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은 망해도 3대는 간다? 균열 커지는 ‘한국식’ 오너 경영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6 07:35
  • 호수 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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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몰려 경영권 내려놓거나 스스로 용퇴 결정하는 사례 잇달아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부담도 가업 승계 포기 부추겨

남양유업 오너 일가가 최근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겨주게 되면서 한국식 오너 경영 방식이 재조명되고 있다. 재벌은 오너의 ‘책임경영’을 표방하지만 오너와 그 일가의 갑질, 비위 행위, 맹목적인 세습 같은 부정적 측면도 늘 달고 다녔다. 특히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과 편법을 자행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아왔다. 그럴수록 재벌들은 더욱더 폐쇄적이고 은밀하게 각자의 기득권을 유지·확대해 갔다. 그러나 영원한 건 없다. 공고하던 ‘K오너 경영체제’도 최근 급변하는 경영환경과 사회 트렌드 속에서 강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편집자 주〉

영원히 공고할 것만 같던 한국식 오너 경영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오너가 자의 또는 타의로 경영권을 내려놓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오너의 개인적인 철학과 상속세 부담, 경영 위기, 내부 문제 등 이유는 다양하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시적일지, 아니면 더욱 확산할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 주요 대기업 대다수는 오너와 그 일가가 이끄는 재벌그룹이다. 시사저널이 국내 50대 그룹의 경영체제를 파악해본 결과 포스코, 농협, KT, HMM, S-OIL, KT&G를 제외한 44곳이 모두 오너가 있는 기업이었다. 이들 재벌은 적게는 2세대, 많게는 4세대로 경영권을 승계하며 여전히 우리 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오너 경영과 경영권 대물림으로 대표되는 재벌 체제가 흔들리는 정황이 최근 들어 속속 포착된다. 1월4일 재계는 남양유업 오너 경영이 60년 만에 멈춰선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이날 대법원 2부는 한앤코가 남양유업 오너 홍원식 회장(73)과 가족을 상대로 낸 주식 양도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고(故) 홍두영 남양유업 창업회장의 장남인 홍원식 회장은 국내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한앤코)에 경영권을 넘겨주게 됐다.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메리츠금융그룹 제공
경영권을 사모펀드에 넘겨준 홍원식 남양유업 2대 회장, 재벌 2세(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의 4남)임에도 자녀 승계 포기를 선언한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 상속세 부담으로 승계의 어려움을 토로한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창업자(왼쪽 사진부터)ⓒ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메리츠금융그룹 제공

남양유업 사태, 오너 경영체제에 경종 

남양유업은 홍두영 창업회장이 1964년 설립한 기업이다. 1990년 2대 홍원식 회장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졌다. 1994년 이후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2009년 유업계 최초로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남양유업은 홍 창업회장이 작고한 지 3년 만인 2013년 들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남양유업 본사 소속 영업사원이 지역 대리점 직원에게 제품을 떠넘기면서 막말을 퍼부은 사실이 음성파일로 공개되며 파문에 휩싸인 것이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비인기 상품을 강매하는 소위 ‘밀어내기’ 관행도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소비자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확산했고, 대리점주들은 남양유업을 고소했다. 

2012년까지 줄곧 흑자였던 남양유업은 밀어내기 파문 영향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남양유업은 제품에서 자사 로고를 가리기까지 하는 등 불매운동의 타격을 벗어나려 발버둥 쳤으나, 2019년 홍 창업회장 외손녀 황하나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되면서 또다시 큰 타격을 입었다. 2020년엔 홍보대행사를 고용해 경쟁사를 비방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홍 회장이 입건되기도 했다. 

2021년 4월 불거진 불가리스 허위 광고 논란은 남양유업 오너 경영에 파국을 불러온 결정타였다. 남양유업이 발효유 제품 불가리스에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곧 허위로 드러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남양유업을 고발했고 경찰은 본사 압수수색에 나섰다.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자 홍 회장은 같은 해 5월 회장직 사퇴를 발표하며 자신과 가족이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 53%를 3107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한앤코와 체결했다. 그러다 그해 7월 ‘오너 일가 처우 보장’ 같은 매각 관련 세부 조건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 무효를 주장했고, 한앤코는 8월 주식매매계약 이행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한앤코의 손을 들어줬고 1월4일 대법원 판단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이로써 누구보다 공고했던 남양유업의 오너 경영체제는 결국 종언을 고하게 됐다. 

