너리그에만 머물다가 돌아온 양현종의 팀 선배 윤석민(은퇴)은 다년 계약이었으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참고로 2003년 ‘국민타자’ 이승엽(은퇴)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렸으나 스플릿 계약 제의가 들어오자 거부하고 일본리그로 진로를 틀었다.

국내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텍사스가 양현종에게는 최상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텍사스 선발 로테이션은 다른 구단들과 비교해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은 편이다. 카일 깁슨, 아리하라 고헤이, 데인 더닝 등이 텍사스 선발진 물망에 오르는데 전부 우완 투수다. 콜비 알리드와 웨스 벤야민 등 좌완 투수가 있으나 경험치나 기록 면에서 양현종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투수층이 젊은 편이라 경험 많은 투수가 필요한 면도 있다.

더군다나 텍사스는 올해 6인 선발 로테이션 또는 선발 둘을 특정일에 동시 출격시키는 ‘1+1 전략’ 등을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지난해에 단축 시즌(60경기)으로 치러지면서 투수들의 내구성도 물음표로 남은 상황이다. 2020 시즌 텍사스 선발진 중 양현종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했던 투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양현종은 지난해 한국에서 172와 3분의 1이닝(11승10패 평균자책점 4.70)을 투구하는 등 2014년부터 꾸준하게 매 시즌 170이닝 이상을 던져왔다.

 

“투수층 뎁스 약한 텍사스, 양현종에겐 최고의 선택” 

현지 언론이 양현종에게 호의적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텍사스 지역 신문인 ‘댈러스 모닝뉴스’는 양현종이 스프링캠프 경쟁을 뚫고 메이저리그 개막 로스터에 포함될 확률이 높다고 전망한다. 텍사스 구단 스프링캠프(2월18일부터 시작)에 초청된 16명의 투수에 대해 평가했는데, 양현종에게만 가장 높은 ‘good(좋은)’ 등급을 매겼다. 스프링캠프 연습경기 등에서 KBO리그 때의 기량을 선보인다면 메이저리그 등판 기회는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 스포츠 통계 사이트인 ‘팬그래프닷컴’은 양현종이 텍사스 선발진에 구멍이 났을 때 마이너리그에서 콜업될 것으로 예상한다. 양현종의 잠재적 기대 성적은 47이닝 투구, 9이닝당 탈삼진 8.9개, 9이닝당 볼넷 2.9개 등이다. ‘47이닝’은 풀타임 선발이 아닌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는 임시 선발 가능성을 고려한 셈법에 따른 이닝 계산이다. 스플릿 계약이 그렇다. 불안전한 신분인 셈이다. 물론 기회가 왔을 때 빼어난 성적을 보인다면 붙박이 선발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양현종은 이번 스프링캠프에 ‘올인’해야만 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마이너리그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마이너리그 재개를 장담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향후 어찌 될지는 알 수가 없다. 만약 스프링캠프 경쟁에서 탈락한다면 양현종은 ‘닭 쫓던 개’처럼 리그 밖에서 1년을 그냥 허비할 수도 있다. 팀의 특별관리를 받을 수도 있겠으나 나이 등을 고려할 때 빅리그 데뷔는 점점 멀어진다고 봐야 한다.

‘배수의 진’을 치고 마이너리그 계약서를 받아든 양현종. 국내 좌완 트로이카 3인방 모두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한 가운데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 김광현에 이어 그도 빅리그 부름을 받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전적으로 그의 왼쪽 어깨에 달려 있다. 안정된 길을 보장한 KIA의 손길을 뿌리치고 꿈을 향해 손을 뻗은 이는 양현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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