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發 태풍에 대만 총통 선거 판세 지각변동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3 10:05
  • 호수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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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中’ 라이칭더의 선두 질주 속, ‘親中’ 궈타이밍 전격 출마 선언
중국, 경제 압박으로 대만 총통 선거 개입

8월28일 궈타이밍 폭스콘 창업자가 내년 1월에 치러질 대만 총통 선거에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궈타이밍은 2020년 총통 선거에도 국민당 경선에 참여했다. 하지만 2019년 경선 과정에서 경쟁자인 한궈위에게 큰 격차로 패배했다. 경선 직후 국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는 소문이 떠돌았으나,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폭스콘에 복귀했다. 폭스콘은 지난해 매출액이 6조6300억 대만달러(약 274조원)에 달하고, 순이익은 1414억 대만달러(약 5조8480억원)를 달성한 대만 최대 IT 기업이다.

특히 세계 최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로, 전 세계 아이폰 출하량의 70%를 담당하고 있다. 1974년에 폭스콘을 창업한 궈타이밍은 대만 최고 갑부 자리를 수시로 꿰찼다. 이런 재력에도 궈타이밍은 대만을 구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대만 내 대표적인 친중(親中)주의자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이 평화롭게 지내면서 언젠가 통일해야 한다는입장도 갖고 있다. 이런 궈타이밍 입장에서 보면 현 시국은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대만 독립 성향이 강한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의 독주가 좀처럼 꺾이지 않기 때문이다. 라이칭더는 지난 4월 총통 후보로 지명된 이래 30%대 중반의 지지율로 선두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에 반해 5월 국민당 후보로 지명된 허우유이는 민중당 후보인 커원저와 2위 다툼을 벌이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궈타이밍은 민진당 8년 집권에 대한 대만인들의 피로감이 상당한 현실을 직시해 국민당 경선에 참여했다. 하지만 당내 기반이 약한 데다 탈당한 전력이 있어 주류 세력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8월 하순 총통 선거 레이스에 변화의 조짐이 일어났다. 그동안 완주를 다짐했던 커원저가 “가장 개방적인 태도로 다른 당과 합의할 수 있다”며 야권 후보의 연대나 단일화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커원저는 무소속으로 수도 타이베이 시장 연임에 성공한 후 2019년 민중당을 창당했다. 당초 커원저 원맨 정당이었던 민중당은 생존 여부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2020년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 5석을 획득하면서 대만 내 제3정당으로 등극했다. 2022년 전국지방선거에서는 2명의 시장과 현장을 당선시키며 기염을 토했다.

ⓒAFP 연합
9월14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만 총통 후보인 궈타이밍(왼쪽)이 러닝메이트인 라이페이샤 부총통 후보와 함께 인사하고 있다. ⓒAFP 연합

‘민진당이냐 反민진당이냐’로 급속히 양분

이런 여세를 몰아 커원저는 총통 선거에 출마했다. 커원저는 같은 달 함께 등판한 허우유이를 앞서 나갔다. 심지어 지난 6월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라이칭더까지 제치는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후 커원저의 기세는 점차 꺾이고 말았다. 한때 허우유이가 커원저에게까지 밀리면서 국민당 내 일각에선 “궈타이밍으로 후보를 교체하자”는 요구가 나왔으나, 7월 하순 허우유이의 출마를 확정 지었다. 그러자 허우유이의 지지율은 조금씩 상승했고 8월 중순 커원저를 넘어섰다. 신생 정당인 민중당의 거품이 꺼지면서 국민당의 전통 지지자들이 허우유이에게 몰리는 흐름이 뚜렷이 나타났다.

이 같은 위기감 속에서 커원저는 야권 후보 연대나 단일화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며칠 후 궈타이밍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야권은 혼란에 빠졌다. 비록 궈타이밍이 현재는 단기필마에 불과하지만, 막강한 재력과 명확한 정치이념을 갖고 있다. 당장 양안이 통일하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고 중국과 평화롭게 지내면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이런 궈타이밍의 생각은 현재 절반으로 쪼개진 대만 민심의 한쪽 편을 대변한다. 총통 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만인들은 ‘민진당이냐 반(反)민진당이냐’로 급속히 양분되고 있다.

이는 대표적인 여론조사기관 대만민의기금회가 매달 발표하는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30%대에 머무르던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율은 갈수록 탄력을 받고 있다. 8월에는 48.8%로 올해 최고치다. 집권 민진당도 마찬가지다. 6월에 24.6%까지 떨어졌다가 7월에 반등하더니 8월에는 36.8%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8월 이래 최고치다. 그뿐만이 아니다. 9월1일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대만의 독립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48.9%로 지난 수년간 최고치다.

ⓒ대만 중앙통신사
대만 집권 민진당 총통 후보인 라이칭더 부총통 ⓒ대만 중앙통신사

중국, 대만과의 경제협정 중단 가능성 시사

이렇듯 최근 대만 민심이 민진당으로 쏠리는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중국이 대만을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고립시키면서 이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감이 커졌다. 지난 8월에 라이칭더 후보가 파라과이 대통령의 취임식에 부총통과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이 과정에서 중간 기착지로 미국을 방문하자 중국은 비난을 쏟아부었다. 라이칭더의 방미를 전후해 중국은 육해공군을 총동원해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대만해협에서 벌였다. 8월의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중국의 외교적·군사적 압박 이후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대만 고립 행보는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9월11일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은 “대만 독립에 반대하는 외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대만 고립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와중에 친중 성향인 궈타이밍이 전격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그로 인해 대만 내 일각에서는 “중국이 라이칭더를 떨어뜨리기 위해 궈타이밍의 출마를 부추긴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궈타이밍의 파괴력은 아직은 찻잔 속 폭풍에 머무르고 있다. 9월14일 ‘메이리다우전자보’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궈타이밍은 9%에 그쳤다. 라이칭더는 36.6%를 얻었고 허우유이가 19.9%, 커원저가 17.7%였다. 9월18일 ‘CNEWS’의 여론조사에서는 궈타이밍이 조금 오른 13.7%였다. 라이칭더는 28%, 커원저는 22.6%, 허우유이는 16.3%였다.

하지만 총통 선거까지 4개월이 남은 데다, 야권 내에서 논의되는 연대나 단일화라는 정치 이벤트가 남아있다. 3명으로 갈라진 야권 후보가 단일화되면 현재 선두인 집권여당의 라이칭더 후보를 이긴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향후 정국의 또 다른 키를 쥐고 있다. 9월4일 중국은 대만과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 대만 기업들은 만약 ECFA가 중단되면 경영에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한다. 따라서 허우유이와 커원저는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대만의 공통된 인식”이라며 다른 한쪽 편의 대만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야권 전체의 지지율이 50% 안팎이고, 양안 관계의 현상 유지를 바라는 비율도 38.7%에 달한다. 중국은 대만 고립을 향한 공세적 압박이 오히려 대만인들의 반감만 불러일으키는 현실을 인식해 경제 문제로 이슈를 전환한 것이다. 이런 태세 변화에 주파수를 맞추듯 궈타이밍도 민생을 계속 부각시키고 있다. 지난해 2.35%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던 대만은 올 상반기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 전체 전망도 1.6%로 어둡다. 궈타이밍의 출마의 변은 “경제난에 빠지는 대만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대만의 현실이 총통 선거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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