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장 이어 국방부장도? 또 ‘실종’된 시진핑의 최측근 장관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6 10:05
  • 호수 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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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상푸, 2주째 공식석상에서 사라져…친강 때와 판박이
‘숙청’된 로켓군 지휘부와의 연관성 유력

9월6일부터 8일까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동북부의 헤이룽장(黑龍江)성을 방문했다. 9월7일에는 하얼빈공정대학을 찾아 교직원과 학생들 앞에서 연설했다. 시 주석은 “하얼빈공정대학이 좋은 전통을 드높여 강국·강군의 요구에 적극 부응해야 한다”며 “청년 학생이 기술보국(技術報國)의 뜻을 확고히 세워 강국 건설과 민족 부흥의 위업에서 청춘을 빛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얼빈공정대학은 1953년 설립된 인민해방군 군사공정대학을 전신으로 한다. 비록 1994년 일반대로 전환했지만, 중국 7대 군사기술 개발 대학으로 손꼽힌다.

실제로 중국 언론은 “하얼빈공정대학이 선박공업, 해군장비, 해양개발과 핵에너지 응용에서 우수한 전문인재를 육성해 80%의 졸업생이 국방 현대화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렇기에 미국은 2020년 하얼빈공정대학을 거래 제한 명단에 포함시켜 놓았다. 제재 배경은 인민해방군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산 물품을 입수했거나 입수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2018년 비슷한 이유로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올라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바로 리상푸 국방부장(장관)이다.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 리상푸가 6월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
중국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 리상푸가 6월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EPA 연합

시진핑 국방시찰에 동행하지 않은 국방부장

리상푸는 중국이 러시아에서 Su(수호이)-35 전투기와 S-400 방공 미사일 시스템을 구매했을 때 책임자였다. 미국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고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책임을 물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고 있었다. 또한 러시아와 거래한 나라도 같이 제재했다. 리상푸는 인민해방군의 무기 구매와 개발을 담당하는 중앙군사위원회 장비개발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리상푸에 대한 미국 방문비자 발급, 미국 금융 시스템 이용, 미국 내 자산 보유 등을 금지했다. 이런 리상푸를 시 주석은 동행시키지 않은 것이다.

9월8일 하얼빈에 있는 인민해방군 78집단군을 시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방부장인 리상푸가 시찰에 빠진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물론 국방부장은 행정부인 국무원 소속이다. 인민해방군은 국가의 군대가 아닌 당의 군대다. 따라서 이날 시 주석은 국가주석이 아닌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격으로 시찰했다. 하지만 리상푸도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이자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다. 시 주석과의 동행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위치였다.

더욱 주목할 점은 리상푸를 중용한 이가 바로 시 주석이란 사실이다. 리상푸는 인민해방군의 다른 고위 장성과 달리 우주 개발사업에서 주요 경력을 쌓았다. 쓰촨(四川)성 시창의 위성발사센터 주임과 사령관을 역임했고, 달 탐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그렇기에 48세였던 2006년에 별을 달아 소장이 됐지만 10년 동안 승진하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승진 가도를 달린 것은 시 주석이 집권하면서부터다. 2013년 인민해방군 총장비부 참모장이 됐고, 이듬해에는 부부장에 임명됐다. 2016년 전략지원군 부사령관이 되면서 드디어 중장으로 승진했다.