남양유업 사례는 회사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휩싸이면 ‘주인’인 오너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아울러 재벌그룹 오너들이 회사를 자신의 소유로 여기는 기존 관념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남양유업의 새 주인이 된 한앤코는 주로 기업의 지분을 인수한 후 성장시켜 투자금 회수를 목적으로 되파는 ‘바이아웃’ 형태의 전형적인 사모펀드다. 

한앤코는 2013년 웅진식품을 인수했다가 기업 가치를 높여 5년 만에 인수 가격의 세 배 가까운 금액으로 매각한 이력이 있다. 웅진식품 역시 오너(윤석금 회장)가 있는 웅진그룹의 알짜 계열사였다. 웅진식품은 한앤코가 인수할 당시 400%에 달하는 부채비율과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등 회사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 한앤코는 웅진식품 인수 후 자금 수혈과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덕분에 웅진식품은 2014년 흑자 전환에 성공하고 2015년 105억원, 2016년 142억원, 2017년 196억원, 2018년 202억원 등 영업이익 상승세를 이어갔다. 한앤코는 웅진식품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고 대만 퉁이그룹에 26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회사의 미래’ 위해 가업 승계 포기한 오너들 

타의로 경영권을 넘겨주며 2세 경영을 넘기지 못한 남양유업과 달리 자의로 경영권 승계를 포기하는 재벌그룹 오너 일가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남승우 전 풀무원 총괄CEO(71)는 “비상장기업은 가족(오너) 경영이 유리하지만, 상장기업의 경영권은 가족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승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철학을 직접 대외에 밝히며 만 65세였던 2018년 퇴진했다. 한국에 유기농법을 처음 도입해 ‘한국 유기농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 원경선 선생이 1955년 경기도 부천에 땅 3만여㎡(약 1만 평)를 개간한 게 풀무원의 시작이었다. 원 선생의 장남인 원혜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아버지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려는 목적으로 1981년 ‘풀무원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을 열었고, 1984년엔 고교·대학 동기동창인 남승우 전 총괄CEO와 의기투합해 풀무원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기업의 형태를 갖췄다. 

이후 원 전 의원이 정치에 진출하면서 1993년 경영권을 넘겨받은 남 전 총괄CEO는 풀무원을 직원 1만여 명에 연  매출 2조원이 넘는 식품 대기업으로 키웠다. 남 전 총괄CEO가 경영권을 물려준 상대는 풀무원 ‘1호 사원’으로 30년 넘게 그와 동고동락한 이효율 총괄CEO(66)다. 이 총괄CEO 취임 이후 풀무원은 더욱 성장해 2023년 매출 3조원 클럽에 진입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가 회사 발전이라는 대의를 앞세우며 깔끔하게 경영권을 내려놓고, 실제로 회사 실적이 더 좋아진 아름다운 사례는 회사야 어찌 되든 철통같이 경영권을 사수하려는 대다수 오너 일가와 대비되며 재계에 커다란 충격파를 던졌다”고 말했다. 

풀무원의 영향이었을까. 가구 업계 1위 한샘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였던 조창걸 명예회장(84)은 2021년 10월 자신과 특수관계인 7명의 보유 지분을 사모펀드 운용사인 IMM프라이빗에쿼티(IMM PE)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조 명예회장은 1970년 부엌 가구 전문회사로 한샘을 세워 가구 제작부터 가정 인테리어까지 주거환경에 관한 전반적인 사업을 운영하는 거대 기업으로 키워냈다. 자신의 삶 자체인 회사를 자식에게 승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조 명예회장은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았다. 재계에서는 조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물려줄 적임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는 2012년 숨진 외아들을 포함해 1남 3녀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세 딸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조 명예회장은 경영권을 내려놓은 후 사재를 털어 공익재단을 설립, 장학사업과 국내외 학술 연구비 지원 사업 등을 펼치며 또 다른 모범이 되고 있다. 

메리츠금융그룹 조정호 회장의 경우 재벌 2세임에도 경영권 승계 포기 의사를 일찌감치 밝혀 화제를 모았다. 조 회장은 2022년 11월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를 메리츠금융지주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발표했다. 지배구조 개편에 따라 조 회장의 메리츠금융지주 지분율은 72.17%에서 46.94%로 감소했다. 조 회장은 “기업을 (자녀에게) 승계할 생각이 없다”며 “경영 효율을 높이고 그룹 전체의 파이를 키워 주주 가치를 높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의 4남으로 2002년 그룹 내에서 존재감이 미미하던 금융업을 물려받았다. 2005년 한진그룹에서 계열 분리될 당시 3조3000억원 수준이던 메리츠금융그룹 자산은 20여 년 사이에 30배 넘게 성장했다. 

