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최초의 KBO 타자’ 향한 이정후의 도전
  • 김형준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25 13:00
  • 호수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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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투수 류현진과 성공한 수비수 김하성에 이어 성공한 타자 목표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 넓은 수비 범위에 MLB 관심 대단

오타니 쇼헤이(29)가 세계 최고가 된 일본에서는 일본프로야구(NBP) 최고의 에이스인 야마모토 요시노부(25)가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도전한다. 일본 최고 에이스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2014년 다나카 마사히로 이후 10년 만이다.

대한민국도 한국프로야구(KBO) 최고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25)다. 이정후급 선수의 진출은 2013년 류현진 이후 11년 만이다. 2015년 강정호의 성공은 2016년 박병호와 김현수의 진출을 불러왔다. 하지만 둘은 성공하지 못했고 한국 타자의 진출은 중단됐다. 2021년에 진출한 김하성(28)은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올해 김하성이 따낸 최고의 수비상(골드글러브)은 아시아 내야수로는 최초였다. 하지만 이정후의 도전은 김하성과 결이 다르다.

김하성이 메이저리그에서 수비로 성공한 첫 번째 한국인 선수라면, 이정후는 방망이로 성공해야 한다. 성공한 투수(류현진)와 성공한 수비수(김하성)에 이어 공격으로 성공하는 첫 번째 KBO리그 출신이 되는 게 이정후의 목표다.

2023년 5월19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키움 이정후가 1회초에 러셀의 적시타 선취득점을 올리고 더그아웃에서 이동하고 있다. ⓒ
2023년 5월19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키움 이정후가 1회초에 러셀의 적시타 선취득점을 올리고 더그아웃에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욕 양키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 거론

막 시작된 메이저리그 스토브리그에서 이정후의 인기는 대단하다. ‘팬그래프’는 이정후의 계약을 4년 6000만 달러, ESPN은 5년 6300만 달러, ‘트레이드루머스’는 5년 5000만 달러로 각각 예상하고 있다. 이는 김하성의 4년 2800만 달러를 크게 넘어선다. 류현진의 진출을 도왔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이정후에 대해 문의한 구단이 전체의 절반인 15개에 이른다며 본격적인 판매에 나섰다. 좌타 외야수가 절실한 동부 명문 뉴욕 양키스와 서부 명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이름이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다.

메이저리그가 이정후를 기대하는 이유는 한국 리그를 지배한 타자일뿐만 아이라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100이 평균인 종합 공격력 지표(wRC+)를 매년 높여 2017년 112에서 2022년 183으로 끌어올렸다. 올해는 타격 자세 조정이 독이 되고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마감하며 144로 떨어졌지만, 원래 자세로 돌아가자마자 무섭게 몰아쳐 또 한 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 메이저리그는 이정후의 성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정확성과 선구안이 뛰어난 대신 많은 홈런을 기대하기 어려운 좌타자라는 점은 김현수와 같다. 실제로 이정후의 wRC+ 평균 143은 김현수가 미국에 진출하기 전에 기록한 144와 거의 똑같다. 하지만 이정후는 김현수보다 좋은 수비와 빠른 발을 가지고 있다. 김현수의 좌익수와 우익수 수비가 메이저리그에서 평균 이하였다면, 이정후는 중견수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정후에게 행운인 점은 때를 잘 만났다는 것이다. 김현수가 진출했을 때 메이저리그는 홈런지상주의 시대였다. 김현수는 첫해 팀에서 유일한 3할 타자였지만 팀은 장타를 요구했고 이듬해 부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탈(脫)홈런 시대가 시작됐다.

잘 맞은 땅볼 타구들이 수비 시프트에 잡히자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홈런 스윙에 전념했고 이는 야구를 재미없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올해부터 메이저리그는 수비 시프트 범위를 크게 제한했고, 이는 그동안 시프트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은 좌타자들이 살아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우타자는 타율이 지난해 대비 2리 오른 반면 좌타자는 9리 상승했다.

시프트 제한 조치는 야수의 정면으로 가는 강한 타구가 아니라, 야수가 없는 곳으로 공을 날릴 수 있는 정교한 타격을 하는 타자의 가치를 높였다. 김현수의 시대에 타율이 무시됐다면, 이정후의 시대는 높은 타율이 좋은 활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도루 환경이 좋아져 출루 능력과 스피드가 좋은 타자의 가치가 높아졌다. 메이저리그가 이정후의 정확성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다.

MLB의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타자는 루이스 아라에스(마이애미)다. 아라에스는 강한 타구 비율이 하위 3%인 반면 헛스윙을 하지 않는 비율과 방망이 중심에 맞히는 비율이 상위 1%다. 지난해 아라에스는 미네소타 소속으로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올해는 마이애미 소속으로 내셔널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다. 1900년 이후 양 리그에서 모두 타격왕에 오른 건 역대 두 번째. 첫 달성자인 DJ 르메이휴가 2016년 콜로라도 쿠어스필드와 2020년 60경기 시즌의 도움을 받은 것과 달리, 아라에스는 환경적 이점 없이 2년 연속으로 달성했다. 홈런은 많이 치지 못하지만 높은 타율과 많은 2루타로 팀의 득점에 크게 기여하는 아라에스는 이정후의 목표라 할 수 있다.

ⓒ연합뉴스
11월13일 김하성(왼쪽)과 이정후가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후 매제인 투수 고우석도 동반 진출 가능성

이정후가 한국 야구 최고의 천재였던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것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타격 능력에는 유전적인 요소가 크다고 생각하는 메이저리그에는 대놓고 혈통 야구를 추구하는 토론토 같은 팀도 있다. 토론토에는 아버지가 명예의 전당 선수인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와 케번 비지오가 있다. 아버지가 쿠바 야구의 전설인 율리 구리엘과 루데스 구리엘 주니어 형제의 좋은 활약도 혈통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정후의 매제인 LG 트윈스 고우석에게도 메이저리그의 신분조회 요청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고우석은 올해 부진했지만 메이저리그가 탐내는 빠른 공을 가지고 있다.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해외 진출의 명분도 만들어졌다. 포스팅으로 나가면 원소속 팀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LG도 거절할 이유가 없다.

고우석까지 진출하게 된다면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LG 트윈스의 1루 코치 자리에서 물러난 이종범 코치를 포함한 가족 전원이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다. 따라서 이정후를 영입하는 팀은 고우석 영입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정후는 어느 팀으로 가게 될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하성의 성공에 고무된 샌디에이고가 이정후를 가장 열심히 조사했고, 이정후의 가장 유력한 행선지로 여겨졌다. 하지만 선수 연봉으로 너무 많은 돈을 쓴 샌디에이고는 재정 위기에 봉착했고, 적극적으로 투자했던 피터 사이들러 구단주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돈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느 팀이 됐든 이정후는 주전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계약을 보장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메이저리그에서의 출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의형제나 다름없는 김하성의 존재,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하는 미국 생활이라면 더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뛴 최고의 한국인 타자 추신수는 미국 마이너리그 시스템에서 길러진 선수였다. 과연 이정후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는 최초의 KBO 타자가 될 수 있을까. 곧 포스팅이 시작되는 이정후는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30일 동안 자유로운 협상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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