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지켜보고만 있는 이란, 그 속사정은 ‘경제난’
  •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18 10:05
  • 호수 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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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이란 레바논·시리아 등도 마찬가지…하마스 위해 총 들 여력 없어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중 하나인 가자지구를 장악한 이슬람 무장 정파 하마스가 10월7일 이스라엘 민간인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이번 주로 40일을 넘겼다. 이스라엘의 보복공습과 지상작전으로 가자지구에선 인도주의적 재앙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주목받는 중동 국가는 단연 이란이다. 이란은 중동 지역 반미·반이스라엘 연대의 정신적·물질적 지주이자 이를 주도하는 이슬람 시아파 국가들의 중심축이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들어선 이란의 신정체제는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정도로 강경하다. 2005~13년 대통령을 지낸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등 대학살)에 대한 옹호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을 정도다.

ⓒUPI 연합
 11월11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이슬람협력기구(OIC) 정상회의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대화하고 있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앞줄 왼쪽) ⓒUPI 연합

후티 반군의 공격, 사실상 이란 대리한 것

따라서 국제사회는 이란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현재 이란은 독설로 가득한 이스라엘 비난 성명 외에 구체적인 행동에는 아직 나서지 않고 있다. 사실 이란은 경제난과 지난해 히잡 시위 등으로 내정이 불안한 게 사실이다. 젊은이 중에는 정권이 쿠드스군을 앞세워 혁명 확산에 나서는 데 부정적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

게다가 이란은 아랍어가 주류인 중동에서 튀르키예와 더불어 비아랍어 지역 중 하나다. 언어·문화·이슬람 종파(시아)에서 중동의 비주류에 해당한다. 설사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작전에 나선다 해도 동참할 아랍 국가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란이 행동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배경은 경제다. 이란은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다. 2023년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3664억 달러로 세계 42위다. 1인당 GDP는 4234달러로 세계 120위 수준이다. 이란이 주요 석유·가스 수출국임에도 이렇게 경제력이 허약하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이는 핵 개발에 따른 오랜 국제 제재로 주요 자원인 석유와 가스를 제대로 팔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 하마스를 위해 총을 드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방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신경을 쓰는 또 다른 이유는 이란이 ‘시아파 초승달 지역’으로 불리는 중동의 예멘·이라크·시리아·레바논에서 여러 정권과 무장 정파를 대리인으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아라비아반도 남서부 예멘의 소수(인구의 약 35%) 시아파인 후티 반군, 레바논의 소수(약 32%) 시아파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 범시아파로 분류되는 시리아 소수 알라위파(약 10%)의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의 중앙정부도 이란과 돈독한 사이다. 이란은 이들에 대해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따라서 이들을 간접 활용해 대리전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목할 것은 예멘의 후티 반군이다. 2014년 이후 예멘 정부군·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 이뤄진 수니파 연합군에 맞서 내전을 치러온 후티 반군은 이란이 제공한 걸로 보이는 탄도미사일을 1000km쯤 떨어진 사우디 수도 리야드 등으로 수시로 발사하고 있다. 특히 후티 반군이 10월27일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중간에 미군과 사우디군에 의해 요격됐다. 후티 반군은 10월31일엔 드론 공격에 나섰다가 이스라엘 측에 격추됐으며, 11월1일에도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발표했고 앞으로도 공격을 계속하겠다고 공언했다. 예멘에서 이스라엘 최남단 항구인 에일라트까지는 거리가 1800km쯤 된다. 후티 반군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드론 공격 시도는 사실상 이란을 대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란의 대리전이 이스라엘 코앞까지 다가온 셈이다.

사우디는 후티 반군이 쏜 탄도미사일을 미국산 패트리엇 미사일 시스템 등으로 요격해 왔다. 하지만 미국산 미사일은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들여올 수 있어 사우디의 인권 등을 문제 삼는 미 행정부와 의회의 태도에 따라 수급이 불안정하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한국산 미사일 요격미사일인 천궁-Ⅱ 도입에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어떤 우발적 상황 벌어질지 예측불허 전망도

이스라엘과 국경이 맞붙은 레바논과 시리아도 이란의 세력권이다. 이란에는 정규군과 혁명수비대 두 개의 군대가 있다. 이 가운데 혁명수비대 소속 해외특수공작부대인 쿠드스(예루살렘)군은 해외에서 이란 혁명의 확산과 주변 국가의 시아파 정권 및 무장 정파를 지원한다. 실제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와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한다. 일부 쿠드스군은 이스라엘 국경이 빤히 보이는 곳에 주둔하고 있다.

하지만 레바논은 2020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 이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크게 떨어진 상태이고 경제난도 계속 가중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레바논은 마론파·동방정교·가톨릭 등 기독교도와 수니파·시아파 무슬림, 그리고 드루즈교 신자가 공존하는 다종교·다종파 사회다. 이에 따라 1944년 독립 이후 서로 다른 종교·종파가 정부 요직을 나눠 맡는 종교연합 체제를 유지해 왔다. 1975~90년 내전 이후 사우디 주선으로 이뤄진 타이프 조약으로 이를 더욱 강화했다. 이런 상태에서 레바논이 일사불란하게 반이스라엘 행동에 나서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아무리 이란이 쿠드스군을 움직여 헤즈볼라에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을 주문해도 행동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시리아도 마찬가지다.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은 오랜 내전으로 군사력과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다. 이스라엘을 상대로 정규군으로 위협하기도, 이웃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기도 여의치 않다. 게다가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빼앗은 점령지 골란고원에서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불과 60km 남짓이라는 점도 알아사드의 운신의 폭을 제한한다. 시리아의 일부 민병대는 아직 골란고원 경계선 너머로 박격포나 로켓을 쏘면서 무력시위를 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이 이스라엘의 북부에서 군사행동에 나서 이스라엘군이 두 개의 전선에서 분리돼 싸우게 할 수 있다는 일부의 관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다. 그들의 능력과 상황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10월27일 미군 전투기가 시리아 동부의 친이란 기지를 공격한 것은 이들의 작전 능력을 제한하면서 경고 메시지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시리아에는 러시아 공군기지와 해군 보급창도 있어 자칫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사태와 중동 지역 내 이란의 대리인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 예측불허라는 이야기다. 이런 불확실성이 중동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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