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하게 아름답고 불온한 크리처의 성장 이야기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9 09:00
  • 호수 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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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여운 것들》, 아카데미 11개 부문 노미네이트…찬사와 논란 교차하는 ‘문제작’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밀턴의 《실낙원》 인용구로 시작한다.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 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 달라고?’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무명의 괴물은 인간의 혐오를 뒤집어쓴 채 한없이 괴로워하다 파국으로 향한다. 만약 그 창조물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성이었다면? 세상을 향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아이의 지능을 가졌다면?

영화 《가여운 것들》의 상상력은 바로 이 토대 위에 세워진다. 《송곳니》(2012), 《더 랍스터》(2015),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9) 등 인간의 욕망을 기묘한 상상력에 결합한 작품을 선보였던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신작이다. 2023년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이미 세계 유수의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90개가 넘는 트로피를 챙겼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총 11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레이스의 가장 뜨거운 주자 중 하나임을 입증했다. 영화는 찬사와 논란 사이, 표현의 자유와 도덕적 딜레마 사이에 자리한 문제작을 자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영화 《가여운 것들》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가여운 것들》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창조된 실험체, 여행을 떠나다

벨라 벡스터(엠마 스톤)는 천재 과학자 갓윈 벡스터(윌렘 대포)가 재창조한 인간이다. 여기에서 ‘재창조’라는 표현은 타당하다. 갓윈은 어떤 사연에서인지 임신한 상태로 다리 위에서 투신한 여성을 우연히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여성의 몸에 그가 품고 있던 태아의 뇌를 이식했다. 성인의 육체에 아직 성장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뇌를 이식받은 벨라는 신생아의 성장 과정을 거친다. 조금씩 언어를 배우고, 걸음마를 뗀다. 갓윈이 고용한 보조 맥스 맥캔들리스(라미 유세프)가 그 과정을 낱낱이 기록한다.

갓윈의 보호 아래 성장하던 벨라의 모험은 뜻밖의 경로로 시작된다. 벨라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한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 웨더번(마크 러팔로)은 함께 세계를 탐험하자는 은밀한 제안을 건넨다. 이미 갓윈의 지시대로 맥캔들리스와 결혼을 예정한 상황이었지만, 경험에 목이 말랐던 벨라는 선뜻 덩컨을 따라나선다. 그리고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 속에서 온통 새로운 것들과 마주하며 놀라운 변화를 맞는다.

《가여운 것들》은 스코틀랜드 작가 앨러스데어 그레이가 1992년 펴낸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이 맥캔들리스를 중심으로 벨라 주변 인물들의 회고록 형태를 취한 것에 반해, 영화는 벨라가 옮겨 여행하는 장소를 챕터 제목으로 삼았다. 특정한 화자의 시선과 기록으로 벨라를 서술하는 대신 그를 스스로 택한 여정 속 주인공으로 삼은 구조 변화는 중요하다. 집을 떠난 이후부터 벨라는 통제된 실험 조건에 반응하는 ‘실험체’가 아니라, 처음으로 마주하는 세계의 모든 것을 직접 선택하고 경험하는 주체다.