“천문학적인 상속세 때문에 승계 생각도 못 해” 

일각에선 높은 상속세율이 재벌그룹들의 가업 승계 포기 시곗바늘을 앞당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최대주주에 붙는 할증(세금의 20%)까지 합치면 세율이 최고 60%로 올라간다. 앞서 조창걸 전 한샘 명예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포기했을 때도 ‘상속세 부담 때문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등 상속세율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이 밖에 고 이건희 선대회장 사후 삼성전자 오너 일가는 12조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신고했다. 천문학적 규모의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상속받은 주식을 팔고 있을 정도다.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가족은 약 6조원의 상속세를 낼 수 없어 정부에 넥슨 지주회사 NXC 지분을 물납한 상태다. 이에 정부가 넥슨의 2대 주주로 등극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셀트리온그룹 창업자인 서정진 명예회장(66)은 2023년 10월 그룹 합병 발표 자리에서 합병이나 자사주 취득을 승계 문제와 연관 짓는 시선에 대해 “지금 와서 (승계 관련) 편법과 우회 정책을 쓸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상속·증여세로 못해도 6조~7조원은 내야 할 것이기에 승계할 방법도 없다. 내가 떠나고 나면 상속세 때문에 어차피 셀트리온은 국영기업이 될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토로했다.  

 

■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의 ‘독단 경영’이 화 불렀나 

남양유업 오너 경영이 2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리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국내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한앤코)와의 경영권 분쟁이 표면적인 이유다. 그러나 오너 홍원식 회장(73)의 독단적인 경영 방식이 근본 원인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홍 회장의 아버지인 고(故) 홍두영 창업회장(2010년 향년 84세를 일기로 타계)은 6·25 사변 이후 아기들에게 제대로 먹일 게 없던 대한민국 현실을 안타까워하다가 우리 기술로 직접 분유와 우유를 생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1964년 회사를 세웠다. 장인정신과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홍 창업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남양유업은 승승장구했다. 

홍 창업회장은 평소 말수가 적고 대외에 나서는 걸 극도로 꺼린 것으로 알려졌다. 원조 ‘은둔형 경영자’인 셈이다. 이런 성품은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는’ 보수적 경영 방식으로 이어졌다. 돈을 빌려 쓰지 않고(무차입), 노사 분규가 없고(무분규), 친인척이 개입하지 않고(무파벌), 사옥이 없는(무사옥) 등 ‘4무(無)’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깐깐하고 지독하게 식품 분야 한 우물만 팠다. 전공을 벗어난 신(新)사업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회사가 경비를 1억원 이상 지출할 땐 반드시 자신의 결재를 받도록 했다. 남양유업의 의사결정이 경쟁사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는 1974년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를 갓 졸업한 24세 장남 홍 회장을 남양유업 기획실 부장으로 받아들이고 혹독한 경영 수업에 들어갔다. 홍 회장은 1977년 이사, 1979년 상무, 1980년 전무, 1988년 부사장, 1990년 사장을 거쳐 2003년 회장이 됐다. 

1990년 4월 아버지로부터 ‘부동산 투기와 정치 참여를 절대 해선 안 된다’는 신신당부를 듣고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홍 회장은 보수적인 경영을 답습했다. 2017년 서울 논현동에 본사 사옥을 마련한 걸 빼고는 홍 창업회장과 데칼코마니였다. 홍 회장 역시 은둔형 경영자이면서도 그립(장악력)이 강했다. 

남양유업가(家)의 변함없는 경영 방식은 세월이 지나며 효력을 점점 잃어갔다. 기업이 소비자와 원활히 소통하고 사회 이슈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재계 흐름에 발맞추지 못했다. 결국 2013년 이후 연쇄적으로 터진 초대형 악재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다가 경영권을 사모펀드에 넘겨주기에 이르렀다. 

홍 회장은 2021년 5월4일 ‘불가리스 코로나19 억제 효과’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제가 회사의 성장만을 바라보면서 달려오다 보니 구시대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비자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히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장남 홍진석 남양유업 상무(47·기획마케팅총괄본부장)가 해당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은 물론 불과 한 달여 전에 회삿돈 유용 의혹으로 보직 해임된 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홍 상무는 홍 회장의 대국민 사과 후 22일 만에 슬쩍 복직했다. 홍 회장도 사퇴 약속이 언제였느냐는 듯 그대로 회장직을 유지해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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