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2000명 언급한 적 없어…정부, 극히 일부만 인용”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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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력 추계 연구자들, 일제히 ‘2000명’ 증원 규모 지적
규모 줄이고 점진적 추진 필요성 강조…“합리적 조절해야”
“소모적 논쟁 중단하고 필수의료 개혁 논의 돌입할 때”
전공의 집단이탈 열흘째이자 정부가 제시한 복귀 시한인 2월29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 앞으로 휠체어를 탄 환자와 보호자가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이탈 열흘째이자 정부가 제시한 복귀 시한인 2월29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 앞으로 휠체어를 탄 환자와 보호자가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했지만 보고서가 호도되는 방식으로 인용됐다.”

정부가 의대 증원 추진 지렛대로 활용한 보고서 작성 전문가들이 ‘2000명’ 규모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냈다. 정부는 세 개의 보고서를 토대로 2000명 증원을 도출했다고 했지만, 정작 연구자들은 ‘극히 일부만’ 반영돼 결론이 왜곡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강대강 대치를 불러 일으킨 ‘증원 숫자’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의료체계 개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7일 국회에서 열린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 ‘의사수 추계 연구자 긴급 토론회’에는 서울대 의대 교수와 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연구자들이 참석해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에 대한 보완점을 논의했다. 

앞서 정부는 향후 5년간 해마다 2000명 규모의 의대 정원을 늘리는 정책을 발표했다. 큰 폭의 의사인력 확대 필요성 근거로 정부는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와 KDI·보사연 연구보고서를 제시했다. 

실제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이날 토론회에서 현 의료 시스템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2035년엔 의사 수 부족이 예상되며, 따라서 큰 틀의 의대 증원 방침에는 공감했다. 각 보고서는 2035년 의사 부족 규모를 1만816명(홍윤철), 9654명(보사연), 1만650명(KDI)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부가 발표한 (연간) 2000명 증원은 언급한 적 없다”며 “의사 수 추계 과정의 복합적인 가정과 다양한 시나리오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연구가 진행된 시점도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발표와 무관했다.

홍윤철 교수는 “제 보고서는 약 1600 페이지에 달하며 20개의 보건의료계 직역에 대한 인력 추계가 담겨 있다”면서 “정부는 그 중 극히 일부만을 인용해 의대 증원 근거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고서 결론에는 다양한 시나리오도 제시돼 있다. 여러가지 검토 결과, 가장 합리적인 증원 규모는 500명에서 1000명이었다”고 설명했다.

의대 정원을 점진적으로 증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영석 보사연 명예위원은 “5년 동안 해마다 2000명씩 먼저 늘려보고 다시 판단하겠다는 정부 의견이 매우 아쉽다”며 “증원 속도를 더 합리적으로 조절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35년까지 10년 동안 1000명씩 증원하는 방안 등 시장 상황을 고려해 결정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권정현 KDI 박사 역시 “연구 결과, 매해 5~7%를 증원하는 것이 의사 인력 확충을 위해 가장 적절하다고 파악했다”며 “수요 감소 돌입 시점이 찾아올 것이므로 어느 정도 증원한 뒤 다시 줄여나가는 방안을 고려해야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꺼번에 과도하게 증원할 경우 발생할 교육현장의 문제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2000명은 기존 정원의 60%에 달하는 규모로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국 40개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의 휴학 신청이 이어지고 수업 거부 움직임도 계속되는 가운데 4월6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강의실 복도에 의학서적과 의사가운이 널려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국 40개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의 휴학 신청이 이어지고 수업 거부 움직임도 계속되는 가운데 4월6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강의실 복도에 의학서적과 의사가운이 널려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증원에 앞서 의료체계 개혁 필요”

연구자들은 의사인력 추계는 시대별 의료환경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권 박사는 “현재 의대 정원에만 치우친 소모적인 논쟁만 이어지고 있다”며 “더 중요한 건 필수의료를 어떻게 개혁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도 “의료개혁을 함께 논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숫자만 논하는 것은 실질적인 의미가 없고 근거도 턱없이 부족하다”며 “가령 지역 간 의사인력 격차를 단순히 총 공급 문제로 해결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추계 결과, 지역별 편차가 굉장히 심각하다”며 “다섯 개 대도시에서는 의사가 이미 많지만 나머지 지역은 지금도 부족하고 앞으로 훨씬 더 부족해진다”고 설명했다.

결국 의사인력 증원과 동시에 필수·지역의료체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연구자들은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패키지’에 대해선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특히 정부가 현재 행위별 수가제를 손 보겠다고 밝힌 데 대해 ‘혁신적’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자들은 개혁의 중심에는 행위별 수가제를 가치 기반 지불보상체계로 전환하는 것에 있다고 분석했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사의 의료행위 빈도가 적을수록 수입이 줄어드는 구조다. 홍 교수는 “필수의료 종사자들이 병원을 떠나는 이유는 보상이 안 되기 때문”이라며 “생명을 살리는 응급수술의 수가가 MRI 한번 찍어서 받는 수가보다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명의 가치를 기반으로 수가 체계를 전환하지 않으면 필수의료 체계를 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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