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규제’ 마침표 찍은 존슨 英 총리 향해 쏟아지는 의심
  • 사혜원 영국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9 12:00
  • 호수 1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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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총리 역대 최하위 지지율 위기 벗어나려는 속셈” 분석
의료진·야당 “성급하고 무모해” 비판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 이후 규제로 가득했던 지난 2년. 영국은 2월24일 공식적으로 코로나 관련 사회적 거리 두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21일 영국 정부의 ‘리빙 위드 코로나’(코로나와 함께하는 삶) 정책을 발표했다. ‘위드 코로나’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코로나에 대한 대응도 마치 독감처럼, 국가적 차원이 아닌 개인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변화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80세 미만 국민을 위한 무료 신속항원검사 및 PCR검사와 백신패스 사용이 4월부터 중단될 예정이고, 코로나19 검사를 한 뒤 양성 판정을 받아도 자가격리가 권고 사항일 뿐, 법적인 격리 의무는 없어졌다.

ⓒAFP 연합
3월1일 영국 런던 리버풀 스트리트역에서 시민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걷고 있다.ⓒAFP 연합

‘위드 코로나’에서 더 나간 ‘리빙 위드 코로나’

존슨 총리는 영국의 높은 백신 접종률 덕분에 이와 같은 결정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우리의 경제, 사회 그리고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쳤다”며 “사람들이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나거나 확진자가 다시 급격하게 늘어난다면 사회적 거리 두기를 도입해야 할 수도 있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어들고 있고 감염률과 사망률도 미미한 현재 상황에서는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존슨 총리는 “코로나19에 대한 이해와 일정 수준 이상의 집단면역이 생성된 지금, 정부 규제보다는 치료와 백신을 통한 예방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및 무료 검사에 지난해에만 157억 파운드(약 25조원)의 막대한 정부 예산을 사용했다는 사실도 내세웠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보건 전문가들은 “아직 불확실한 것이 너무 많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중 예산상 이유로 코로나19 검사를 유료화하는 방안에 대해 특히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영국보건시스템(NHS)연맹의 매튜 테일러 CEO는 2월25일 “정부가 마술 지팡이를 휘두르듯 임의로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척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NHS연맹 조사에 따르면 NHS 임원 중 무려 79%가 코로나19 무료 검사를 중단하기로 한 결정에 반대한다. 테일러는 “장기 면역력이나 변이 바이러스의 발생 가능성 등 여전히 불확실한 점이 많다”며 “코로나19 무료 검사와 확진자 자가격리는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학협회(BMA)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찬드 나그파울 회장은 “모든 제한을 없애기로 한 정부의 결정은 시기상조”라면서 “정부의 결정은 전문가와 협의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제한을 해제하고, 확진자를 통제하지 않고, 코로나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도록 허용하는 것은 수백만 명의 건강에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코로나19 검사 비용을 지불할 수 있고 격리할 수 있는 중산층 이상 국민과, 그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서민들 사이에 ‘의료적 불균형’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데이비드 나바로 코로나19 특사 역시 영국 정부의 결정에 대해 “매우 현명하지 못하다”며 이 같은 결정이 “전 세계에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두려움을 표명했다.

2월28일 3360명의 영국 의료 전문가는 영국 정부의 최고 의료책임자인 크리스 위티 교수와 수석과학고문인 패트릭 발란스에게 “이러한 정책 결정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조언을 명확히 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우리는 정부 정책이 확고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했다고 믿지 않는다”며 “무료 검사를 중단하는 정부의 정책은 거의 확실하게 바이러스의 순환을 증가시키고 변이 바이러스의 모니터링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AP 연합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2월21일 런던 다우닝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정부의 새로운 장기 코로나19 계획의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AP 연합

코로나19 검사 유료화에 국민 여론도 싸늘

이를 지켜보는 영국 국민의 의견도 분분하다. 여론조사기관 ‘Ipsos’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 국민의 절반 정도는 정부가 “너무 빠르게 규제를 없애는 것 같다”고 답변했다. 특히 코로나19 검사를 유료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수 이상이 반대 의견을 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라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존슨 총리가 갑자기 이런 정책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미심쩍다고 의심하는 의견도 있다. 존슨 총리가 본인의 코로나19 방역 규칙 위반 행위와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게 된 것에 대한 관심을 최대한 분산시키기 위해 시기상조인 정책을 서둘러 발표했다는 것이다.

실제 아직까지도 총리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존슨 총리에 대한 영국 국민의 지지율은 역대 최하위이기 때문에 나오는 분석이다. 야당인 노동당의 그림자 내각(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를 대비한 예비 내각)에서 보건장관을 맡고 있는 웨스 스트리팅은 2월27일 “보리스 존슨이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승리를 선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노동당이 이끄는 웨일스 지방정부도 28일 존슨 총리의 계획이 “성급하고 무모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상반된 목소리도 있다. 방역 완전 해제는 “당연한 일이다”라는 반응이다. 이미 위드 코로나 생활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이 놀랍지 않다는 것이다.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의 루퍼트 비일 박사는 “대다수 국민이 백신 3차 접종까지 마친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며 “2020년 3월과 지난해 겨울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지만, 지금 3차 접종까지 완료한 일반인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금 영국은 백신도 있고, 치사율 역시 독감 수준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특히 자영업자와 관광업 종사자들은 2년간의 사회적 거리 두기로 답답했던 생활이 끝나고 빠른 경제 회복을 기대하며 정부의 정책을 반기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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