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론》 저자 “신동빈 롯데 회장, 취재하고 싶다”
  • 천영준 시사저널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2 13:00
  • 호수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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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를 만든 남자 신격호론 분석] ⑤
《신격호론》 저자 마쓰자키 다카시 인터뷰 “신격호란 인물 실상을 정확히 전달하고 싶었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말년에 휘말린 격랑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언론의 보도와 분석이 있다. 2015년은 그에게 최악의 해였다. 일본롯데그룹의 회장직에서 사실상 해임되었기 때문이다. 가독상속 분쟁은 2014년 10월 신격호가 장남 신동주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해임하라”고 롯데홀딩스 직원 앞에서 발언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12월19일 신동주는 롯데의 모든 공식 보직에서 물러났고, 같은 달 26일 이사회에서 안건이 승인됐다. 원인은 신동주가 주도한 신규사업에서 수억 엔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2016년 2월3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성년후견 개시 심판 청구’ 첫 심리에 참석하기 위해 서초구 서울가정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신격호의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에게도 관련 메모가 전달됐다고 한다. “히로유키(신동주의 일본명) 부회장이 사임을 받아들이도록 여사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 7월 ‘허위보고’라는 내부 지적이 나오면서 신격호는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2015년 7월27일 신동주를 동반하고 방일한 신격호는 롯데홀딩스 본사에서 “현재 임원들을 해임하고 새로운 집행임원 4명을 임명할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관련 내용은 사내 인트라넷에도 게시되었고, 저녁에는 사원식당에 300명의 직원이 모여 신격호의 담화를 경청했다. “현직 임원 6명을 모두 보직 해임하고, 신동주를 중심으로 한 신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었다. 다음 날 신격호는 셔터를 내리고 진행된 롯데홀딩스 본사 이사회에서 “회장직에서 해임하고, 대표권이 없는 명예회장으로 추대”한다는 거취를 통보받았다. 8월17일에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임원으로서의 권한을 사실상 해제당했다. 당사자는 즉시 이사회 결의의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2015년 11월에는 “나를 쫓아내려는 임원의 책모”라는 요지로 슈칸뷴슌(문예춘추사의 주간지)에 입장이 게재되었다.

2011년 5월1일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가운데)이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고향 마을잔치에 참석,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신격호 “롯데는 단 한 번도 구조조정한 적이 없다”

2017년 6월,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격호는 이사직 해임 통보를 받았다. 1948년 6월28일 10명의 사원으로 주식회사 롯데를 만든 이래 70년째 되던 해에 생긴 일이었다. 이미 같은 달 6월에 ‘사단법인 선’이 신격호의 한정후견인으로 선정되었다.

말년에 닥친 후계 분쟁, 지난해 초 신격호가 별세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형제간의 갈등 등은 어찌 보면 롯데 제국의 어두운 면(暗)일 것이다. 창업자 본인은 평생 동안 롯데그룹 전체의 아버지를 자처했던 사람이다. 자랑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그가 유일하게 타인에게 내세웠던 실적이 “롯데는 단 한 번도 구조조정을 단행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유통업 경기가 나빠지면서 롯데쇼핑이 인력 슬림화를 단행한 바는 있다. 하지만 신격호 생전에는 “20만 롯데 직원들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방침이 줄곧 유지됐다.

일본에서는 창업 15년 만에 모리나가·메이지 등과 동일한 퇴직금 지급률 수준을 보였고, 이후에는 두 회사보다 7할이 늘어난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신격호는 ‘권한에 동반되는 책임을 자각하는’ 경영자였다. 가족적 경영을 사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인원 정리라는 말을 단 한 번도 거론한 적이 없었다. 이토록 사람의 일에 밝은 경영자가 자신의 후계자들과 관련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내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불완전성 탓일까. 아니면 그 역시도 ‘리어왕’(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 딸들에게 쫓겨나는 왕의 이야기)이었던 것일까.

하지만 신격호가 경험했던 어두운 역사가 있다고 해서 그의 찬란한 업적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 인간이 겪어내야 했던 다양한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롯데 제국 창업자의 시대적 의미를 반추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필자는 《신격호론》의 저자인 마쓰자키 다카시 저널리스트와 직접 통화와 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16년 5월16일 서울 소공동 그룹 본사로 출근해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롯데그룹 창업자 신격호 총괄회장은 이날 정신감정을 받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한다. 신 총괄회장 측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선 면회 금지를 법원에 요청했다.ⓒ연합뉴스

“신격호는 일본 유명 창업자들의 장점 종합한 천재 경영자”

일본에서 롯데는 어떤 이미지인가. 《신격호론》을 집필하게 된 동기와 함께 롯데에 대한 일본 국민의 평가를 밝히자면.

