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하이브·셀트리온 뜨고 STX·C&·동양그룹 졌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7.04 13:05
  • 호수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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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재벌 제치고 IT 플랫폼․바이오․게임․건설 창업주 신흥 재벌로 떠올라

정확히 10년 전이었다. 공정위가 발표한 대규모기업집단(이하 대기업집단)은 모두 43곳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총수가 창업주인 대기업집단은 롯데(신격호), STX(강덕수), LS(구태회), 동부(현재 DB·김준기), 부영(이중근), 웅진(윤석금), 미래에셋(박현주), 대성(김영대), 태영(윤세영), 대한전선(설윤석), 이랜드(박성수) 등 11곳이나 됐다. 

이 중에서 창업주가 총수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현재 DB(김준기), 부영(이중근), 미래에셋(박현주), 태영(윤세영), 이랜드(박성수) 등 5곳에 불과하다. 김준기 DB그룹 명예회장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점을 감안하면 창업주 총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3곳으로 줄어든다. 나머지 그룹은 경영권 승계로 세대교체가 됐거나, 실적 악화로 대기업집단에서 이름이 빠졌다. 

(왼쪽부터)김범수, 방시혁, 서정진 ⓒ연합뉴스
(왼쪽부터)김범수, 방시혁, 서정진 ⓒ연합뉴스

신흥재벌의 흑역사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10년 전만 해도 그는 ‘샐러리맨의 신화’로 통했다. 강 전 회장은 쌍용그룹 해체 직전이던 2000년 12월 자신이 CEO로 있던 쌍용중공업을 인수했다. 이후 대동조선(STX조선해양)과 범양상선(STX팬오션) 등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2007년에는 세계 2위의 크루즈선 조선소인 노르웨이 아커야즈(STX유럽)를 인수하기도 했다.

한때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과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 인수전에 참여했을 정도로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2년 말 기준으로 STX그룹의 자산은 20조7000억원, 재계 12위 그룹이었다. 지나친 문어발 확장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됐다. 2013년 들어서면서 그룹의 유동성 문제가 불거졌다. 강 회장은 자신의 지분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채권단의 지원을 받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룹이 공중분해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STX그룹은 결국 그해 9월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3년 전에는 임병석 회장이 이끌던 C&그룹이 무너졌다. C&그룹 역시 2000년대 초부터 급성장한 신흥재벌이었다. 외환위기 때 쓰러졌던 세양선박(C&상선)과 진도(C&진도)를 비롯해 우방(C&우방), 동남아해운(C&라인)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해체 직전이던 2010년 계열사는 41곳, 재계 60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임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조선업이 침체되면서 C&그룹의 곪은 상처가 드러났다. 결국 임 회장은 비자금 조성과 회계장부 조작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고, 그룹 역시 산산조각 났다.

이 밖에도 동양그룹과 웅진그룹, DB그룹, 대한전선, 프라임그룹 등이 2000년대 급성장했다가 현재는 자취를 감췄거나 사세가 많이 쪼그라들었다. 재계의 한 인사는 “2000년대는 유독 신흥재벌이 많이 생겨났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상당수 기업이 성장 과정에서 무너졌다”면서 “그만큼 한국에서 재벌로 성장하기가 어렵다는 방증이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재계 환경이 급변했다. 산업지형 역시 크게 바뀌면서 새로운 기업이 대거 대기업집단에 편입됐다. 카카오(김범수), 네이버(이해진), 넷마블(방준혁), 넥슨(우정현), 두나무(송치형), 크래프톤(장병규) 등 IT 기업과 중흥건설(정창선), SM(우오현), 호반건설(김상열), 대방건설(구교운) 등 건설 기업, 셀트리온(바이오·서정진), 에코프로(2차전지·이동채) 등이 대표적이다. 덕분에 창업주가 총수인 기업집단은 2012년 25.6%(43곳 중 11곳)에서 올해 41.7%(72곳 중 30곳)로 16.1% 포인트나 증가했다. 오너의 지분 가치가 그만큼 상승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시사저널이 매년 리더스인덱스에 의뢰해 실시하는 500대 기업 오너 일가 주식 가치 전수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주식 부호 1, 2, 3, 4위는 삼성 일가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10조9150억원)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6조3413억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5조1886억원),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4조5378억원) 등이 차지했다.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여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등 기존 재벌 2세들도 20위권에 포함됐다.

이 중에서도 눈에 띄는 인사가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와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이다. 이들은 유수의 재벌 창업주나 오너 2, 3세를 제치고 나란히 주식 부호 8, 9위에 올라 주목받고 있다. 이들의 선전은 단순한 대기업집단 포함이나 창업주의 지분 가치 상승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수십 년간 굳어져온 전통적인 재벌기업 체제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IT 플랫폼, 바이오, 게임 기업의 창업자들이 신흥재벌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상속형 재벌이 줄고 창업형 재벌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은 한국 재계 역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김범수·방시혁·서정진 등 신흥재벌 반열에

실제로 카카오는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공격적인 M&A(인수합병)와 함께 언택트(비대면) 문화 확산에 따른 쇼핑, 간편결제, 콘텐츠, 플랫폼 사업 등의 성공으로 고속 성장했다.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 카카오게임즈 등이 잇달아 ‘IPO 대박’을 터트렸다. 덕분에 김범수 창업주도 최근 대기업 총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세계적인 아이돌그룹인 방탄소년단(BTS)을 탄생시킨 방시혁 하이브 의장도 주목된다. BTS는 현재 활동을 잠정 중단했지만, 더블 밀리언셀러로 성장한 세븐틴, 앨범 발매 때마다 두 배씩 성장하는 투바투, 최단 기간 초동 밀리언셀러로 등극한 앤하이픈 등 BTS의 공백을 메울 가수가 여럿 배출됐다. 증권가에서는 하이브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과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도 주식 부자 2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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