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공포 날릴 친환경 소형원전이 희망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8 11:00
  • 호수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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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전력 수요 충당 위해 미국·영국도 속속 개발

역사적으로 세상을 순식간에 바꿔놓은 순간이 몇 차례 있었다. 그 가운데 제일 최근의 일은 10년 전인 2011년 3월11일 일본에서 발생했던 동일본 대지진일 것이다. 규모 9.1의 유례없는 대지진으로 최고 40m에 이르는 초대형 쓰나미(해저지진)가 400km에 이르는 일본 혼슈(本州) 동해안을 덮쳤다. 대지진은 2만여 명에 이르는 인명 피해와 더불어 25조 엔에 달하는 대규모 재산 피해를 낳았다. 일본 혼슈를 2m 가까이 이동시킬 정도의 큰 위력이었던 대지진의 영향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으며, 눈에 보이는 피해보다 더 큰 영향을 전 세계에 가져왔다.

대규모 쓰나미는 후쿠시마(福島)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를 강타했다. 원자력발전소는 강진과 쓰나미의 직접적인 충격은 견뎌냈지만 외부와 연결되는 전력망이 차단되고 지하 비상발전기까지 침수되면서 원자로를 냉각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이로 인한 노심융해와 폭발이 일어나면서 대규모 방사능 물질을 대기 중에 흩뿌렸다.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 사고와 소련의 체르노빌 참사에 이어 대규모 피해를 가져온 세 번째 원전 사고였으며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은 원전의 위험성을 알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사진은 2017년 2월 후쿠시마현 오쿠마에 위치한도쿄전력 원전의 오염수 저장탱크ⓒEPA 연합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

돌이켜보면 2011년은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변화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전력생산에서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낮추고 원자력 비중을 높이는 방안이 긍정적으로 검토되던 시기였다. 1980년대 체르노빌 사고 이후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원자력발전은 2000년대 들어 기후변화 문제가 주요 과제로 대두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됐다. 온실가스 발생 없이 대규모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은 온실가스 저감과 경제 발전을 위한 전력생산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진행되던 고유가 흐름은 원자력의 장점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인해 순식간에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당사자인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원자력발전의 즉각적인 중단은 물론 원자력발전의 영구적 퇴출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독일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원자력발전은 단계적으로 퇴출되기 시작했으며, 원자력발전소의 신규 건설 및 확대는 불가능해졌다. 온실가스 발생 없는 전력생산이라는 장점보다는 대규모 사고 가능성과 영구적 피해라는 단점이 더욱 부각됐다. 원자력발전의 중단에 따른 추가 전력생산은 본격적으로 증산되기 시작했던 천연가스를 통해 상당 부분 대체됐으며, 원자력 없이도 전력생산엔 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후쿠시마 지역은 10년의 시간이 경과했지만 여전히 당시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자로에 들어 있는 900톤 규모의 폐연료봉 제거는 아직 시작되지 못했으며, 토양오염 방지를 위해 제거된 표토는 아직 외부로 반출되지 못하고 있다. 100만 톤 이상 쌓여 있는 오염수의 경우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저장공간 역시 2022년이면 가득 차게 된다. 일본 정부는 일단 오염물질이 상당 부분 제거된 오염수를 단계적으로 해양에 방류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지역주민 및 국제적인 반대로 인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10년의 시간은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더욱 커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온실가스 발생 없는 원자력의 역할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태양광 및 풍력으로 대표되는 재생 에너지의 발전비용은 급속하게 낮아졌으며, 시설용량 역시 급속히 증가해 표면적으로는 석탄을 비롯한 화석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천연가스발전은 석탄화력발전을 누르고 많은 국가에서 최대 발전원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력에 대한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향후 전기자동차를 비롯한 새로운 전력 수요처가 대거 등장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과연 기존의 방식으로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천연가스 사용량 증가는 다시 온실가스 발생량 증가로 이어지고 있으며, 재생 에너지의 근본적인 약점인 간헐성(間歇性)이 전력망의 안정적 운용을 위협하게 되면서 소규모 면적에서 꾸준히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고, 온실가스 발생도 없는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게 됐다.

미국과 영국은 최근 원자력발전의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풍력의 확대를 통해 대폭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했음에도 향후 예상되는 전력 수요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원자력에 대한 신규 투자 및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대규모 가압형경수로가 아닌 소규모의 SMR(소형모듈원전) 형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원자력 단독으로 큰 역할을 하기보다는 전력망의 안정을 위해 재생 에너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재생 에너지의 생산지와 전력 소비지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를 연결하는 송전망 건설이 쉽게 진행되지 않음에 따라 수요처에 인접한 곳에 쉽게 설치해 전력을 생산하고 필요시에는 이동시킬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원자력발전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2019년 동일본 대지진 8주년을 맞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이 추모 기도를 올리고 있다.ⓒAP연합

“원전 무조건 나쁘다”는 생각부터 바꿔야

우리나라의 경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재생 에너지 보급 확대와 더불어 원자력발전의 단계적 축소 및 해체를 기조로 전력정책을 변화시켜오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방안의 부재,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각종 비리, 사고 위험에 대한 우려 등은 이러한 정책 변화에 타당성을 부여했다. 원자력업계는 극렬하게 반대했으며 점차 원자력과 재생 에너지는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했고,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재생 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은 온실가스 발생 없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상호 보완적 존재라는 점에서 이러한 대립은 모순적이라 할 수 있다.

향후 전력 수요가 대폭적으로 증가할 것임을 인정하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전력생산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천연가스를 이용한 발전의 경우 총 발전량이 일정한 수준일 경우 석탄을 대체해 오염물질 및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지만 발전량이 증가하면 결국 온실가스 발생량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대규모 전력저장은 여전히 실용적이지 못하며, 재생 에너지의 경우 우리의 여건은 국제적으로 볼 때 불리하기 때문에 투자 대비 효율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원자력은 분명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이 과거로의 회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과제는 쉽지 않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환경과 기후, 그리고 산업 경쟁력 및 안전성을 고려한 최선의 대안을 찾아내는 과제는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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