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투자가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30 11: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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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에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불거지며 금 가격 급등…투자 리스크 존재하는 만큼 ‘묻지마 매입’ 자제해야

지난 10월23일,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16년 만에 처음으로 5%를 넘어섰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는 전 세계 자산 가격의 기준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 10년물 수익률이 5%를 넘어선 것은 2007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안전자산의 대표 격인 미국 국채는 국제적인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수요가 집중되면서 수익률이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도 국채 수익률이 높아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기준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이 낮다고 투자자들이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기는 여전히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고용시장 역시 예상을 깨고 견조한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기준금리가 꽤 오랫동안 높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발발한 이-팔 분쟁으로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안전자산인 금값이 급격하게 치솟고 있어 주목된다. ⓒ연합뉴스

미국 국채 투자자들 큰 손실, 왜?

미국 정부의 대규모 재정적자도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를 줄어들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연간 2조 달러에 육박하는 재정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이전보다 더 많은 국채에 의존해야 하는데, 발행 규모가 수요를 초과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미국 국채를 사줄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확산되면서 국채 수익률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미국 국채의 이런 흐름은 대서양 너머로 이어져 독일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2.96%까지 상승했다. 영국 국채 10년물 역시 4.37%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리 인상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조만간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로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는 큰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장기국채 3배 레버리지 상품에 베팅하기도 했는데, 이들 투자자는 회복 불능 수준의 타격을 입고 있다.

지정학적 혼란과 함께 국채 수익률 상승이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와중에 금 가격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이후 금 가격은 온스당 10% 급등한 1996달러까지 상승하면서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국채 수익률이 높아지면 보유에 따른 수익률이 0%인 금의 매력이 감소하면서 금 가격은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최근의 흐름은 이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금 가격의 상승은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때문으로 풀이되지만,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후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 과정에서 중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의 중앙은행은 달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대규모 금 매입에 나서면서 금 가격을 떠받쳐 왔다. 2023년 2분기 들어 중앙은행의 금 매입 수요는 둔화하고 있지만, 개인과 기업의 금 구매 수요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수요 증가는 정식 금거래 시장 이외의 장외시장(OTC)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구매자가 은행 또는 금 정련소와 직접 거래해 금을 사들이는 거래는 불투명하기 때문에 정확한 추세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전반적인 경향은 분명히 금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금 가격 상승에 튀르키예가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2023년 5월 금 가격은 온스당 2072달러로 사상 최고치에 육박했다. 만약 튀르키예 중앙은행이 외환 부족 문제를 이유로 대규모 금 매도에 나서지 않았다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을 것이다. 6월 이후 튀르키예 개인과 기관의 대규모 금 매입 수요가 나타나면서 전체 시장을 상승세로 이끌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2023년 상반기에만 103톤의 금을 매수하면서 8개월 연속 금 매수세를 이어갔으며, 싱가포르와 폴란드 중앙은행 역시 대규모 금 매입에 나서면서 금 수요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일본의 개인들이 금 매입에 나서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지속적인 엔화 약세로 자산 가치가 하락할 것을 우려한 일본의 투자자들이 금 매입에 나서면서 일본의 금 소매가격은 18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가계가 보유한 자산은 2000조 엔에 이르지만, 절반은 현금과 예금으로 인플레이션에 취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달러당 엔이 155엔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면서 자산 가치 하락을 우려한 일본 개인들이 가장 손쉬운 헤지 수단인 금 매입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익보다는 리스크 헤지용으로 금 투자해야

하지만 금 투자에는 몇 가지 리스크가 있다. 첫째, 금은 급등 후 장기 하락을 지속하는 경향을 보인다. 1970년대 후반부터 반복되는 이런 경향으로 인해 ‘매수 후 보유’ 전략을 취한 투자자 대부분이 손실을 기록했다. 둘째, 금은 완벽한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플레이션 상황 속에서 금 보유는 손실을 줄이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배당이나 이자를 제공하지 않는 금의 특성상 이익을 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국내 금 투자자의 경우 달러 환율도 신경 써야 한다. 우리가 거래하는 금은 달러로 표시되는 국제시세에 연동된다. 일반적으로 달러 가치 하락 때 금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고려해 보면 실제 금 가격 상승분이 그대로 이익으로 실현되기는 곤란한 것이다.

고금리 상황의 지속은 채권과 주식시장 모두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연 7% 수준의 예금이자를 기대할 수 있다면 리스크를 감내하며 변동성 있는 자산에 투자하고 싶은 욕구는 대폭 감소하기 때문이다.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는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는 압력을 겪어왔다. 하지만 전체적인 금융 상황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강박적인 투자에 나서는 것은 위험천만하다고 볼 수 있다. 금은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존재지만 이를 통해 큰 이익을 기대하기보다는 리스크를 경감시키는 보완재로 여기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방향이 보이지 않으면 쉬어 가는 것도 좋은 투자라는 마음으로 섣부른 판단보다는 상황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관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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