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아빠·엄마 딸로” 또래 4명 살리고 하늘로 떠난 아영이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6.3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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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학대로 두개골 골절 입고 생후 5일 만에 의식불명
심장·폐·간·신장 기증…父 “아이가 세상에 온 의미 부여하고 싶다”
태어난 직후 산부인과에서 두개골 골절 등 상해를 입고 의식불명으로 지내다 6월29일 하늘로 떠난 정아영양. 아영양은 장기기증을 통해 또래 4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 연합뉴스
태어난 직후 산부인과에서 두개골 골절 등 상해를 입고 의식불명으로 지내다 6월29일 하늘로 떠난 정아영양. 아영양은 장기기증을 통해 또래 4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 연합뉴스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그 조그만 몸으로 지금껏 온 힘을 다해 버텨줘서 고마워. 다음 생에 한 번만 더 아빠 엄마 딸로 태어나주렴. 그땐 우리 오래도록 추억 쌓아보자"

생후 5일 만에 머리를 다쳐 의식불명이 됐던 정아영양이 세상을 떠났다. 아영양의 부모는 태어난 직후 간호사의 학대로 의식을 잃고 힘겨운 투병을 이어 온 아이가 어디선가 살아 숨 쉬길 바란다며 장기기증을 결정, 4명의 또래 아이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30일 아영양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병원 장례식장에는 궂은 날씨에도 아이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온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조문객들은 사진 속 아영양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걷지도, 뛰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아이의 짧은 생을 추모했다. 

빈소에는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과 국민아동학대근절협회 등에서 보낸 조화도 놓였다.

6월30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정아영 양의 빈소에 조문객들이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월30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정아영 양의 빈소에 조문객들이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영양 아버지는 "지난 23일 심정지 판정을 받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며 "아영이에게 벌어진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애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아영양은 전날 부산양산대병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다. 아영양은 하늘로 가는 길에 심장과 폐, 간, 신장을 기증해 또래 환자 4명에게 새 삶을 선물했다.

아영양의 가족은 "아이가 세상에 온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아영이가 어디선가 다른 몸에서 살아 숨 쉬길 바라고 다른 이를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기증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아영 양의 아버지는 딸에게 쓴 편지에서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그 조그만 몸으로 지금껏 온 힘을 다해 버텨줘서 고마워"라며 "다시 만날 때까지 즐겁게 하늘나라 소풍하고 잘 지내고 있어. 사랑해"라고 먼 길을 떠나는 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아영양은 2019년 10월 태어난 지 닷새 만에 산부인과 병원 바닥에 떨어져 무호흡 증상을 보이며 의식불명에 빠졌고, 인공호흡기를 통해 생명을 유지해왔다. 3년 넘게 의식을 찾지 못하던 아영양은 지난 23일 갑작스러운 심정지가 발생했고, 심정지 충격으로 뇌사 상태에 빠져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아영양에게는 6살, 8살 터울의 오빠가 2명 있지만 세 남매가 함께 대화하고, 웃고, 뛰어노는 순간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태어난 직후 산부인과에서 두개골 골절 등 상해를 입고 의식불명으로 지내다 6월29일 하늘로 떠난 정아영양. 아영양은 장기기증을 통해 또래 4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태어난 직후 산부인과에서 두개골 골절 등 상해를 입고 의식불명으로 지내다 6월29일 하늘로 떠난 정아영양. 아영양은 장기기증을 통해 또래 4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한편, 아영이 사건의 가해 간호사 A씨는 올해 5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확정받았다.

업무상과실치상·아동학대처벌법 위반(상습학대) 등 혐의로 기소된 A씨는 2019년 10월 5일부터 같은 달 20일까지 부산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한 손으로 신생아 다리를 잡고 거꾸로 들어 올리는 등 14명의 신생아를 학대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아영양을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바닥에 떨어뜨려 두개골 골절상 등 상해를 입힌 혐의로도 기소됐다. 산부인과 CCTV 영상에는 A씨가 아기들의 다리를 한 손으로 잡고 거꾸로 들어올려 흔들거나 신생아 침대 위로 거칠게 내려놓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다.   

그러나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다른 간호사가 근무하던 시간에 아영양에게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며 자신의 학대로 인한 의식불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2심 재판부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형을 확정했다. 

A씨는 아직까지도 아영양 가족에게 사죄의 뜻을 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영양 아버지는 "A씨는 재판 중 판사 앞에서만 반성한다고 했을 뿐 직접적인 사과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영양의 발인은 다음달 1일이며, 장지는 부산 기장군 철마면에 있는 가족묘에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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