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후계구도 대해부 ⑤코오롱그룹] 냉혹한 시험대에 선 코오롱家 4세 이규호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12.06 07:35
  • 호수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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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체질 개선’ ‘新사업’ 3가지 키워드 앞세워 개혁 드라이브
실질적인 경영 성과로 능력 입증해야 순탄한 승계 가능할 듯

최근 몇 년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 순위(공정자산 총액 기준)에서 코오롱그룹은 하락세를 나타내 왔다. 2019년 재계 30위(공정자산 10조7100억원)에 진입한 코오롱은 2020년 33위(10조4200억원), 2021년 40위(10조2900억원)에 이어 올해는 42위(11조100억원)로 내려앉았다. 공교롭게도 이웅열 명예회장이 2019년 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내리막길이 시작돼 ‘경영 리더십’ 부재론이 더욱 불거졌다.             

이 명예회장은 퇴임 당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느꼈다”며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에 다 금이 간 듯한데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다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이후 오너 경영자로서의 책임감을 아들에게 양도하기 시작했다. 일명 경영 수업이다.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그룹 대표이사 사장과 서울 마곡동에 위치한 코오롱그룹 사옥인 원앤온리 (One&Only) 타워ⓒ코오롱 제공·시사저널 이종현

경영 수업 끝, 내년 1월부터 본격 시험대 

4년여가 흐른 지금 경영 수업은 모두 마무리됐다. 이 명예회장의 아들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그룹 대표이사 사장(38)은 11월7일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코오롱은 ‘이규호 시대’를 앞두고 그룹의 새로운 엔진인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만들어 내년 1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이 사장의 승진과 동시에 인적 쇄신도 대거 이뤄졌다. 우선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코오롱글로텍, 코오롱플라스틱 등 주력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모두 바뀌었다. 이 사장과 호흡이 잘 맞을 만한 CEO들로 꾸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임 상무보 인사는 더욱 이 사장을 의식해 이뤄졌다. 코오롱은 신임 상무보 22명 중 72%에 이르는 16명을 40대로 선임했다. 젊은 이 사장과 함께 오랫동안 그룹을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 그룹을 뽑은 것이다. 

코오롱 내부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타이트한 경영 수업을 받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서히 그룹 일선에 나서기 시작한 이 사장이 이번 인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자신이 차기 총수임을 선언한 것 같다”면서 “인사 결과와 관련 설명을 살펴보면 이 사장이 경영 수업 과정에서 느끼고 구상한 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코오롱은 인사를 발표하며 이례적으로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왜 이런 인사를 하게 됐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성장’이란 키워드가 7차례로 가장 많이 등장했다. ‘체질 개선’이 4차례, ‘신(新)사업 발굴’이 3차례로 뒤를 이었다. 그만큼 체질 개선과 신사업 발굴 등을 통한 성장이 절실하단 뜻으로 해석된다.  

차기 총수로서 그룹 내부에 긴장감 부여 

실제로 기업 정보포털 잡플래닛의 코오롱 계열사 직원 리뷰 코너엔 ‘조직 문화가 수직적이고 딱딱하다’ ‘트렌드에 뒤처진다’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는다’는 등 회사 내부 문제에 대한 성토가 많다.  

이 사장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미 그는 올 1월 코오롱글로벌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자기반성적 고찰로 미래 성장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고 직언을 날렸다. 그러면서 “코오롱만의 명확하고 구체적인 색깔을 만들고 업계에서 당당하게 ‘1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찾자”고 당부했다. 

그룹 실적은 나쁘지 않지만, 낙관하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코오롱 지주사인 ㈜코오롱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5조4104억원, 영업이익은 3322억원이다. 당기순이익은 170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5203억원(10.6%), 영업이익은 608억원(22.4%), 당기순이익은 41억원(2.4%) 각각 증가했다. 주요 계열사들의 고른 성장에 힘입어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 2010년 지주사 출범 후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올해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코오롱의 올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952억원)은 지난해보다 42.9% 늘어났으나, 2분기(804억원)와 3분기(828억원) 영업이익은 각각 24.1%, 9.8% 감소했다. 국제유가·원재료비 상승 등 대외 악재가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코오롱 입장에선 무탈하게 버텨내는 것 외에 이렇다 할 대안이 없다. 코오롱 측은 “내년에도 경기 침체와 글로벌 불확실성의 위기 상황이 예상되지만 기업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보고 나아가야 한다”며 미래 성장을 위해 과감한 체질 개선과 신사업 발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적 개선은 이 사장이 아버지 이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는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앞서 이 명예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아버지로서 재산은 물려주겠지만 경영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주식은 한 주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은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경북 구미공장에 차장으로 입사하며 그룹에 합류했다. 이후 2014년 코오롱글로벌 건설현장 관리책임자 부장, 2015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 2017년 ㈜코오롱 전략기획담당 상무, 2018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패션) 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 전무, 2020년 코오롱글로벌 자동차부문장 부사장에 올랐다. 

초고속 승진을 해왔다는 점은 여느 재벌가 3·4세들과 비슷한데, 눈에 띄는 차이가 있다. 이 사장은 코오롱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코오롱 지분이 전혀 없다. 이 명예회장이 보유한 ㈜코오롱 지분은 49.74%다. 

