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보신탕…‘올 것이 왔다’ 상인들 한숨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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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모란시장 개고기 상인 “농부한테 어부돼라 통보한 셈”
“‘반려견 1000만 명 시대’ 개고기는 시류에 벗어나” 의견도
개 식용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1월10일 오전 찾아간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풍경. ⓒ시사저널 강윤서
개 식용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1월10일 오전 찾아간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풍경. ⓒ시사저널 강윤서

“흑염소 전문점” “장어, 붕어, 가물치, 호박”

개 식용 금지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다음 날인 10일 오전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초입부터 ‘개고기’ 문구를 내 건 가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보신탕을 팔던 가게는 문을 꾹 닫은 채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한때 대구 칠성 개시장, 부산 구포가축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시장으로 불리던 모란시장 가축거리에는 ‘흑염소·산토끼·천둥오리·오골계’만 간판에 내걸렸다.

모란역 5번 출구를 나와 모란시장에 들어서면 약 200미터에 달하는 가축거리가 펼쳐진다. 25여 개 건강원과 보양식 식당들이 줄지었지만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집집마다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호객 상인과 장년층 손님 한 두 명이 전부였다. 건강원의 약재와 뒷골목 기름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참기름 냄새만이 적막한 가축거리를 메웠다.

최근까지만 해도 개고기를 진열했다는 A씨(남·60대)는 “다들 (개고기를) 들여놓는 마당에 혼자만 내놓기도 눈치 보이지”라며 “어차피 손님도 거의 안 온다”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수십 년간 개고기 판매를 생업으로 해온 이들에게 개 식용금지법 통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전업·폐업에 대한 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30년째 건강원을 운영하면서 개고기를 팔았던 B씨(남·50대)는 “다들 암담한 분위기다. 농사짓는 사람한테 갑자기 어부가 돼 하면 어떻겠느냐”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적게는 50대 많게는 7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 일을 했는데 전업이라는 게 어디 쉽겠느냐”면서 “(유예기간인) 3년이란 짧은 시간에 새 일을 시작하기엔 다들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덧붙였다.

김용복 모란가축상인회장(66)도 “설마, 설마 했는데 결국 (법안이) 통과돼 다들 머릿속이 하얘졌다”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보상을 많이 해줘야 우리도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개 식용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1월10일 오전 찾아간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풍경. ⓒ시사저널 강윤서
개 식용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1월10일 오전 찾아간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풍경. ⓒ시사저널 강윤서

“개고기 취급 업장 유지는 시대착오적 고집”

모란시장에 개 식용 금지법에 대한 반대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류에서 벗어난 개고기를 계속 고집할 수 없다는 입장도 나온다.

28년간 모란시장 골목길 안에 위치한 건강원을 지켜온 C씨(여·60대)는 “우리도 개소주(개고기와 각종 한약재를 넣고 삶은 원액)를 팔았지만, 시대가 변하면 맞춰가는 게 또 맞지 않나”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오래 일했어도 개고기는 싫어서 안 먹었다”며 “그것도 먹는 사람만 먹어서 앞 골목 상인들과 대화해 본 적 거의 없다”고 말했다.

모란시장 개고기 매출은 동물보호단체와 개 도살 소음·악취에 대한 지역주민의 거센 반발로 계속 감소했다. 김 회장은 “10년 사이 개고기를 찾는 손님이 거의 없다. ‘반려견 1000만 시대’라며 우리 업계에 대해 분노하는 것도 이해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 회장은 “다만 우리도 대비가 필요한 입장”이라며 “제주도의 국수거리 등에 선진 견학도 다녀오면서 대책을 찾는 중이다. (모란가축거리를) 흑염소 거리로 전환해보는 것도 고려하고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고 호소했다.

현재 상인들은 법 시행까지 3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생계유지를 위한 현금 보상 요구에 나선 상태다. 정부도 구체적인 보상안 기준 마련에 착수했지만 입장 차가 커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개고기에 대한 사회인식의 변화는 컸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 연구팀이 2022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개 식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부정적이다’가 73%를 차지했다. ‘향후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87.1%가 ‘없다’고 답했다.

모란시장의 개고기 취급 업소는 1960년대 시장 형성과 함께 들어섰고, 2001년에는 54곳이 개를 진열 및 도축 판매할 정도로 성업했다. 그러나 2016년 모란가축시장상인회가 성남시와 ‘모란시장 환경정비 업무협약’을 맺고 시장에서 개를 진열하거나 도축하는 시설을 철거했다. 

지난 9일 국회에서 통과된 개 식용 금지법은 개를 식용 목적으로 사육·증식하거나 도살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 개를 원료로 조리한 식품을 유통·판매하는 것도 금지된다. 만약 식용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사육·증식·유통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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