“일본을 대표하는 종합 과자 메이커로서 ‘입안의 연인 롯데’라는 말을 모르는 일본 국민은 없다. 롯데 마린스라는 프로야구단도 전 국민적 인식에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작 신격호 회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란기에 회사를 만들고, 일대(一代)에 매출 10조 엔 규모의 기업을 창업한 인물은 일본에서는 신격호 이외에 없다. 경제 저널리스트인 내 입장에선 신격호 회장이 어떤 생각을 갖고 롯데를 키워갔는가에 대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신격호 회장 일가를 매우 상세하게 취재한 것 같다. 주로 어떤 사람들과 소통했는가. 그들이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해 준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신격호 회장 형제와 가족, 그리고 롯데의 성장에 공헌한 측근들을 중심으로 직접 취재했다. 신동주 SDJ 코퍼레이션 회장 측은 직접 연락이 닿아서 입장을 들었고, 신동빈 롯데 회장의 경우에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다이아몬드 출판사와 진행하고 있는 ‘신격호론’ 프로젝트는 어디까지나 위대한 경영자의 삶에 대해 중립적으로 취재하는 일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고령이었고, 순간의 기회를 놓치면 더 증언이 어려운 사람도 많았다. 모두 같은 시기에 고생을 했던 사람들이고, 롯데라는 기업을 키우고 또 자신들을 키워줬던 신격호라는 인물의 실상을 확실히 전달하고 역사에 남기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현재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는 (재무적 연결 측면에서) 별개의 길을 가려는 듯 보인다. 그런데 롯데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본에서 벌어들인 부(富)를 담보로 한 것뿐만 아니라 노하우나 네트워크까지 한국에 이전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별개의 길을 간다는 시각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재무적인 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한·일 롯데 모두 각자 최선의 선택을 하면 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아마도 이 질문은 모든 사람이 민감하게 여기는 화제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롯데는 한국 기업인가, 아니면 일본 기업인가’와 관련된 논쟁인 것이다. 롯데그룹은 자본 구성만 놓고 보면 한국 롯데그룹이 순환출자를 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결국에는 호텔롯데가 지주회사와 같은 역할을 맡고, 그 호텔롯데의 주식 대부분을 일본에 본사를 둔 롯데홀딩스와 신격호 가문의 자산관리회사, 일본 롯데 관련 기업이 소유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롯데의 이익을 일본에 송금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 기업을 시작해, 자본력과 신용력을 축적한 뒤 그 자금으로 한국에 진출했기 때문에 롯데의 소유 구조도 (지금의 형태처럼)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일본에서 저금리를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해 한국 롯데의 성장에 큰 원동력이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신격호 회장이 일본에서 기업을 하면서 단 한 번도 한국 국적을 포기한 적이 없는 것도 해당 맥락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 일본에서는 ‘시게미쓰 다케오’라는 이름을 계속 썼으면서도, 일본 귀화를 시도한 적이 없다. 당초 현해탄을 건널 때도 일본에서 공부하고 장사를 해서 부를 축적한 뒤, 그 자산을 모국에 공헌하기 위해 사용할 목적이었다고 본다. 박정희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기존에 전혀 경험이 없던 호텔 사업이나 백화점 사업에 진출한 것도 결국 나라 사랑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피폐한 조국의 부흥을 위해 패전 이후 20년 만에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된 일본의 기술이나 서비스를 활용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신격호 회장이 한·일 국교 정상화와 관련된 역할을 했던 내막을 매우 상세히 밝혔다. 책에서 언급된 내용 이외의 활동에 대해 밝힐 만한 사실도 있는가.

“신격호 회장은 한·일 양국에 넓은 인맥을 갖고 있고, 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일 국교 정상화에 진력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사람을 소개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조약 조인 때는 축하 차원에서 대통령 관저에 냉난방 설비를 기증한 적도 있다. 초대 주일대사가 도쿄에 부임할 당시 가루이자와의 (신 회장) 별장을 제공한 적도 있는 듯하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티 나게 정치에 관여하는 일은 삼갔을 것이다. 가령 특정 정권에 밀착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효용이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큰 리스크를 떠안는 셈이 된다.”

민간 차원에서 신격호 회장이 애쓴 사례들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 한국 정부가 민단에 자금 원조를 요청한 적이 있다. 당시 민단 단장에 의하면 한국에서 문화체육부 장관이 나섰다고 한다. 이때 민단에서는 10억 엔가량 성금이 모아지면 다행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100억 엔이 모였고, 가장 많이 기부한 인물이 신격호 회장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혼자서 3억7000만 엔가량을 냈다. 올림픽 이후에는 수십억 엔가량이 남아 한국 정부에서 ‘민단이 이 자금을 회수해 가실 생각은 없는가’라고 문의하자 신 회장 등은 ‘조국을 위해 모은 돈이므로 다른 용처에 잘 써주시면 좋겠다’며 거절했다는 미담이 있다. 이와 별개로 고향인 울산 모교에 매년 롯데 재단이 기부를 하고 있고, 아이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경영철학 면에서 신격호 회장과 비교할 만한 일본의 경영자를 소개해 줄 수 있는가.

