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 건설 업계, 총선 이후 부도 쓰나미 오나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4.01.09 07:35
  • 호수 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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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 워크아웃 이후 코오롱·신세계·현대·롯데·GS 등도 ‘불안’
정부의 정책 지원 의지와 범위에 건설사들 이목 쏠려

건설 업계 부실에 대한 경고음이 올해 들어서면서 더욱 커졌다. 시공능력평가 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따른 유동성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해 12월28일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했다. 업계에서는 벌써 누가 ‘넥스트 태영’이 될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가운데),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 등이 2023년 12월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과 관련한 대응 방안 브리핑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조원 규모 PF 우발채무 공포 현실화

부동산 경기 악화로 총 23조원에 육박하는 부동산 PF 우발채무(부동산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시공사가 떠안아야 하는 채무)가 불거지면서 다른 건설사들도 유동성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더구나 정부의 정책 지원이 4월10일 총선을 기점으로 약화하면 PF 부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부동산 PF는 아파트 건설 등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면서 미래 수익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사업비를 빌리는 금융기법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부동산 PF 규모는 2020년 말 92조5000억원이었다가 2021년 말 112조9000억원, 2023년 9월말 134조3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동시에 2020년 말 0.55% 수준이었던 부동산 PF 연체율은 2023년 9월말 2.42%로 올라갔다. 한국기업평가가 유효등급을 보유한 21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집계한 결과, 이들 업체의 2023년 8월말 기준 부동산 PF 우발채무는 22조8000억원에 달했다. 

태영건설이 보증한 부동산 PF 잔액은 2023년 3분기 말 기준 4조4100억원인데, 사회간접자본(SOC) 등을 제외하고 순수 부동산 PF 잔액만 따지면 3조2000억원이다. 이 중 7200억원이 우발채무로 추산된다. 태영건설은 2023년 1∼3분기 부동산 PF 부실 문제 등으로 478.7%의 부채비율을 기록했다. 

조정 국면에 있는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여지가 작다는 점은 건설 업계 유동성 문제의 뇌관이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원자재값·분양가 상승까지 겹치며 건설시장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부동산 하락장이 지속되면서 수요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2023년 10월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규모는 5만8299가구로 확인됐다. 특히 악성 물량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1만224가구를 기록하면서 2년8개월 만에 1만 가구를 넘어섰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아파트 분양 일정을 소화한 사업지 215곳 가운데 67곳(31.2%)은 청약 경쟁률이 0%대를 기록했다. 

다른 대형 건설사들도 ‘연쇄 위기’ 우려 

시장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부동산 PF 우발채무로 인해 다른 건설사들도 줄줄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다. 현재 태영건설 외에 PF 우발채무로 인한 위기 가능성이 거론되는 건설사는 코오롱글로벌, 신세계건설 등이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는 2023년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코오롱글로벌에 대해 “(8월말 기준) 미착공 PF 우발채무 규모가 6121억원에 이르고 보유 현금성 자산은 2377억원에 불과해 PF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자체 현금을 통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세계건설의 부채비율은 467.9%로 태영건설과 비슷한 수준이다. 

