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분노가 띄워올린 ‘괴짜 인물’, 아르헨티나를 바꿀 수 있을까
  • 정덕주 남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5 12:00
  • 호수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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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이 대통령 당선인, 노동자 아들로 태어나 미혼에 가족은 개 4마리
“국가 재건” 외치지만 첩첩산중 난제들 너무 많아

현지시간으로 11월19일 실시된 아르헨티나 대선 결선투표에서 극우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당선됐다. 소수 야당인 ‘자유전진당’ 대표인 그는 총 24개 자치권(23개 연방주+부에노스아이레스 연방수도) 중 21군데에서 승리를 거뒀다. 당초 팽팽하리라던 예상을 뒤엎고 55.69%의 득표율로 집권당 후보인 중도좌파 성향의 세르히오 마사(현 재무장관)를 10%포인트 넘는 큰 격차로 누르고 12월10일 차기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11월19일 실시된 아르헨티나 대선 결선투표에서 극우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당선됐다. 사진은 9월12일 아르헨티나 라플라타에서 열린 집회에서 전기톱을 휘두르고 있는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 ⓒAP 연합

비주류 극우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인기 얻어

197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밀레이는 자신을 “노동자 부모를 뒀으며, 아버지는 버스운전사, 어머니는 주부”라고 소개한다. 축구를 좋아해 청소년 시절에 축구클럽에서 골키퍼로 활동했고, 영국의 록밴드 롤링스톤스 마니아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1989년 아르헨티나를 강타한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후 경제학도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경제학 석사이기도 하다.

혼란스러운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에서 극자유주의 경제 사상으로 중무장한 그는 다소 격한 말투와 기이한 행동을 하며 언론에 출연해 경제학자로서 인기를 쌓아갔다. 경제학자로서뿐만 아니라 그의 사생활도 자신을 세간에 널리 알리는 데 한몫했다. 싱글인 그는 자식들이라 칭하는 대형견 잉글리시 마스티프 4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개들은 전부 그가 존경하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머레이 로스바드, 로버트 루카스 등의 이름을 가졌다. 미혼이기에 여동생 카리나 밀레이가 영부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해 왔지만, 최근 들어 배우 겸 가수·MC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약하고 있는 파티마 플로레스와 연애를 시작해, 둘이 자주 언론매체에서 다정한 스킨십을 보이곤 한다. 국민은 임기 동안 영부인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고 있다.

TV 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그는 2020년 8월 차기 대선 출마 선언을 후보자 중 최초로 했으며, 이듬해 자유전진당을 창립했다. 당시 러닝메이트인 빅토리아 비자루엘 부통령 후보와 함께 하원의회에서 단 2석을 차지했다. 비주류, 극소수 정당의 창립자에서 불과 2년 만에 그는 이변을 일으켰다. 전기톱을 휘두르는 등 기행을 선보이며 SNS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캠페인을 주도해, 대선후보 필터링이었던 지난 8월 예비선거(PASO)에서 30%가 넘는 최다 득표율을 기록해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비록 지난 10월 본선 투표에서는 29.99%를 득표해 36.78%를 얻었던 마사 후보에게 밀렸지만, 1·2위 후보가 맞붙는 결선투표에서 집권당 마사 후보를 누르고 2027년까지 혼란의 아르헨티나 수장이 된다.

결선 결과가 발표된 직후 밀레이는 “오늘부로 아르헨티나의 쇠퇴가 끝나게 된다. 그리고 오늘부터 아르헨티나의 재건이 시작된다”는 당선 소감을 밝혔다.

그간 아르헨티나는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대통령들이 번갈아 나라를 이끌면서 정치·사회·경제 위기를 맞자 국민의 반감과 불만이 극에 달했다. 결국 국민이 기존 정치인들을 외면하면서, 밑도 끝도 없이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난 밀레이 후보를 적극 밀어주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페널티 투표’(voto de castigo)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만성적인 국가 위기는 사회 불안과 치안 부재를 불러일으켰고, 심각한 경제난이 소비를 위축시켰으며,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쳐 아르헨티나는 그간 총체적 난국의 경제위기를 겪었다.