“신 회장의 어떤 측면을 소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판단한다. 가령 일본에서 성공한 종합 과자 사업은 기존 유통 구조에 없는 새로운 조직 방식을 통해 광고 전략을 구사해 지명도를 확대한 것이 큰 성공 요인이다. 신 회장이 유통 혁명의 기수라는 점에서는 다이에의 창업자인 나카우치 아키라(中內功)와 비견할 만하고, 광고로 지명도를 극대화하는 측면에서는 산토리의 중흥조(中興祖)로 평가받는 사지 게이조(佐治敬三)와 비견할 만하다. 또 한국에서 호텔·백화점·엔터테인먼트 시설 등을 융합한 관광유통사업을 성공시켜 독자적 분야를 개척한 부분은 부동산 투자를 통해 가능했기에 세이부그룹의 창업자인 쓰쓰미 야스지로(堤康次郞)의 부동산 기반 융합 전략과 비견할 만하다. 또 종업원이나 소비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심경영’은 마쓰시타의 창업자이자 ‘경영의 신’으로 평가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와 닮았다. 해외에서 사업을 성공시킨 뒤 노하우와 자산을 이용해 모국을 발전시킨 점에서는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를 신 회장과 비견할 만하다.”

책에서 신 회장을 상당히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 이 취재를 시작하면서 신격호 창업주와 가장 공통점이 있다고 평가한 인물은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1840~1931, 2024년부터 새로 발행되는 1만 엔권 지폐의 주인공)다. 그는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세에서 근대로 바뀌는 과정에서 500개 회사를 설립해 산업의 기반을 구축한 인물이다. 또 사고방식에 있어서는 ‘도덕경제 합일설’을 제창해 유교 사상의 정수인 논어에 바탕을 둔 기업 경영 원칙을 세우고, 일본 독자적인 자본주의 원칙을 구축한 인물이다. 부를 낳는 근본은 인의도덕이라고 했고, 올바른 도리에 입각한 부라면 영원히 지속할 수 있다고 한 사람이기도 하다. 또 개인의 부는 곧 국가의 부라고도 했다. 개인이 부유해지려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풍성하게 하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주야로 공부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신격호의 생애에도 일관되게 적용된다. 일본에서 성공해 한국에서 사업에 매진한 신 회장은 사리사욕이 아니라 조국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일한 사람이라고 본다.”

신 회장이 2015년에 일본 롯데에서 ‘쫓겨났다’고 적었는데.

“이미 많은 미디어가 보도했다. 일본에서는 유력 주간지 ‘슈칸분슌’이 신 회장 자신의 수기를 발표했다. 그 사실을 그대로 정리했다. 그리고 나 자신도 롯데 일가들을 직접 취재한 결과, 이를 확인했다.”

롯데 측에서 피드백을 받은 것은 없는가.

“전혀 없다. 한·일 롯데 모두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만 롯데와 거래 관계에 있는 거대 유통그룹의 전(前) 최고경영자나 대형 언론의 전임 회장으로부터 격려 편지를 받기는 했다. 신격호 회장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기업을 경영했던 인물이다. ‘고객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최고의 상품을 만든다’ ‘사원을 소중히 한다’와 같은 창업정신을 한·일 롯데 모두가 지켜 나가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고, 지금 이 시점에 기업 관계자들도 마음에 새겨야 할 거라고 본다. 어쩌다 보니 신동주 SDJ 코퍼레이션 회장 측에서는 몇 번 연락을 주긴 했는데, 가능하다면 신동빈 롯데회장도 직접 취재해 보고 싶다. 어디까지나 중립적인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니까.”

지금 한·일 관계가 계속 불안하다. 신격호 회장과 같은 또 다른 인물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비선으로 활약할 필요는 혹시 없을까.

“신격호 회장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뛰던 시기는 국교 정상화가 되지 않았을 시절의 일이다. 양국 간 왕래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국민 개인 수준의 교류도 간단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 회장처럼 양국에 폭넓고 깊은 인맥을 가진 사람이 절실했다. 하지만 이제는 일부의 특별한 인사나 정치인 수준의 활약을 기반으로 정세를 만들기 위해 양국 외교를 추진하는 것은 금방 본질이 탄로 날 것이다. 오히려 정치구도에 흔들리지 않는 민간 수준의 상호 이해가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적·문화적 교류가 가장 중요하다. 일본은 일본 나름대로,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 일방통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본다.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끝나면 또 다른 차원의 민간 교류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마쓰자키 다카시 《신격호론》 저자 프로필

1962년생. 일본 주오대학 법학부 졸업. 경제계 M&A 전문지 편집장을 거쳐 IR 컨설턴트, 외국계 기업 홍보 전문가 등으로 근무했다. 현재 다이아몬드온라인과 ‘신격호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일본 유력 언론인 닛케이비즈니스·슈칸분슌·슈칸겐다이 등에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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