소설의 문장을 벗어나 스크린을 유영하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상상력은 고딕과 스팀펑크(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과 유럽을 배경으로 하며, 산업혁명 시기를 다룬 작품 경향)를 결합한 풍성한 판타지로 펼쳐진다. 런던, 리스본, 파리 등 익숙한 지명이 등장하지만 영화의 배경은 빅토리아 시대의 풍경과 미래의 어느 시기가 매력적으로 혼재된 독특한 양식이다. 갓윈의 보호 아래 집 안에만 있던 벨라는 흑백 화면으로 가둬졌지만, 여행을 시작한 이후에는 총천연색 화면 속을 활보한다. 어안렌즈를 활용해 각도를 극단적으로 왜곡한 일부 장면들 역시 현실감을 지워버린 채 오직 벨라의 세계에 몰두하도록 만든다. 화면을 왜곡해 인물들의 세계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이 감독이 즐겨 쓰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미 성인의 신체를 가졌던 벨라는 육체적 쾌락에 빠르게 눈뜬다. 자위로 즐거움을 경험한 이후 남성과 나누는 ‘뜨거운 뜀박질’에 무서울 정도로 탐닉한다. 수치심과 죄의식을 전혀 알지 못하고, 부주의하고 파괴적이며, 무엇보다 쾌락을 즐거운 것으로 인식하는 여성. 이는 덩컨을 자극하는 면모이기도 하다. 상류사회의 질서로부터 가뿐하게 달아나는 벨라는 선택에 거침이 없으며, 죄의식을 벗어난 쾌락의 추구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동시에 삶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허무함을 배우기도 한다. 여행에서 벨라가 실존주의적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인류의 진보와 닮아있다. 신체적 쾌락을 향한 욕구는 지적 갈증의 추구로 바뀌어가고, 타인을 보고 느끼는 공감과 슬픔은 사회 구조의 아이러니를 체득하게 한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죄의식 없는 인물을 보는 쾌감

성적인 즐거움 외에 다른 성장에서는 벨라가 순수한 백지 같기를 원하는 덩컨을 비롯한 남성들은 이 변화가 당혹스럽다. 그들은 모두 벨라에게 ‘삶은 이런 것’이라고 자신의 방식대로 가르치길 원한다. 밖은 위험하고, 염세와 비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갓윈은 벨라에게 성적 욕망을 품진 않지만, 이미 한 번 목숨을 끊으려 했던 사람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통 가득한 삶으로 되살릴 순 없다는 ‘깨달음’을 통해 벨라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벨라가 자신의 욕구와 의견을 더 명확하게 가질수록, 모두가 벨라를 둘러싼 통제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벨라는 세상을 특정 방식으로 인식하도록 스스로 유도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지금껏 스크린에서 만나온 그 어떤 여성 캐릭터보다 거침없고 자유롭다. 그는 경험을 통한 것만 믿는다. 가부장적 사회 규칙에 길들여지지 않은 벨라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이 지점에서 벨라는 사회적 억압을 이기는 수준을 넘어 범법적 에너지를 지닌 인물이 되기도 한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던 벨라가 돈을 벌기 위해, 성의 본질과 세상을 파악하기 위해 파리의 매음굴에 취업하면서부터다.

해외 선공개 후 《가여운 것들》은 이 지점에서 많은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여성 신체를 착취하는 묘사가 많고, 이것이 캐릭터 자신의 해방과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덩컨이 성노동을 하는 벨라에게 수치심을 주려 하자, 벨라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산 수단”이라는 말로 가뿐하게 덩컨의 말을 받아치는 대목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마침 그때 벨라는 동료와 함께 사회주의자 모임에 가는 길이었다.

섹슈얼리티를 통해 자기 해방을 찾는 19세기 여성의 이야기가 2020년대 풍경에서는 철 지난 논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가여운 것들》이 그리려 했던 벨라는 성적으로 착취되는 인물이 아니라 자기 판단과 수치심,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성장을 일구는 여성이라는 점이다. 원할 때 언제든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고, 거리낌 없이 먹고 마시고, 사회 통념에 비추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고 매일 밤 반추하며 괴로워하지 않는 여성. 적어도 지금까지 이렇게 거침없이 자유로운 캐릭터를 본 적은 없다. 기실 벨라는 체면에 가려둔 모두의 욕망에 다름 아닐 수 있다.

《가여운 것들》을 본다는 것은, 벨라를 연기하는 엠마 스톤의 에너지에 압도당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작품의 제작자이기도 한 그는 자유의지와 본능과 성장을 마음껏 지향하며 스크린 속을 무질서하게 휘젓는다. 그 자유롭고 용맹한 모습은 어쩌면 그간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 배우들에게 좀처럼 기대되지 않았던 종류의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쾌감은 결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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