리상푸는 2017년 중앙군사위 장비개발부장으로 영전했고 공산당 중앙위원도 됐다. 2018년에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됐으나 오히려 더 승승장구했다. 2019년에는 최고 장성인 상장으로 진급했다. 그리고 올해 3월, 65세라는 나이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방부장에 임명됐다. 여전히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올라있지만, 시 주석의 신임은 전혀 꺾이지 않았다. 이런 리상푸가 시 주석의 헤이룽장성 시찰에 동행하지 않은 배경을 두고 중국 안팎에서 설왕설래가 오갔다. 9월7일부터 해외의 일부 중화권 매체에서 리상푸 실종설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리상푸가 부정부패와 중대한 기율을 위반한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날엔 람 이매뉴얼 주일본 미국대사가 확인사살을 하듯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처음에는 친강 외교부장, 그다음은 로켓군 사령관, 지금은 리상푸 국방부장이 각각 2주일간 사라졌다. 누가 이번 ‘실업 레이스’에서 승리할까. 중국 청년일까, 아니면 시진핑의 내각일까?”라고 풍자했다. 이매뉴얼 대사의 지적처럼 리상푸는 8월29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평화안보논단에 참석해 발언했다. 그 후 공식 석상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6월25일부터 잠적한 친강에 대해서도 2주가 지난 시점부터 여러 의혹이 불거졌었다. 결국 한 달 만에 외교부장에서 면직되었다. 이번 리상푸도 패턴이 같다. 이매뉴얼 대사의 글이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자, 9월11일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한 외국 기자가 리상푸의 실종설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그런데 마오닝 대변인은 “나는 당신이 언급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이 말은 친강이 사라졌을 당시 외국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던 마오닝 대변인이 “당신이 말한 상황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 답변과 똑같았다.

 

“로켓군 집단부패 혐의로 장성 11명 실각”

그렇다면 리상푸는 왜 실종됐을까? 현재로서는 로켓군 장성들의 숙청과 관련이 있다는 시각이 가장 유력하다. 지난 4월부터 로켓군 지휘부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처음에는 류광빈 로켓군 부사령관이, 6월에는 리위차오 로켓군 사령관과 쉬중보 정치위원이 실종됐다. 그러다가 7월28일 홍콩 언론이 “리위차오·쉬중보·류광빈 등이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기율감찰위원회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3일 후 로켓군 지휘부가 모두 물갈이됐다. 로켓군은 육군·해군·공군·전략지원군과 함께 중국의 5대군 중 하나다.

2015년 말에 핵무기 운용부대로 창설됐지만 시진핑 주석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위상이 급성장했다. 리위차오는 3번째 사령관이었고, 지난해 10월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됐다. 리상푸처럼 시 주석 집권 이후 승진 가도를 달려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최근 수개월 동안 모두 실종되면서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일부 중화권 언론은 “현재 로켓군의 ‘집단부패’ 혐의로 실각한 인민해방군 장성이 11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우주 개발사업과 군사장비 개발에 앞장섰던 리상푸까지 사라진 것이다.

본래 시 주석은 사회주의정권 수립 100주년인 2049년까지 미국과 대등하거나 미국을 능가하는 현대화된 군사 강국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밝혔다. 그에 따라 미국의 전략사령부를 벤치마킹해 로켓군을 창설했다. 또한 중국 최대의 무기 생산 및 공급 업체인 중국병기공업그룹 사장을 역임한 장궈칭을 차세대 지도자로 끌어올렸다. 1964년생인 장궈칭은 시 주석 집권 이전에는 군수기업에서만 일했던 엔지니어다. 그런데 2013년에 충칭시 당부서기가 됐고 2017년 시장으로 승진했다. 2020년에는 랴오닝성 당서기로 영전했다.

지난해 11월 20차 당대회에서 중앙정치국에 진입했고, 올해 3월에는 부총리로 승진했다. 군사 강국을 위해 관련 인재를 거침없이 등용하겠다는 시 주석의 의도를 보여준다. 리상푸도 같은 선상에 있었다. 게다가 미국의 제재에 물러서지 않고 맞서겠다는 의지를 과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국방부장으로 임명된 지 반년 만에 친강처럼 ‘실종’됐다. 둘 다 시 주석의 낙점을 받아 동시에 입각한 각료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 중화권 매체는 “오직 시진핑 1인에 의한 장기 통치체제가 중국 전체에 온갖 리스크를 안겨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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