각각 시공능력평가 순위 2위와 8위인 현대건설과 롯데건설도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PF 규모가 커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2023년 9월말 기준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PF 규모는 태영건설이 373.6%로 주요 건설사 중 가장 컸고 롯데건설(212.7%), 현대건설(121.9%) 역시 세 자릿수를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롯데건설은 2022년 말 레고랜드 사태로 한 차례 유동성 위기를 겪기도 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여파로 금융권이 건설사에 대해 유동성 공급을 줄이거나 신용 보강을 요구할 가능성도 크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단기 자금 조달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그간 중소 건설사 중심으로 리스크가 제기됐지만 시공능력평가 순위 30위권 내 대형 혹은 중견 건설사의 신용등급 하향이 이뤄지며 부동산 PF 리스크가 건설사로 전이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진단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사업 진행이 지연되고 PF로 인해 금융비용이 누적되며 건설사들의 PF 보증액이 쉽사리 낮아지지 않고 있다”면서 “고금리 타격으로 쉽지 않았던 2023년이지만 2024년에도 PF 시장 어려움이 장기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대우산업개발, 대우조선해양건설, 대창기업, 신일건설 등도 2023년 회생 절차에 들어간 바 있다. 다만 이들 업체가 모두 시공능력평가 순위 70위권 밖의 건설사였다는 점에서 태영건설발(發) 위기는 차원이 다른 규모로 닥쳐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기평은 지난해 12월24일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시공능력평가 순위 5위인 GS건설의 신용등급도 ‘A+’에서 ‘A’로 낮췄다. 22위인 동부건설의 신용등급도 ‘A3+’에서 ‘A3’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을 계기로 주요 건설사들의 신용등급을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신평이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건설사 20여 곳 가운데 장기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인 곳은 GS건설(A+), 롯데건설(A+), HDC현대산업개발(A), 신세계건설(A) 등 4곳이다. 해당 건설사들이 우선 신용등급 재검토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PF 부실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정책 지원이 어떤 규모로, 어디까지 진행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우선 태영건설 구조조정 절차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진행되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1월11일 채권자협의회를 소집해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산업은행 외 다른 주요 채권은행은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이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4월10일 있을 총선 전에 시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정부의 대응 방안대로 워크아웃이 질서 있게 진행된다면, 지금 겪는 잠깐의 고통이 시장 회복을 빠르게 앞당길 것”이라고 낙관했다. 한신평 관계자도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맞물리면서 (부동산 PF 부실) 관련 구조조정이 보다 조기에 진행될 수 있다”며 구조조정 과정에서 개별 건설사 또는 계열 차원의 자율적 구조조정보다 워크아웃 같은 정부 또는 금융권 주도의 구조조정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1월2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태영건설 본사 모습. 대창기업(작은 사진 위)과 신일건설(아래)이 홈페이지를 통해 회생 절차에 들어간 사실을 전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각사 홈페이지
1월2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태영건설 본사 모습. 대창기업(작은 사진 위)과 신일건설(아래)이 홈페이지를 통해 회생 절차에 들어간 사실을 전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각사 홈페이지

정부, 총선 전까지만 구조조정 주도할까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의 그립(장악력)이 총선 이후 사그라지면 부동산 PF 연쇄 부실 사태가 본격화할 수도 있다고 관측한다. 김정환 GB투자자문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증권가에선 정부가 4월 총선 전까지 (선거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려고) 금융권을 압박해 PF 부실 문제를 관리하며 버티다가 총선 이후 손을 놓고 시장의 흐름에 맡길 거란 추측이 힘을 얻었다”면서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PF발 신용경색, 건설사 줄도산 등 최악의 상황을 목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역에 소재한 중소 건설사들은 이미 줄줄이 부도 국면에 진입했다. 2023년 하반기 중 토담건설(전남), 남명건설(경남), 해광건설(광주), 세경토건(울산), 거송건설(전남) 등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역 건설 업계는 정부의 관심이 태영건설을 위시한 수도권 소재 대형 건설사 구조조정에만 집중되는 분위기에 소외감을 토로하고 있다. 

ⓒ연합뉴스·태영그룹
ⓒ연합뉴스·태영그룹

■ 91세 윤세영 창업회장의 눈물, 왜? 

아들에게 넘긴 태영 경영권 5년 만에 회수 

시공능력평가 16위인 태영건설이 12월28일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부동산 PF에 따른 채무 문제가 표면적인 이유다. 

그러나 또 다른 해석도 나오고 있다. 건설 업계에서는 지난해 12월 초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91)이 5년여 만에 경영 일선으로 복귀한 사실에 주목한다. 윤 창업회장은 2019년 3월 아들 윤석민 회장(60)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아들 윤 회장은 아버지와 달리 내향적인 경영 스타일을 보였다고 한다. 

경영권 승계 이후 태영건설의 사세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2018년 3조6911억원 수준이던 태영건설 매출은 이후 3조원을 밑돌았으며 지난해에는 2조6051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역시 4582억원에서 915억원으로 급감했다. 2023년도 1200억원 수준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태영건설의 차입금은 1조9300억원, 부채비율은 478.7%에 달한다. 

급기야 2023년 하반기 들어 회사 안팎에서 부동산 PF 문제로 인한 유동성 위기설, 워크아웃설이 새어나왔고, 윤세영 창업회장이 재등판하기에 이르렀다. GS건설, 금호건설 등 다른 대형 건설사의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한 것과 대비된다.  

‘왕회장’이 사활을 걸고 급한 불 끄기에 나섰음에도 태영건설 워크아웃은 닥쳐오고야 말았다. 윤 창업회장은 1월3일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이 채권단 400여 곳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한 설명회에서 호소문을 통해 “어떻게든 정상적으로 사업을 마무리 짓고 제대로 채무를 상환할 기회를 주면 임직원 모두 사력을 다해 태영을 살려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호소문을 읽으며 눈물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도 SBS 지분 매각 가능성 등 핵심 사항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아,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자구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룹 회생 여부는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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