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나만의 변칙 루틴으로 ‘정답 아닌 정답’을 찾는다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4 11:05
  • 호수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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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미집》에서 ‘광기의 감독’ 열연한 배우 송강호

배우 송강호가 제76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비경쟁 부문 초청작인 《거미집》에서 기필코 걸작을 만들고 싶은 ‘김감독’ 캐릭터를 맡아 열연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연출을 맡은 거장 김지운 감독과는 《조용한 가족》 《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에 이어 다섯 번째 호흡을 맞췄다.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으로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영화다. 송강호는 극 중 김감독 역할로 분해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뒤엉킨 캐릭터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만으로도 한국 현대 영화사가 되는 송강호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인간적인 매력과 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수식어가 필요 없는 연기를 선보여 왔다. 김지운 감독을 비롯해 박찬욱 감독, 봉준호 감독 등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페르소나로 영감을 줬던 배우이기도 하다.

김지운 감독은 “송강호는 촬영 현장에서 모든 것을 꿰뚫고, 현장의 공기까지 다루는 배우다. 그런 그가 자기 일에 대한 광기와 표현의 독창성을 갖춘 ‘김감독’ 역의 완벽한 적역이라고 생각했다”고 캐스팅 이유를 전했다. 송강호는 “《거미집》은 지금까지 보아온 영화 시나리오가 아닌 것 같았다. 형식과 내용 모두 신선해서, 새로운 영화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송강호를 필두로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장영남의 변신과 호연 등 신선한 앙상블이 기대되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 《거미집》은 이번 추석에 개봉될 예정이다. 개봉 직전 송강호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나 《거미집》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근황을 들었다.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거미집》의 매력은 무엇인가.

“팬데믹을 거치면서 OTT를 비롯해 다양한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지만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와 매력을 가진 작품은 분명히 있다. 그런 작품이 그리웠고, 또 그런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거미집》은 대중적이지만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십분 발휘되는 작품이다. 그게 가장 기쁘다. 흥행은 둘째 문제다.”

장르적으로 신선하다.

“한국 영화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장르다 보니 호기심과 매력을 느꼈다. 괴기스럽지만 종합세트 같은 장르라고 해야 할까. 피상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욕망과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간 군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감독’이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해석했나.

“일류 감독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다. 열등감이 있어 끊임없이 자기의 능력을 의심하고 좌절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도 그렇지 않나. 어떤 특정한 영화감독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보편적인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갔나.

“특별히 어떤 감독의 버릇이나 스타일을 스케치하지는 않았다. 김열이라는 사람의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 거창하게 표현하기보다는 한 땀 한 땀 나름대로 만들어갔다. 대부분의 감독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드러내고 싶었다. 예를 들어 촬영장에서 혼자 주문을 거는 모습이라든지,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는 장면은 모든 감독이 대체로 하는 행동들이다. 그게 감독의 역할이지 않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희로애락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광기 어린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것만큼은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김지운 감독의 모습에서 착안했다. 과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촬영할 때였는데 사실 그때는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패닉에 빠져 있었다. 중국 사막에서 100일 동안 촬영했는데, 내일은 무조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분량은 많고 시간은 없고 위험한 장면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김지운 감독은 그 모든 노력을 필름에 담기 위해 광기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스스로도 인정한 부분이다. 하하.”

김지운 감독과는 무려 5번째 작품이다.

“한결같은 사람이다. 한결같이 집요하고 진중하고 침착하다. 그래서 참 좋다. 그런 집요함이 있기에 김지운만의 스타일, 그러니까 김지운만의 영화적인 미장센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거미집》은 ‘감독의 예술’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김지운 감독의 취향이 작품 전체에서 묻어난다.

“맞다. 로케가 아니라 세트장에서 이뤄진 작품이라 정교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래서 김지운이라는 거장의 손길과 감각이 더 중요했던 작품이다.”

극 중에서 바뀐 대본에 맞춰 재촬영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가 나온다.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있지 않나.

“난 최선을 다했는데 왜 다시 찍지? 내 해석이 틀렸나? 왜 내 연기에 감독이 갸우뚱거리지? 실제로도 당연히 있는 일이다. 결국 배우는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감을 잡아야 한다. 더 사실을 말하면, 대화를 통해서는 한계가 있다. 그 대화는 약간의 소스일 뿐이다. 진짜 해답은 배우 스스로 찾아야 한다. 연습 혹은 고민을 더 처절하게 해야 한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김감독’이라는 캐릭터를 해석할 때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은 무엇인가.

“캐릭터보다는 《거미집》이라는 작품이 관객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던 목적에 내가 부합하고 있는지를 고민했다. 앙상블 연기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배우들과의 리듬감, 동선이 중요하다. 그 앙상블이 잘되고 있는지를 질문했다. 그 속에 김감독이라는 캐릭터가 있을 뿐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송강호라는 배우의 오리지널리티는 무엇인가.

“후배들이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내 대답은 늘 그렇다. ‘정답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정답을 적으면 안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머릿속에 있는 정답을 적으면 정답은 맞는데 감동이 없다는 의미다. 모르는 답을 적어내야 하는데, 그게 또 정답이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이건 언젠가 박찬욱 감독님이 저와 관련된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정답이 아닌 정답을 적어냈는데 알고 보니 정답보다 더한 정답이었다.’ 김지운 감독은 오래전에 제 연극을 보고 “께름직하다”는 표현을 하더라. 내가 알고 있는 걸 보여줘야 께름직하지 않는데 예상치 못한 얘기를 하니까 께름직한 거다. 결국 ‘김지운의 께름직함’과 ‘박찬욱의 정답 아닌 정답’이 같은 의미일 것이다.”

송강호만의 연기 루틴이 있을까.

“종합적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순간부터 시나리오를 보고 분석하고 고민을 하는 단계를 밟는 게 아니라 불규칙적인 루틴이 생긴 것 같다. 그 불규칙적인 루틴조차 규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변칙적이다.”

송강호라는 배우는 한국 영화의 자부심이다.

“과찬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예술가의 본질이 정답이 아닌 정답을 찾는 과정이다. 알고 있는 정답을 내밀었을 때 관객들이 고개는 끄덕이지만 감동은 없다. 영화가 끝난 후 가슴을 울리진 않는다. 정답 아닌 정답을 찾는 과정이 나한테 연기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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