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명분으로 6위에도 가을 티켓 주려는 KBO의 꼼수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4 17:00
  • 호수 1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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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확대 움직임 논란…“팬들 관심 높아질 것” 찬성도 있지만, “정규리그 무력화” 비판 목소리 많아

5강, 그리고 6강. 10개 팀 사이에서 5등과 6등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5등은 그래도 중간 정도 순위지만, 6등은 하위권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프로야구에서 반수를 넘어가는 6등까지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가을야구’ 초대권을 주자는 움직임이 있다. 모든 의제가 그렇듯 찬성 의견도, 반대 의견도 있다. ‘6위’는 그만큼 미묘한 숫자다.

ⓒ연합뉴스
2021년 11월1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 경기에서 두산에 8대4로 승리하며 창단 첫 통합우승을 달성한 KT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승리보다 패전 더 많은 팀이 우승한다는 건 코미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참가 팀 확대 얘기가 흘러나온 것은 지난 1월말 열린 2022년 첫 이사회 때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THE NEW KBO’를 구현해 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포스트시즌 개편, 연장 승부치기 도입, 트래킹 시스템 통합 등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야구 인기 하락 등을 고려한 적극적인 변화 모색이다.

사실 미국 메이저리그도 올해 포스트시즌 참가 팀을 확대했다. 3월1일 구단과 선수노조가 마라톤 협상 끝에 현행 10개 팀에서 12개 팀으로 가을야구 진출 팀을 늘리기로 했다. 애초 구단은 14개 팀을 주장했었다.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중계권료와 관중 수입 등 수익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경우 전체 팀 수가 30개 팀이다. 한국도 미국처럼 수익 창출을 노리고 있다. 포스트시즌 진출 팀이 증가하면 경기 수도 늘어나고, 시즌 막판까지 중하위권 다툼을 지켜볼 수 있어 구단은 부가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정규리그 1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 확률이 매우 높은 현행 제도를 고쳐 리그를 조금 더 생동감 있게 만들 수도 있다.

포스트시즌 경기는 보통 지상파에서 중계하는데, 신규 팬 유입에 용이한 점도 있다. 한 해설위원은 “포스트시즌 출전 팀이 많아져 팬들의 관심이 지금보다 늘어날 수 있다면 그런 시도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야구 인기가 떨어지는 현시점에서 KBO가 무엇이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포스트시즌에 6개 팀이 진출할 경우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방식과 유사한 방법이 채택될 수 있다. 프로농구 포스트시즌 제도를 살펴보면, 정규리그 1·2위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부전승으로 통과하고, 3~6위, 4·5위 팀이 맞붙는다. 이후 1위 팀은 4·5위 팀 간 경기 승자와, 2위 팀은 3~6위 팀 간 경기 승자와 2라운드를 치르고 이들 경기 승자가 최종 챔피언십에서 맞붙게 된다. 프로농구도 프로야구와 마찬가지로 10개 팀이 정규리그에서 자웅을 겨루고 있다. 6등이 ‘봄 농구’ 진출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프로농구 포스트시즌 6개 팀 체제에서 정규리그 1위 팀이 우승한 경우는 절반밖에 안 된다. 정규리그 1위에 대한 어드밴티지가 2위 팀과 비교해 전혀 없다는 문제점이 대두되는 이유다. 프로야구 감독 출신의 한 야구 원로는 “6강 포스트시즌 체제가 되면 정규리그 자체가 무력화될 것이다. 6위만 해도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경기의 박진감 또한 많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포스트시즌 진출 팀을 오히려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유명무실한 와일드카드 제도를 없애고 예전처럼 4개 팀이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게 오히려 더 팬들의 관심도를 높여줄 것”이라고 했다.

6위 팀까지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할 경우,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승률 5할도 안 되는 팀이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규시즌에서 승리보다 패전이 더 많은 팀이 우승을 차지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다. 미국, 일본, 심지어 대만에도 그런 경우는 없다”는 한 프로야구 전문기자의 일갈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설령 6강 포스트시즌 방식을 채택하더라도, 6위 팀이 최소 승률 5할은 넘겼을 때만 가을야구 티켓을 줘서 5·6위 간 단판 승부를 벌이는 등의 방법을 제시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프로야구처럼 양대 리그를 운영할 수도 있으나 이는 1999~2000년 이미 실패를 맛본 제도다. 팀이 늘어나기는 했으나 10개 팀만으로 양대 리그를 운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될 것이 있다. 6강 포스트시즌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현재 프로농구의 인기 하락이다. 프로농구 또한 그들만의 리그로 변해 버린 지 오래다. 그나마 올 시즌에는 허웅-허훈 형제가 자체 유튜브 제작과 지상파 예능 출연을 통해 끌어올린 인지도에 힘입어 리그 인기 반등의 기미를 간신히 보여주고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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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18일 치러진 한국시리즈 4차전 KT 대 두산의 경기ⓒ연합뉴스

흥행 부진의 본질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 제기돼

참가 팀 확대를 통한 업셋(하위 팀이 상위 팀을 이기는 것) 등의 스토리 창출로 신규 팬을 유입하겠다는 것 또한 한계가 있다. 야구 자체에 흥미가 없으면 아무리 가을 축제라고 해도 관심도는 떨어진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아진 요즘 시대에는 특히 더 그렇다. 포털을 통한 중계 영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상파 3사 중계 시청률이 몇 년간 하락세를 면치 못한 것이 그 증거다. 예능 프로그램 편성을 위해 생중계를 포기하는 사례가 나오는 것이 야구 중계 현주소다.

코로나19 영향이 있기는 했으나 포스트시즌 흥행 또한 예전과 같지 않다. 지난해 포스트시즌 11경기에서 매진은 단 두 차례밖에 없었다. 소위 인기 팀들의 포스트시즌 탈락으로 ‘흥행 카드’에서 밀렸다고 하기에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이런 환경에서 포스트시즌 진출 팀 확대가 프로야구의 흥행 부활을 이끌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은 그저 뜬구름 잡는 얘기일 뿐이다. 문제의 본질을 간과해 버린 단기적 처방은 결국 리그에 독이 되어 돌아온다.

경우 포스트시즌 진출 팀을 늘렸어도 리그 전체에서 40% 팀만이 가을야구에 초대된다. 일본프로야구 또한 12개 팀 중 6개 팀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한국 야구가 6위까지 포스트시즌 무대에 오를 경우 그 수치는 60%로 증가한다. 원로 야구인의 말대로 정규리그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6개월 내내 1위를 하고도 정작 가장 중요한 축제 때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다. 팬들은 정규리그 1위가 아닌 한국시리즈 챔피언을 먼저 기억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기 하락은 비단 프로야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전 세계 프로 스포츠 대부분이 안고 있는 난제 중 난제다. “비정상적인 리그”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프로야구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는 사실 따로 있다는 의견이 많다. 경기 영상 사용 제한 문제를 푸는 것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라는 지적이 있다.

뉴미디어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는 통신 3사-포털사이트 컨소시엄과의 계약 때문에 KBO 자체는 물론 구단들도 경기 영상을 공식 SNS와 유튜브에서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MZ세대의 관심을 끌어오기 위한 플랫폼이 막혀있는데 엉뚱하게 다른 식의(혹은 가장 편한) 해결책을 도모하고 있다. 새로운 총재가 선임되면 이 문제부터 해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야구계에선 KBO 내부에서 지속 가능한 프로야구 미래를 위해 여러 의견이 교환되는 점을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한국 야구만의 특색을 갖춰갈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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