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우승하는지 모르겠지만, 미친 듯이 우승하고 싶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3 14:00
  • 호수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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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KLPGA 9개 대회에서 벌써 다섯 번 우승한 박민지의 괴력

어머니는 아주 혹독했다. 아침 5시30분에 기상해 6시에 밥을 먹고 하루 12시간씩 훈련하는 그의 모습을 옆에서 꼭 지켜봤다. 조금이라도 공이 엇나가면 쓴소리가 나왔다. 어머니 스스로도 “스파르타식”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럴 만했다. 그의 어머니, 김옥화씨(63)는 1984년 LA올림픽 때 은메달을 딴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 주전 골게터였다. 핸드볼팀 훈련 강도는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아주 힘들기로 유명하다. 모든 과정을 이겨낸 박민지(23)도 인터뷰 때마다 “너무 짜증나고 힘들었다”고 툴툴댄다. 그래도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숨기지는 않는다. “부모님이 나에게 청춘을 다 바쳤다”면서 “모든 부모님이 다 그러시나요?”라고 취재진에게 질문을 던진다.  

6월13일 경기도 파주서서울CC에서 열린 여자골프 ‘2021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 파이널 라운드에서 우승한 박민지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 KLPGA 제공
6월13일 경기도 파주 서서울CC에서 열린 여자골프 ‘2021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 파이널 라운드에서 우승한 박민지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 KLPGA 제공

우승이 가시권에 들어오면 무서운 집중력 발휘

2021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박민지’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2017년 투어 데뷔 뒤 해마다 1승만 하던 징크스를 올해는 깨고자 했던 그였지만, 이번 시즌에는 벌써 메이저대회인 한국오픈을 포함해 5승이나 거뒀다. 9개 대회에 참가해 5승을 챙겼으니 승률이 무려 55.6%에 이른다.

박민지는 7월1일 현재 시즌 최다승을 비롯해 상금(9억4804만원) 1위도 질주 중이다. 맥콜 모나파크 오픈(7월 2~4일·용평 버치힐)을 포함해 올해 남은 대회는 19개. 2007년 신지애가 기록한 한 시즌 최다승(9승)을 넘어 두 자릿수 우승까지 할 기세다. 2016년 박성현이 세운 한 시즌 최고 상금 기록(13억3309만원) 또한 사정권에 뒀다. 박민지는 “(다승 및 최다 상금) 기록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설레었다. 특히 신지애 프로님의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에 가까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신지애 다음의 투어 최다승은 2016 시즌 박성현(7승)이 갖고 있다.

우승탑을 쌓고 있지만 스스로도 이유는 잘 모르는 눈치다. “왜 자꾸 우승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 한다. 물론 우승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폭포수만큼, 미친 듯이 우승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우승 상금을 차곡차곡 모아 “부모님 노후를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정작 상금을 받고 어머니께 선물을 사드렸을 때는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며 타박을 듣기는 했지만 말이다.

‘괴물 박민지’의 탄생은 근력운동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국외 훈련을 나가지 못하면서 국내에서 체력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예전보다 근력 강화에 집중하면서 고질적인 허리 통증도 차츰 가라앉았다. 훈련량 때문에 겨우내 근육통을 앓았지만 덕분에 체력은 여느 때보다 더 튼튼해졌다. 박민지는 종종 턱걸이 얘기를 하는데 평소 1개도 어려웠던 턱걸이가 겨울 동안 7개도 가능하게 됐다. 박민지는 “지금은 헬스장 가서 (턱걸이) 5개라도 해야지 한다. 최대한 시즌 전에 만든 몸만 유지하면 괜찮겠다 싶다”고 했다. 그는 건강 유지를 위해 평소에도 라면이나 탄산음료는 피한다.

KLPGA투어 세부 통계지표에 따르면 박민지의 약점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현재 평균 타수(69.5타·투어 평균 73.2114타)는 물론이고 평균 버디(4.3846), 그린 적중률(77.7778), 파브레이크율(24.5726) 모두 1위에 올라 있다. 기본기가 튼실해 드라이브 비거리도 키(160㎝)에 비해 꽤 나오는 편이다. 올해는 근력을 키우면서 클럽 헤드 스피드가 빨라져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가 지난해(243야드)보다 10야드 늘어 252야드까지 나온다.

박민지의 가장 큰 장점은 승부 근성이다. 박현경(21)과의 몇 차례 후반 순위 싸움에서 드러났듯이 우승이 가시권에 놓이면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면서 거침없이 타수를 줄여간다. 강한 정신력으로 육체의 피로도를 버텨내는데, 데뷔 후 처음으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DB그룹 제35회 한국여자오픈)한 다음 날에는 탈진해서 링거를 맞기도 했다. 박민지는 평소 ‘멘털’을 특히 강조하는데 더울 때도 ‘여기는 알래스카다’라고 생각하면서 공에만 집중한다. 휴식 때는 맛집 등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찾아다닌다. 경기 압박감이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어려운 환경 잘 견뎌와서 멘털 강하고 승부욕 남달라”

박민지 골프 인생에 위기는 물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클럽을 놓을 뻔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집안이 많이 어려워지면서 1년 반 동안이나 레슨을 받지 못했다. 올림픽 연금 등으로 생활비를 대는 상황에서 골프 비용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박민지가 당시 골프를 관두려고 했던 이유다.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은 있었다. 최경주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게 된 것이다. 고교 1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이 된 뒤 김세영의 스승인 이경훈 프로가 1주일에 두 차례 무료 레슨도 해줬다. 악바리 근성 덕에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고교 3학년 때 국가대표로 세계여자아마추어골프 팀선수권대회에 나가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함께 태극마크를 달았던 이들이 올해 맞수가 된 박현경과 최혜진(22) 등이다.

다행히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에는 수당이 나오고 용품 후원도 받아 따로 골프 경비가 안 들었다. 어머니 김옥화씨는 말한다. “민지가 어려운 환경을 잘 견뎌와서 악착같은 면이 있어요. 그래서 멘털이 강하고 승부욕이 남다르죠.”

박민지는 국내 투어에서 활약하지만 세계여자프로골프 순위가 18위(6월28일 기준)다. KLPGA의 위상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그만큼 5승의 임팩트가 강하다. 2020 도쿄올림픽에는 고진영(2위), 박인비(3위), 김세영(4위), 김효주(6위)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에게 밀려 출전하지 못하지만 2024 파리올림픽 때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경기 전 밥을 먹을 때 신나는 노래를 듣고 필드로 나가는 루틴이 있는 박민지.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권투선수들이 링에 오르기 전에나 들을 법한 정신없는 노래”를 듣는다. 그에게 필드는 링과 같다. 숨 가쁘게 준비했고 그래서 더 숨 가쁘게 싸워야만 하는. 그것이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가족에 대한 보답이라고 박민지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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