재벌가 후계자들이 일감 몰아주기 등 다양한 편법을 동원해 경영권 지분을 승계하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여타 후계자들보다 경영권을 승계받기가 훨씬 까다롭다는 얘기다. 이 명예회장 역시 코오롱 임직원과 대중 앞에서 공언한 바를 소홀히 하기 어렵기에 이 사장에 대해 냉혹한 잣대를 들이밀 수밖에 없다. 

이 사장의 경영능력을 두고는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특히 이 사장이 코오롱인더스트리 패션 부문 COO였을 때인 2019년과 2020년 초라한 경영 성적표를 받은 게 뼈아팠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19년 패션 부문에서 연결 기준 매출 9729억원과 영업이익 135억원을 냈다.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연매출이 1조원 밑으로 떨어졌으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분의 1 규모였다. 2020년에는 영업이익이 아예 적자로 전환했다. 이에 코오롱 측은 지난해 코오롱인더스트리 실적이 반등한 사실을 들며 “이 사장이 온라인 플랫폼 구축, 새로운 트렌드 변화에 따른 브랜드 가치 정립 등으로 실적 반등의 기반을 다진 결과”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내놓았다. 

ⓒ시사저널 최준필
2019년 7월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나오는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시사저널 최준필

경영권 지분 無…능력 증명이 우선   

다소 느려진 이 사장의 승계 시계를 앞당긴 것은 코오롱글로벌의 실적이다. 코오롱글로벌은 이 사장이 맡은 자동차(수입차 유통) 부문을 비롯해 건설, 상사 등 전 부문이 고르게 성장하면서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도 좋은 실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코오롱글로벌의 BMW, 아우디, 볼보, 지프, 롤스로이스 등 수입차 유통 부문을 통합해 내년 초 출범하는 회사가 바로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이다. 

이 대표는 향후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의 미래 성장 전략 수립과 신사업 발굴에 집중할 예정이다. 2025년까지 매출 3조60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수입차 유통 부문의 경우 2012년 이후 10년간 매출이 연평균 12% 넘게 성장하면서 그룹 내 캐시카우 역할을 해왔다. 이 사장으로선 일단 두둑한 자산을 갖고 능력 검증의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다.  

이 사장은 앞으로 수입차 유통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개편하는 한편 멀티브랜드를 구축하고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 등 다양한 신사업에 뛰어들 예정이다. 코오롱은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의 각자 대표이사로 이 사장과 함께 전철원 사장을 내정했다.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CEO가 된 입지전적 인물인 전 사장은 이 사장이 신사업에 주력하는 동안 영업을 책임지며 리스크를 상쇄하는 역할을 할 전망이다. 그야말로 이 사장의 실적을 만들어주기 위해 전사가 달라붙는 형국이다. 그룹의 모든 지원을 등에 업은 이 사장은 이제 스스로 능력을 검증해 내야만 한다.  

 

■ 이웅열·이규호, 2대에 걸쳐 美 유학…다른 재벌가는? 

일본에서 공부한 코오롱그룹 창업 1·2세대(이원만 창업자, 이동찬 명예회장)와 달리 3세 이웅열 명예회장과 4세 이규호 사장은 모두 미국 유학파다. 이 명예회장은 아메리카대 경영학과(학사)와 조지워싱턴대 대학원(경영학 석사)을 나왔고, 이 사장은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는 코오롱가(家)만의 특징이 아니다. 국내 재계에선 어느덧 미국 대학 학위가 총수의 ‘필수 스펙’이 돼가는 분위기다. 총수는 물론 후계자로 거론되는 재벌가 자제들도 약속이나 한 듯 미국 학위를 갖추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이 오너가 있는 국내 20대 그룹(자산총액 기준) 총수와 후계자의 학력을 조사한 결과, 60%인 12곳의 총수가 미국 대학 출신이었다. 최근 대기업 3~4세 경영이 본격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비율은 향후 더욱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후계구도에 있는 ‘예비 총수’들은 물론 그 자녀들에게도 미국 유학은 필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54·하버드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과정 수료), 최태원 SK그룹 회장(62·시카고대 경제학 학사, 동 대학원 경제학 석·박사 통합과정 수료),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52·샌프란시스코대 경영학 석사), 구광모 LG그룹 회장(44·로체스터공대 학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7·컬럼비아대 경영학 석사) 등 5대 그룹 총수들이 모두 미국 대학 출신이다. 이 밖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구자은 LS그룹 회장, 이준용 DL그룹 명예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도 미국에서 유학했다. 

20대 그룹의 후계구도를 들여다보면 재계의 미국 유학 선호 현상이 더욱 뚜렷해진다. 취재 가능한 정보만 모아도 미국 유학파 총수 12명 중 7명의 자녀가 미국에서 수학한 것으로 파악된다. 유학하지 않은 총수 가운데 확인된 5명도 자녀를 미국 학교에 보냈다. 이들 자녀는 모두 미래에 그룹을 이끌 수 있는 ‘총수 후보군’에 속한다. 

총수와 자녀들이 선택한 유학 전공은 역시 경영학이 주를 이뤘다. 경제학, 국제정치학, 공학, 통계학 등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 여타 전공도 있었다. 후계자들도 경영학 전공 비율이 높은 것은 비슷했는데 호텔경영학, 법학, 디자인학, 생명정보학 등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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