그런데다 정부는 사회 소요 사태만을 예방하기 위해 무분별한 복지 지원금을 남발해 재정적자를 더욱더 악화시켰으며, 인플레이션을 증가시켜 왔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얇게 만드는 연간 인플레이션이 최고 140%대에 이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국민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지쳐 ‘오늘이 가장 싼 날’이라는 말도 만들어내며, 월급을 받는 대로 소비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다.

 

‘공무원 감축’ ‘달러 화폐화’ 등 기존의 틀 깬 공약에 청년들 열광

이런 시기에 밀레이가 내건 공약인 불필요한 행정부 폐쇄, 공무원 감축, 중앙은행 폐쇄, 공기업 민영화 및 달러화 추진은 불만에 찬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로 인해 밀레이의 인지도는 높아져 갔고 특히 젊은 층의 지지와 열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통화신용 정책과 물가 안정 기능에 실패한 중앙은행 ‘폭파’를 외치며 그는 “1946년 중앙은행의 국유화 이후부터 인플레이션은 250%(1946~91년)에 이르렀다. 정직한 아르헨티나인들을 강탈하는 메커니즘”이라며 중앙은행 기능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출하고 있다. 중앙은행 폐쇄는 자신에게 ‘도덕적 의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는 아르헨티나 화폐인 페소 대신 달러 사용을 주장했다. 지금 아르헨티나에선 정부 공식 환율, 중앙은행 환율, 관광객 환율, 크립토 환율, 호화세 환율 등 무려 13개가 넘는 환율이 난무해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그리고 공기업 민영화, 공공 지출 및 세금 절감과 국가 공공사업의 민간 주도, 복지 지원금 철회 등이 그가 내건 주요 공약들이다.

월스트리트에 상장된 아르헨티나 주식은 밀레이의 결선투표 승리 이후 15~38%까지 급등하고 있다. 차기 국가원수에 대한 기대감이 아르헨티나 해외 상장 주식에까지 파고든 셈이다. 또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밀레이에게 축하를 전하며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안정을 보호하기 위한 탄탄한 계획”을 위해 그의 행정부와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재건을 외치는 ‘남미의 트럼프’ 밀레이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도 현지에는 많다. 140%가 넘는 인플레이션, 40%에 이르는 빈곤층, 바닥이 드러난 정부 재정을 언제 어떻게 재건할 수 있을 것인가가 의문이다. 또한 페론 정권이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필수 생필품 물가 동결 정책’도 밀레이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유지가 불분명해지게 됐다. 이 정책을 폐지할 경우 생필품에서조차 인플레는 살인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또한 연금과 빈민층 지원금 등 다양한 소셜 플랜 형태로 인구 10명 중 6명에게 혜택이 가는 정부 지원금이 차기 대통령 취임과 함께 축소 및 철회된다면 그에 따른 데모와 약탈 등 사회적 소요가 발생할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예상하고 있다. 현재 아르헨티나 국회의 상원 72석 중 7석, 하원 257석 중 38석만을 차지하고 있는 자유전진당 소속의 밀레이 차기 대통령은 의결 정족수와는 거리가 멀고 각 법안을 다룰 때마다 거대 야당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더불어 그의 공약 중 극자유경제주의에 입각해 내놓은 신생아, 신체 장기, 마약 및 총기 매매 허용 등은 가톨릭의 나라인 아르헨티나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아르헨티나 국민은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를 집중시켜 결국 밀레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는 먼저 아르헨티나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고 내수 경제를 안정시켜야 하며, 동시에 외채 협상을 진행해야 하고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바닥난 국고도 채워가야만 한다. 그 앞에는 그야말로 난제들만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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