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블록버스터 시장, 의외로 ‘한산’했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7 13:00
  • 호수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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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1부》 《비상선언》 등
기대작 줄줄이 흥행 참패

뜨거웠던 올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이 끝나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정체돼 있던 대형 기대작들이 쏟아져 나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 시간. 결과는 의외로 천만 영화가 나오지 않는 부진을 기록했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걸까. 

지난 4월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다. 이로써 극장에서도 취식 제한이 해제돼 이제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그간 극장을 찾고 싶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꾹꾹 눌러왔던 욕망이 터져 나왔다. 5월18일 개봉한 《범죄도시2》는 온전히 그 수혜를 입으며 가뿐히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업계로서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즌이 돌아왔다는 신호일 수밖에 없었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이 후끈 달아오른 이유였다.

영화 《외계+인》의 한 장면ⓒCJ ENM 제공

《범죄도시2》로 여름 시즌 기대감 높였지만… 

7월20일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가 여름 시즌을 열었다. 총 2부로 제작된 작품의 1부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순제작비만 330억원이 들어갔다. 최동훈 감독 특유의 케이퍼 무비 스타일이 캐스팅에 투영돼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 소지섭, 염정아, 조우진, 김의성, 이하늬 등 초호화 배우진이 참여했다. 무엇보다 쌍천만 감독으로 불리는 최동훈 감독이 작정하고 만든 SF 장르에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판타지라고 했다. 관객의 기대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심각할 정도의 참패였다. 현재까지 고작 150만 누적관객(8월22일 기준)을 동원했다. 이유는 너무 많은 감독의 욕망을 담았다는 점이었다. 실험적인 시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고려와 현재를 오가고 외계인이 등장하는 SF 장르가 더해져 마치 《터미네이터》와 《맨 인 블랙》, 《전우치》가 한 영화로 묶인 듯한 복잡함이 문제였다. 

관객은 금세 외면했고 곧이어 개봉한 김한민 감독의 《한산: 용의 출현》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이미 《명량》으로 1700만 관객을 돌파한 전적이 있는 이순신 시리즈의 두 번째 대작이었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딱 어울리는 시원시원한 해상 전투신이 관객들을 압도했고, 무엇보다 《명량》과는 달리 해석한 진중하고 흔들리지 않는 이순신(박해일)의 면면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건 마치 코로나19 같은 혼돈 상황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이 주는 든든한 리더십으로 다가오는 면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올 시즌 최고의 성적표를 거둔 작품이 된 데는 그런 정서적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이 작품은 현재까지 670만 관객에서 상승세가 둔화돼 있는 상태다. 추석까지 방영하면 더 많은 관객이 들겠지만 1000만 관객 돌파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영화 《비상선언》의 한 장면ⓒ㈜쇼박스 제공

올여름 최대 기대작 중 하나로 꼽혔던 《비상선언》 역시 참패를 맞이했다.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같은 초호화 캐스팅으로 채워진 이 작품은 비행기 테러 사건 속에서 그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두 시간 넘는 사투가 그려졌다. 비행기 테러가 소재지만 사실상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 상황 속에서 이를 이겨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은유하는 이 작품은 제작 전에 예상 못했던 코로나19 상황까지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들어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시간 가까이 관객들이 비행기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후반부의 재난 상황에 대한 과한 감정 표현들과 의미화가 오히려 독이 됐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현재까지 200만 관객을 가까스로 기록하고 있다.

흥행에 비상을 맞게 된 《비상선언》이 준 실망감은 8월10일 사실상 여름 시즌 마지막으로 개봉한 《헌트》로 옮겨갔다. 이정재의 첫 감독 데뷔작이라 그다지 기대감을 갖지 않았던 관객들은 의외로 뛰어난 대본과 연출력 그리고 정우성과 맞춘 이정재의 명불허전 콤비 연기 속에 호평을 쏟아내며 흥행에 청신호를 켰다. 순식간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네 편의 영화가 부침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당연히 한두 편 정도는 나올 거라 예상됐던 천만 관객 영화는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한산: 용의 출현》은 체면치레를 한 셈이 됐지만 다른 작품들은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는커녕 이미 예상되는 막대한 손해 앞에 망연자실한 상황이다. 특히 2부작으로 제작된 《외계+인 1부》의 부진은 내년 개봉이 예정된 2부로도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 《헌트》 포스터ⓒ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영화 《한산》의 한 장면ⓒ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결과적으로 천만 영화가 나오지 않은 이유 

무엇이 전반적인 부진을 만들었을까. 그 첫 번째는 코로나19로 인해 OTT를 통한 영화 경험이 많아지면서 극장으로의 발길이 과거보다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네 편의 관객 수를 다 합쳐도 과거 화려했던 시절의 1000만 관객 영화 한 편(예를 들면 《명량》 같은)의 관객 수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관객들은 이제 영화를 선택할 때 디폴트(기본값)로 극장을 생각하기보다는 꼭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인가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OTT에서도 개봉일 이후 멀지 않은 시점에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고, 무엇보다 가성비가 뛰어나다. 마침 영화 티켓 가격도 1만5000원으로 올랐다. 연인이 함께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면 5만원이 훌쩍 나가기 일쑤다. 부담 없는 문화소비로 생각했던 극장에서 영화 관람이 부담되기 시작한 것. 그러니 1만5000원 티켓 한 장 가격으로 OTT에서 무제한 드라마와 영화를 한 달간 볼 수 있는 상황은 관객의 마음을 흔들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제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를 스스로 납득시켜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됐다. 대표적으로 《탑건: 매버릭》이 올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무려 780만 관객(8월22일 현재)을 동원했다는 건 이런 사정을 정확히 보여준다. 과거 《탑건》의 복고적인 향수가 주는 힘이 존재했지만, 그보다 이 작품이 관객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인 건 그곳에서 봐야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전투기 시뮬레이션을 방불케 하는 영화 체험이다. 소리부터 영상까지 이 영화는 극장이 왜 필요한가를 실감하게 해줬다. 

두 번째 부진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적체돼 있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뛰어나고 재미있는 영화라고 하더라도 한꺼번에 개봉되면 관객을 나눠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영화관 성적은 여전히 멀티플렉스에서 얼마나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느냐와 밀접하다. 그래서 올여름에는 특히 관객들의 입소문에 의해 흥행이 순식간에 좌우되는 경향이 만들어졌다. 그건 입소문에 따라 멀티플렉스에서도 상영관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또 줄어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올해 최대 참패를 맞이한 《외계+인 1부》다. 개봉 후 반응이 시원찮아지면서 개봉관이 급감했고 마침 《한산: 용의 출현》의 반응이 폭발하자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일종의 승자독식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진 건 입소문 반응에 따른 멀티플렉스들의 상영관 변화가 그 가속도를 만든 원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오는 추석 시즌은 어떨까. 가장 큰 기대작은 《공조2: 인터내셔날》로 시즌1이 718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또 이정현 주연의 범죄스릴러 《리미트》와 추석 2주 전에 개봉하는 코미디 영화 《육사오》도 의외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작품보다 아무래도 관심을 끄는 건 외국 작품들이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불릿트레인》, 블룸하우스가 제작한 《블랙폰》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하지만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을 경험한 터라, 추석 시즌의 영화들이 기대만큼의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관객이 왜 영화관까지 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영화가 충분히 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가성비와 가심비를 추구하기 시작한 관객들은 향후 극장 영화에도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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