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사고에 ‘페달 블박’ 설치가 대책? “車 제작사 눈치보기”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10.3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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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 의심 사고 올해 9월까지 21건…지난해 15건 이미 앞질러
“강제성·제조사 부담 없는 논의 이뤄져…개선안 마련해야”
지난해 12월 일어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당시 모습 ⓒ강릉소방서 제공
지난해 12월 일어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당시 모습 ⓒ강릉소방서 제공

반복되는 급발진 의심 사고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과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국토교통부가 차량 제작사에 엑셀 등 페달용 블랙박스 설치를 권고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국토부의 대책이 강제성 없는 권고 및 선택사항이라, 자동차 제작사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관련 개선안 및 주요 논의 결과’에 따르면, 국토부는 소비자가 차량을 구매할 때 페달용 블랙박스 장착을 옵션화해 선택할 수 있도록 제작사에 ‘권고’할 예정이다.

페달용 블랙박스는 엑셀과 브레이크 사이 공간에 영상 장치를 설치해 실제 브레이크가 작동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해당 권고는 강제성이 없어 현장에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업계는 “가격 등을 이유로 소비자가 옵션 판매에 공감할지 의문”이라며 영상은 보험사에 유리한 측면이 있으므로 보험료 인센티브로 장착을 유도하고, 제작사는 소비자에게 블랙박스 제조·판매자를 연결만 해주는 게 최선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허 의원은 이른바 ‘사제 블랙박스’ 장착은 지금도 소비자들이 사비를 들여서 하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국토부와 업계가 논의한 결과는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이거나, 이전과 비교해 변화가 없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곧 차량 결함 원인 입증책임을 소비자에서 제작사로 전환하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용 곤란’ 입장과도 크게 기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사고기록장치(EDR) 기록항목 확대 방안’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급발진 의심 사고 입증을 위한 핵심 항목인 ‘마스터 실린더 제동 압력’을 선택항목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선택항목은 의무적으로 기록해야 하는 필수항목과 달리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

개정된 국제 기준에 따라 현재 15개에 불과한 EDR 기록 필수항목을 55개로 확대하겠다는 방안에 대해서는 제작사들이 특별한 이견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자동차 제품 특성상, 국제 기준과 동기화하는 게 제작사에도 충분한 유인이 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손자를 잃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된 60대 할머니가 지난 3월20일 첫 경찰조사를 마치고 경찰서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손자를 잃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된 60대 할머니가 지난 3월20일 경찰조사를 마치고 경찰서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핵심 대책으로 논의 중인 내용이 제작사에 아무런 부담도, 강제력도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최근 늘어나고 있는 급발진 의심 사고에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허 의원이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최근까지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는 787건이다. 올해는 9월까지 21건을 기록해 지난해 15건을 이미 앞질렀다.

앞서 지난해 12월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차량의 EDR을 감정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최근 현행 제도 아래서는 충분한 자료 확보가 불가능해 조사에 한계가 있다며,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허 의원은 급발진 진상 규명을 위해 관련 기록 자료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국토부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며, 이렇게 확보된 자료를 제작사 등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제출 거부하는 일이 없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허 의원은 “개선안이 이대로 추진된다면 국토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기업이 느낄 부담에 더 마음을 쓴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국토부는 지금부터라도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나 관련 분야의 전문가 등과 적극협의해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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